빛이 떠난 자리
창문이 먼저 흐려진다
유리의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물기가 경계를 삼킨다
손바닥을 대어도
지문 하나 남지 않는다
골목 끝 간판이 버티다 꺼진다
빛은 잠시 머물렀다가
자리를 잃은 듯 스러진다
버려진 의자 위에
누군가 앉았던 체온의 흔적
그 자리만 식어간다
이름을 불러보면
입 안에서 먼저 지워진다
소리는 혀 아래에 갇혀
밖으로 새지 못한다
어제는 틈으로 별이 스며들었는데
틈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손을 뻗으면
닿으려는 것들은 한 뼘 더 멀어진다
안개가 가까워진다
거리의 깊이가 지워지고
사물들이 서로를 밀치며 겹쳐든다
나는 서 있는 쪽인지 지워지는 쪽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조금씩 옅어진다
밤은 끝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처음처럼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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