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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학자 儒賢

[스크랩] ▶간재 이덕홍 선생의 학문과 사상:V. 퇴계문하에서의 간재의 위상

작성자이장희|작성시간14.05.25|조회수23 목록 댓글 0

 

V. 퇴계문하에서의 간재의 위상

 

종전에는 퇴계의 주요 제자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간재를 크게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마 간재의 경우 나름대로의 학맥을 이어가지 못해 정치적으로 크게 성공한 인물이 아닌데다가 퇴계 문인들에 대한 연구도 미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월천 조목과 간재 이덕홍 두 사람은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스승을 가까이서 모시고 독실하게 스승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면서 학문에 몰두하였으며, 스승의 사후에는 心喪三年의 예를 다하였고, 나아가 문집의 교정이나 스승의 언행기록을 비롯한 추모사업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이들의 일생에 있어서 스승 퇴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어느 제자들보다 컸던 관계로 이들의 저술에는 스승 퇴계와 관련된 부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마땅한 일인지도 모른다. 월천과 간재는 퇴계께 親炙를 입고 心悅·誠服한 제자로 학풍과 삶의 자취상 스승에게 가장 근접했으므로, 마치 孔門의 顔子(月川)나 曾子(艮齋)와 같은 위치로 비유된다. 삶의 자취상 스승에게 가장 근접한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 퇴계의 제자를 논하는 것은 後響에 치우친 견해로서 합당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근자에는 간재의 학문적 업적을 인정하여 퇴계 문하에서 상당히 비중있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는 편이다. 특히 금장태는 『退溪學派의 思想』Ⅰ(집문당, 1996)에서 퇴계학파의 비중 높은 인물로, 퇴계로부터 직접 훈도를 받은 제자들 가운데 趙穆·金誠一·李德弘·柳成龍·鄭逑·曺好益의 6명을 골라 다루었다. 이 책에서는 관련인물의 철학사상을 중심으로 검토하여 이미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에서는 『退溪門下 6哲의 삶과 사상』(예문서원, 1999)이라는 책을 간행하였다. 이 책에 나오는 6명은 우연히도 금장태의 『退溪學派의 思想』Ⅰ에 나오는 퇴계제자와 일치하지만, 철학·문학·교육·예론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 검토한 내용을 실은 것이 특징이다.
퇴계문하에서 간재의 위상은 퇴계가 보낸 편지의 수, 『퇴계집』 편찬시 관여도, 『퇴계언행록』에 실린 기록 건수, 퇴계와 관련된 추모 기록, 사승 관계기록(끝의 표참조) 등 여러 가지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살피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앞에서 간재는 퇴계집에 관여하였음은 물론 퇴계 사후 많은 추모기록을 남겼으며 문인들 중에서도 많은 주석서를 남겼다는 것은 언급하였으므로 이하에서는 퇴계가 보낸 편지의 수, 『퇴계언행록』에 실린 기록 건수, 사승 관계 기록을 통해 퇴계문하에서 간재의 위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이황이 제자에게 보낸 편지 수(共覽 포함)
1)를 보면, 100통 이상은 이정·조목·정유일·이준·이안도의 5명이고, 51~99통은 기대승·황준량·김부륜·구봉령·김취려·금란수·이덕홍·이완의 8명이다. 이 중에서 이황의 장자인 이준, 장손인 이안도 및 조카인 이완의 3명은 모두 지극히 가까운 혈족으로 학문적 논의가 아니더라도 안부편지나 일처리를 위한 편지를 자주 할 수밖에 없는 경우이므로 논의에서 제외하면, 이황으로부터 51통 이상을 받은 제자는 모두 10명이다. 또 권오봉은 학술상 중요한 주제를 논하였거나 問目과 書簡의 편수가 많은 10인으로 이문량·기대승·황준량·이정·조목·김취려·우성전·구봉령·이덕홍·금란수를 들었는데
2), 이 중에서 이문량은 친구이므로 제외하면 제자는 모두 9명이다.
다음에는 『퇴계언행록』에 과연 어느 정도의 기록을 남겼느냐를 알아보자. 퇴계언행록에는 『퇴계어록』(임영 찬)·『퇴계선생언행총록』(권두경 찬)·『퇴계선생언행록』(이수연 찬)·『이자수어』(이익 찬)의 4종이 있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퇴계선생언행총록』
3)과 『퇴계선생언행록』
4)에 나타난 문인별 기록을 상위 10인까지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위의 문인별 기록 통계에서 보면, 다른 제자들보다 김성일과 이덕홍이 압도적으로 많다. 가장 건수가 많은 것이 김성일이고, 다음으로는 이덕홍이다. 이 두 사람의 기록건수를 합하면 310건과 259건으로 거의 전 기록(663건과 556건)의 반수를 차지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퇴계문인록이나 개인문집에서 이황과의 사승관계를 살펴보자. 이는 물론 사승관계가 긴밀할수록 퇴계문인록이나 개인문집에서 이황과의 사승관계를 나타내는 글이 많이 실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요 문인 6명에 한해, 1854년에 도산서원에서 간행된 갑인본 『도산급문제현록』(계명대 한문학연구회 간행)을 기초로 문인록에 기초되어 있는 사승관계 자료와 각 개인의 문집에 기술되어 있는 이황과의 사승관계 자료를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위의 표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조목이나 이덕홍의 경우는 『도산급문제현록』이나 개인의 문집에서 이황과의 사승관계에 관한 기록을 많이 남겼고, 김성일과 유성룡은 그 다음으로 많으며, 정구와 조호익은 매우 적은 편이다.
위의 몇 가지 예에서 살펴보더라도 간재는 퇴계문인들 중에서 상당한 비중을 지닌 인물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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