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사당집 제9권/제문(祭文)/갈암 이 선생께 올리는 제문 무진년(1748, 영조24) 이장할 때〔祭葛庵李先生文 戊辰遷葬時〕
작성자이장희작성시간17.09.19조회수18 목록 댓글 0
| 갈암 이 선생께 올리는 제문 무진년(1748, 영조24) 이장할 때〔祭葛庵李先生文 戊辰遷葬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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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슬프옵니다. 소자는 태어난 것이 늦어서 선생을 뵈올 수 없었는데, 오늘이 옴에 선생께서 제가 누구 집 아들인줄 어찌 알겠습니까? 정사년(1737, 영조13)에 소장을 올리고 죄를 얻어서 바다 건너 절도(絶島 제주(濟州))에 안치되었고, 모두 3번 적소를 옮겨 다닌 것이 전후 10년이었으며, 광양(光陽)의 섬진강 가에 계시다가 끝내 세상을 떠나고서야 고향으로 돌아오신 분이 바로 저의 아버지입니다.
오호라, 선생의 넋이 이제부터 편안하실는지요? 선생의 넋이 편안하면 선생의 억울함이 장차 이로부터 드러나고 도(道)가 이로부터 밝아질는지요? 선생의 억울함을 드러내고 선생의 도를 밝히면 제 부친아버지의 마음과 일도 혹 또한 세상에 밝혀질 수 있겠는지요? 백세를 기다릴 수는 있겠지만, 한때에 밝히기 어렵고 외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데다, 우리 집안에서도 기필하지 못합니다. 오호라, 애통합니다. 오호라, 애통합니다. 말을 길게 할 수 없어 큰 소리로 길게 울부짖고 물러납니다.
[주C-001]갈암(葛庵) :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호이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승(翼昇)이다. 이휘일(李徽逸)의 아우이다. 시호는 문경(文敬)이고, 저서로는 《갈암집(葛庵集)》이 있다.
[주D-001]소장 : 김성탁이 1737년 이현일의 신원소(伸寃疏)를 올렸다. 상소로 인하여 왕의 노여움을 사서 정의(旌義)에 유배되었다. 그 뒤 광양으로 이배되어 배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D-002]저의 아버지 : 저자의 아버지 김성탁(金聖鐸, 1684~1747)을 가리킨다. 호는 제산(霽山), 자는 진백(振伯)이다. 저서로는 《제산집》이 있다. 갈암 이현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적암(適庵) 김태중(金泰重)과 밀암(密庵) 이재(李栽)에게도 배웠고, 고재(顧齋) 이만(李槾)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었다.
[주D-001]소장 : 김성탁이 1737년 이현일의 신원소(伸寃疏)를 올렸다. 상소로 인하여 왕의 노여움을 사서 정의(旌義)에 유배되었다. 그 뒤 광양으로 이배되어 배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D-002]저의 아버지 : 저자의 아버지 김성탁(金聖鐸, 1684~1747)을 가리킨다. 호는 제산(霽山), 자는 진백(振伯)이다. 저서로는 《제산집》이 있다. 갈암 이현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적암(適庵) 김태중(金泰重)과 밀암(密庵) 이재(李栽)에게도 배웠고, 고재(顧齋) 이만(李槾)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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