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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 쓴 수필

밤의 노래

작성자月影|작성시간26.06.11|조회수20 목록 댓글 0

밤의 노래

 

도시의 밤은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밤을 고요의 시간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사는 도시의 밤은 오히려 낮보다 더 집요하다. 낮 동안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햇빛 속에 섞여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흘러가지만, 밤이 되면 그 소리들은 저마다의 얼굴을 드러낸다. 어둠은 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오히려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무대가 된다.

창밖에서는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가 가느다란 쇳조각처럼 공기를 긁어낸다. 멀리 간선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쉼 없이 타이어를 문지르며 도시의 신경을 자극한다. 어디선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터가 웅웅거리며 밤의 침묵을 파먹는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소리들이 밤이 되면 저마다의 영역을 차지하려는 생물처럼 꿈틀거린다.

인간은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소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을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밤은 밤다웠을 것이다. 별빛이 지붕 위에 내려앉고, 바람이 논과 밭의 얼굴을 스치는 소리가 세상의 가장 큰 음악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도시는 다르다. 기계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든 만큼,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소리로 증명한다. 냉장고는 쉬지 않고 숨을 쉬고, 엘리베이터는 금속성 목소리로 층수를 알리며, 자동차는 밤낮없이 도로를 점령한다. 마치 인간이 만든 문명이 자연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신을 몰아낸 자리에 기계를 앉혀 놓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 거대한 점령지 속에서 소리는 대부분 침입자다. 영혼을 위로하기보다 신경을 갉아먹고, 마음을 가라앉히기보다 더욱 날카롭게 세운다.

 습관처럼 창문을 닫는다. 이중창을 굳게 잠그고 두꺼운 커튼을 친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방 안에 또 하나의 성벽을 쌓는다. 소리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고요를 갈망하면 할수록 귀는 더욱 예민해진다.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시계 초침 소리가 벽을 두드린다. 냉장고의 미세한 진동이 귓속을 파고든다. 심지어 내 숨소리마저 지나치게 크게 들린다. 침묵을 향한 욕망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더 많은 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불면은 그런 틈을 비집고 찾아온다. 어둠을 베개 삼아 누워 있으면 생각들이 하나둘 깨어난다. 낮에 지나쳤던 말들, 후회와 걱정,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소리처럼 귓가를 맴돈다. 몸은 침대 위에 누워 있지만 마음은 도시의 골목을 떠돌아다닌다. 어쩌면 현대인에게 밤이란 휴식의 시간이라기보다, 낮 동안 미처 정리하지 못한 소음들을 다시 재생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도 그랬다. 잠은 오지 않았고, 귀는 유난히 예민했다. 그때였다. 굳게 닫힌 창문 틈새를 비집고 낯선 소리 하나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끈질기고 축축하며 살아 있는 소리. 기계의 음색과는 전혀 다른 울림. 개구리 울음이었다.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순간 밤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 공기를 타고 수많은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집 근처 청담천과 논에서 날아온 소리였다. 낮에는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생명들이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풀어놓고 있었다.

개굴개굴. 수백 마리, 아니 수천 마리의 목소리가 뒤엉켜 있었다. 그 소리는 아파트 외벽을 타고 올라왔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콘크리트 절벽을 기어오르는 생명의 행진 같았다.

한참 동안 창가에 서 있었다. 저토록 목청껏 울어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짝을 부르는 사랑의 노래일까. 아니면 인간들에게 빼앗긴 삶의 터전에 대한 항의일까. 수많은 논과 습지가 사라지고 콘크리트가 그 자리를 대신한 세상에서, 개구리들의 울음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마지막 선언처럼 들렸다.

 높은 곳을 향한 인간의 갈망이 거대한 콘크리트 탑을 쌓아 올렸다. 더 많이 갖기 위해 자연을 밀어냈다. 더 빠르게 살기 위해 강을 곧게 펴고 논을 메웠다. 그러는 동안 그곳에서 살아가던 존재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갔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개구리들의 합창은 단순한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이 보내는 편지 같았다. 잊지 말라고. 아직 이곳에는 우리도 살고 있다고. 너희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믿는 동안에도 우리는 묵묵히 살아남아 계절을 이어 가고 있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낮 동안 청담천변을 붉게 물들이던 여뀌들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낮의 여뀌는 늘 수줍어 보였다.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들 사이에서 몸을 움츠린 채 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다.

개구리들이 노래하면 여뀌는 몸을 흔들며 화답한다. 바람은 그 사이를 오가며 악보를 넘긴다. 어둠은 지휘자가 되어 모두를 품는다. 인간들이 잠든 사이 천변에서는 거대한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소외된 존재들만의 언어가 있었다. 빛을 독점하지도 않고, 공간을 점령하지도 않는 언어. 그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응답하는 언어였다.

그 순간 이상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내가 미워했던 것은 소리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욕망의 소음이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내는 소리.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만들어 내는 소리.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쏟아 내는 소리. 그런 소리들이 나를 지치게 했던 것이다.

반면 개구리들의 울음은 달랐다. 그것은 경쟁의 언어가 아니었다. 생존의 언어였고 존재의 언어였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서로에게 알리는 소리였다. 그 울음은 시끄러웠지만 소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메마른 마음을 적시는 하나의 리듬이었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여전히 창문은 열려 있었다. 개구리들의 합창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불면은 어느새 힘을 잃고 있었다. 마음속에 높게 쌓여 있던 벽들이 서서히 허물어졌다.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세웠던 벽이었다. 그러나 그 벽은 소음을 막고 세상과의 연결까지 차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개구리들의 울음은 그 벽에 작은 균열을 냈다. 그리고 그 틈으로 밤의 공기와 바람과 생명의 기척이 스며들었다.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위를 향한다. 더 높이, 더 크게, 더 멀리. 그러나 자연의 소리는 다르다. 그것은 수평으로 퍼져 나간다. 논에서 천변으로, 천변에서 바람으로, 바람에서 사람의 마음으로 조용히 번져 간다. 상처 입은 존재들을 연결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불면의 밤은 깊어 갔다. 그러나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청담천변의 여뀌들이 엿듣던 그 울음소리가 이제는 내 귓가를 지나 마음 깊은 곳까지 흘러들고 있었다.

어둠은 더 이상 두려운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인간이 잊고 살았던 수많은 생명의 숨결이 살아 있었다. 개구리들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그 소리는 밤하늘을 지나 도시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자장가 같았다. 그 노래에 몸을 맡긴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깨달았다. 세상을 치유하는 것은 침묵을 지키는 것 보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살아 있는 소리라는 것을.

그날 밤, 도시의 주권은 인간에게 있지 않았다.

깊은 어둠 속에서 노래하던 개구리들과 바람에 귀 기울이던 여뀌들에게 있었다. 그들의 조용하고도 장엄한 교향악 속에서, 나는 비로소 평온한 잠의 나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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