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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理와 氣

작성자이장희|작성시간14.12.08|조회수9 목록 댓글 0

성리학이란 말은 인간의 본성 속에 간직된 선한 실체가 존재하는 원인이 다름아닌 理에 말미암은 것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性안에 간직된 이치라는 뜻으로 性理學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조 성리학의 연구는 그 중심 과제가 인간의 문제에 있었다. 첫째는 인간의 본성과 행동을 어떻게 하나로 일치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본성이 간직한 바의 善 그대로를 현실의 생활 자체로서 실현하는 문제였다.

 

 본성이란 性으로서 간직되어 있을 때는 理라 할 수 있고 표현될 때는 喜,怒,哀,樂,愛,惡.慾(기쁨,성냄,슬픔,즐거움,사랑,미움,욕심)등의 일곱가지 情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氣인 것이다. 그래서 性이 情으로 발하여 나타날때 性과 情의 발현을 理와 氣로 구분할 것인가 아니면 性또한 情을 통하여 나타나는 情의 한가지이므로 理는 氣속에 들어있는 一物이라는 주장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전자를 理氣二物說이고 후자를 理氣一物說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것은 중국의 성리학이 우주의 실체에 대한 형성과 발전을 설명하면서 모든 사물의 형성은 그 사물을 형성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따라서 사물의 형체를 형성하는 형상이 있게 되는데 그 원인은 理이며 형상은 氣이다 라는 주장에 근본이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사물의 형성을 理와 氣로 나누어 보려는 견해에 따라서 인간의 性과 情의 발현 현상 또한 理와 氣로 나누어 적용하고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처음에 정지운(1509-1561)라는 분이 성리학의 중심과제인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도덕률을 일치시키려는데 관심을 가지고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天命圖였다. 이황도 이 천명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였는데 그 중 잘못된 내용을 수정하게 되었는데 기대승(1527-1571)은 이황이 수정하여준 천명도의 내용에 이견을 가지고 지적을 하게 된다.

 이황은 기대승의 지적에 따라 자기가 수정했던 내용중의 일부를 다시 고치면서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기대승 또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게 되자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8년 동안 理와 氣,性과 情에 대한 논변이 계속되게 되었다.

 

 그 중요한 논점은 이황이 수정하여준 내용 가운데 性은 理이며 情은 氣이므로

四端은 理에서 발하는 것이며, 情은 氣에서 발하기 때문에 理에서 發하는 四端은 순수한 善이고, 氣에서 發하는 情은 善과 惡이 섞여 있는 것이다, 라는 것에 이었다.

 기대승은 인간의 性은 情으로 發하게 되는 것인데 性과 情을 理와 氣로 나눈다면 性과 情은 두가지가 되므로 이에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이황은 이 견해에 대하여 四端의 發은 순수한 理이기 때문에 善하지 않음이 없고 七情의 發은 氣를 겸하기 때문에 善과 惡이 혼재되어 있다, 라고 수정 의견을 제시 하였지만 기대승은 그 것 역시 理와 氣를 두가지로 구분하는것 이므로 동의할 수 없다고 다시 반론을 제기 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理의 性과 氣의 情을 하나로 볼것인가 둘로 볼것인가, 즉 一物인가,

二物인가, 하는 논쟁이 계속되었고 후일 당쟁의 이념 투쟁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논쟁을 계속하면서 조선의 성리학은 발상지 중국보다 더 발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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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안동사범 11 회 동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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