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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양록(看羊錄)
적중 봉소(賊中封疏)
적중 봉소(賊中封疏)
적중 봉소(賊中封疏) 적국에서 임금께 올리는 글
왜국 팔도 육십육주도(倭國八道六十六州圖) 왜국 팔도 육십육주도
록(錄)
적중 문견록(賊中聞見錄)
임진ㆍ정유에 침략해 왔던 모든 왜장의 수효
부인(?人)에게 고하는 격서[告?人檄]
승정원에 나아가 계사함[詣承政院啓辭]
난리를 겪은 사적[涉亂事迹]
발문(跋文)
간양록 > 적중 봉소(賊中封疏) > 부인(?人)에게 고하는 격서[告?人檄]
부인(?人)에게 고하는 격서[告?人檄]
告?人檄
嗟我一介未亡之人。告爾同盟有志之士。
아아! 나는 한낱 죽지 못한 사람으로 너희들과 함께 맹세한 뜻있는 선비들에게 고한다.
哀此流離 ?尾之屬。盡出文明鄒魯之鄕。
術序學校家塾黨庠 之中。盡是生於斯長於斯者。禹湯文武周公孔子之道。莫不見而知聞而知之。
內夏外夷之分。熟口順耳。 尊君親上之志。暢外?中。
?國恩之已深。在人心而不泯。
自乃祖乃父以上。親逢六七作之聖君。於若子 若孫之身。更承三十年之恩育。
蓋二百歲之久。雖千 萬世可忘。
슬프도다. 이 유리된 미약한 족속은 모두 문명한 추로(鄒魯)001]의 나라에서 나왔다.
술서(術序)ㆍ학교(學校)ㆍ가숙(家塾)ㆍ당상(黨庠)의 안에, 모두 여기서 나고 여기서 자라곤 하였으며, 우탕(禹湯)ㆍ문무(文武)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의 도를 보아서 알고 들어서 알지 못하는 자가 없다.
하(夏)를 안으로 하고 이(夷)를 밖으로 하는 명분이 입에 익었고 귀에 순하였으며, 임금을 높이고 윗사람을 친하는 뜻이, 겉에 창서(暢敍)되고 속에 얽혔느니라.
하물며 나라 은혜가 이미 깊어서 사람 마음에 있어 사라지지 아니함에랴.
너의 할아버지, 너희 아버지 그 이상에서부터 친히 6~7 성군(聖君)이 나심을 만났거니, 그 아들, 그 손자의 몸이 다시 30년 은육(恩育)을 받았도다.
대개 2백년(조선조 건국 이후를 뜻함)이나 오래 되었지만, 비록 천만 세(世)인들 어찌 잊으리오.
[주D-001]추로(鄒魯) : 공자(孔子)ㆍ맹자(孟子)의 유풍(遺風)이 있는 문명한 곳을 말한다. 추(鄒)는 맹자의 출생지이고, 노(魯)는 공자의 출생지이다.
豈意我生之多艱。逢此國運之不幸。
?享 豫大之欲末。泰往否來之交承。
物衆地大。孼芽其間。 旣見逆賊之煽禍。
文恬武嬉。兵革不用。竟致戎馬之 生郊。
顧玆漆齒之陋邦。實是橫目之異類。禹迹之所 未訖。周軌之所不同。
?師古不載華夷圖。柳宗元亦 遺風土記。
우리 인생이 다난하여, 이와 같이 국운의 불행을 만날 줄을 어찌 뜻했으랴?
풍(?)은 형(亨)하고, 예(豫)는 크듯이 못하는가? 태(泰)는 가고 비(否)가 오려는 운수를 받았나 보다. 002]
물(物)은 많고 땅은 크니, 그 사이에 악이 싹터서 이미 역적이 화를 선동하는 것을 보았다.
문관은 편안하고 무장(武將)은 놀기만 하여 무기를 쓰지 않자, 마침내 융마(戎馬)가 교외에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칠치(漆齒)003]의 더러운 나라를 생각해 보면, 실로 횡목(橫目 이상한 사람의 눈)의 이류(異類)로서, 우(禹) 임금의 자취가 미치지 못한 곳이요, 주(周) 나라의 궤도(軌道)와도 같지 않은 곳이다.
안사고(顔師古)의 화이도(華夷圖)에 실리지 아니했고, 유종원(柳宗元)은 또한 풍토기(風土記)에서 빼 놓았다.
[주D-002]풍(?)은 형(亨)하고, 예(豫)는 크듯이 못하는가? 태(泰)는 가고 비(否)가 오려는 운수를 받았나 보다 : 《주역(周易)》의 뇌화풍(雷火?)괘와 뇌지예(雷地豫)괘를 가리킨 것이고, 비ㆍ태(否泰)도 역시 천지비(天地否)괘와 지천태(地天泰)괘를 가리킨다.
[주D-003]칠치(漆齒) : 오랑캐의 풍속. 이를 검게 만들고 이마에 새기[漆齒雕額]므로 이른 말이다.
僭稱日出底天子。竊據海外之地方。
置君 如奕?。亂臣賊子接迹於後世。視人若草芥。薄物細 故竝驅於淫刑。
賊魁秀吉。豺狼禍心。??醜種。依? 牢之舊主。旣作桃蟲之?飛。抗??之大車。敢注射 日之毒矢。
犬馬之心不若。溪壑之求無?。
乘我家百 年昇平。白丁不習兵革。幸我家累歲飢饉。蒼生多轉街衢。
先擧侵阮?共之師。敢爲滅號取虞之計。鷄豚 狗?。靡有孑遺。草木昆蟲。竝被?毒。
참람히도 일출(日出)의 천자(天子)라 일컬으며 남몰래 해외의 지방을 차지했다.
임금 처치(處置)하기를 바둑 두듯이 하여 004]난신(亂臣)ㆍ적자(賊子)가 후세에 발자국을 맞대었고, 사람 보기를 초개같이 하여, 하찮은 물건이나 세세한 연고라도 모두 음형(淫刑)에 몰아넣었다.
적괴 수길은 시랑(豺狼) 같은 화심(禍心)에다가 쐐기 같은 추한 종자로서 환견(?牽)005] 같은 옛 주인에 의지하여, 이미 뱁새가 나는 황새가 되자 당랑(螳螂)이 큰 수레를 항거하여감히 해(중국을 일컬음)를 쏘는 독한 화살을 퍼부었다. 006]
견마(犬馬)의 마음만도 같지 못하면서 한없는 욕구는 만족할 줄을 모른다.
우리나라가 백 년 동안의 태평으로 장정들이 전쟁에 익숙하지 못함을 틈타고, 우리나라가 여러 해의 흉년으로 창생이 길거리에 많이 굴러다니는 것을 요행으로 여겨서,
먼저 완(沅)을 침노하여 공(共)으로 가는 군사를 008]일으켜 감히 괵(?)을 멸하고 우(虞)를 탈취하는 꾀로 009]삼았다. 닭ㆍ개ㆍ돼지까지도 종자를 남기지 못하였고, 초목 곤충도 아울러 해독을 입었음에랴?
[주D-004]임금 처치(處置)하기를 바둑 두듯이 하여 : 임금을 경홀하게 본다는 뜻으로서 《좌전(左傳)》에 보인다.
[주D-005]환견(?牽) : 기르고 끌고 하는 짐승을 이른다.
[주D-006]당랑(螳螂)이 큰 수레를 항거하여 : 제 힘을 헤아리지 않고 경솔히 덤빈다는 뜻임. 《장자(莊子)》 천지(天地)편에, “당랑(螳螂)의 성난 어깨로써 수레를 대항하면 반드시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다.[猶螳螂之怒臂以當車轍則必不勝任矣]” 하였음.
[주D-007]감히 해를 쏘는 독한 화살을 퍼부었다 : 존엄한 윗사람에게 함부로 범하는 것을 지칭한 말로서 즉 사천(射天)과 같은 뜻이다.
[주D-008]완(沅)을 침노하여 공(共)으로 가는 군사 : 《시경(詩經)》 대아(大雅) 황의편(皇矣篇)에 있는 말. 밀(密) 땅 사람이 불공(不恭)하여 완(沅)의 땅을 침범하여 공(共) 땅으로 들어가므로 문왕(文王)이 쳐 없앴다는 것으로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범한 것에 비해 인용한 말이다.
[주D-009]괵(?)을 멸하고 우(虞)를 탈취하는 꾀 : 《좌전(左傳)》에, “길을 우 나라에 빌려 괵을 취하다.[假道于虞 以滅?]” 하였는데, 우(虞) 나라가 진(晉)ㆍ괵(?)의 사이에 있으므로, 진(晉) 나라가 괵을 친다 하고 우 나라에 길을 빌려서 괵을 취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虞)까지 멸하였음. 이는 왜적이 우리나라에 길을 빌려 명(明) 나라를 친다는 말에 비한 것이다.
蓋以國家之? 言之。則焚燒我社稷。汚穢我郊畿。夷我左?右平。據我南宮北內。
九重城闕。忍見三月紅。十世園陵。終盜 一?土。
兵符黃石老。幾作戰場之?魂。王子白衣行。 久詠?丘之泥露。
爲臣子不忍言之痛。有血氣者孰無是心。
대개, 국가의 원수로써 말하자면, 우리 사직을 불태워 버렸고, 우리의 강토를 더럽혔고, 우리의 좌척 우평(左?右平) 010]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남궁 북내(南宮北內)011]를 점령했다.
석 달 동안 구중 궁궐이 불타고 있는 것을 차마 볼 수 있었겠으며, 십세(十世)의 원릉(園陵)이 마침내 한 무더기 흙을 도적맞았다.
병부(兵符)의 황석(黃石) 장로 012]는 거의 전쟁의 원통한 넋이 되었고, 왕자는 백의(白衣)로 다니며 오래 모구(?丘)의 이로(泥露)013]를 노래했다.
신하가 된 자로서 차마 말 못할 고통이었고, 혈기가 있는 자로서는 누군들 이 마음이 없겠는가?
[주D-010]좌척 우평(左?右平) : 척(?)은 계단의 이[齒]이다. 《삼보황도(三輔黃圖)》의, “좌척우평(左?右平)의 주에, 궁정의 계단이 구급(九級)인데 좌우로 갈라서 왼쪽에는 이[齒]를 내서 사람이 다니게 하고, 오른쪽에는 평평하게 한다.” 하였다. 이는 왜적이 우리 대궐을 침입했다는 말이다.
[주D-011]남궁 북내(南宮北內) : 남쪽에 있는 궁전, 북쪽에 있는 내전(內殿)을 말한다.
[주D-012]병부(兵符)의 황석(黃石) 장로 : 미상.
[주D-013]모구(?丘)의 이로(泥露) : 타향살이를 이른 말이다. 모구(?丘)는 《시경(詩經)》 패풍(?風)편의 시제인데, 여(黎) 나라 백성이 나라를 잃고 위(衛)에 붙여 있으면서 모구의 언덕에 절물(節物)을 보고 느껴서 지은 것이다. 이로(泥露)는 남의 나라에 붙여 있는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식미장(式微章)의 “胡爲乎中露”에서 나온 말이다.
以一身之?言之。則燒夷我家廟。發掘我先塋。 劫掠其?倪。係累其子弟。
劍下橫分。盡顧我復我之 遺體。?上盤舞。皆婉兮?兮之孩兒。
鳳凰枝頭。罔保 死生之成說。??原上。不堪兄弟之急難。
人倫之禍。 有如是焉。骨肉之情。烏可已也。其免於殺戮者。又從 而生致之。
일신상의 원수로써 말하자면, 우리 가묘(家廟)를 불태웠고, 우리 선영(先塋)을 파헤쳤고, 노인과 아이를 겁략하고, 그 자제를 묶어 갔다.
칼 아래 허리가 동강 나는 것은, 다 나를 돌보고 나를 길러주신 부모님의 유체(遺體)였고, 창대 위에 춤추듯이 떨어지는 것은 다 곱고 고운 어린아이들이었다.
봉황(鳳凰)의 가지 위에서 사생(死生)의 성설(成說) 014] 을 보전할 수 없고, 척령(??)015]의 언덕 위엔 형제의 급난을 견디지 못함에랴?
인륜의 화(禍)가 이와 같은지라, 골육의 정이 어찌 참을 수 있겠느냐. 살육을 면한 자는 또 따라서 산 채로 잡혀 갔다.
[주D-014]사생(死生)의 성설(成說) : 부부(夫婦)를 의미하여 쓴 것이다. 사생성설(死生成說)은 부부가 죽고 사는 데 있어서 서로 잊지 않기로 맹세하였다는 말임. 《시경》 패풍(?風) 격고장(擊鼓章)에 보인다.
[주D-015]척령(??) : 척령은 새 이름. 형제의 급난(急難)함을 말한 것이다. 《시경(詩經)》 상체장(常?章)에, “척령이 언덕에 있으니, 형제가 급난하도다.[??在原 兄弟急難]”에서 나온 말이다.
崔盧王謝之兒。半屬?人之役。欒?范韓 之女。盡作胡家之婢。
秀眄疏眉。已壞宣和裝束。?衣 博帶。不復漢官威儀。
或效衛輒之夷言。或?仲雍之 吳髮。或滯三年之燕獄。或悲四座之楚囚。
?號徹天。 正氣掃地。
我罔爲臣僕。宜念宋微子之徽言。死則葬 蠻夷。豈忍李少卿之胡鬼。
그래서 최(崔)ㆍ노(盧)ㆍ왕(王)ㆍ사(謝) 016]의 아이들은 태반이 원수놈들의 역군(役軍)이 되었고 난(欒)ㆍ각(?)ㆍ범(范)ㆍ한(韓) 017]의 여자들은 다 되놈 집안의 계집종이 되었다.
수려한 눈매와 성긴 눈썹은 이미 선화(宣和)의 장속(裝束) 018]에 벌써 무너졌고, 큰 옷과 넓은 띠는 한관(漢官)의 위의(威儀)를 다시 못 보겠다.
혹은 위첩(衛輒)의 이언(夷言) 019] 을 본받고, 혹은 중옹(仲雍)의 오발(吳髮) 020] 을 잘랐다. 혹은 3년의 연옥(燕獄)에 갇히고, 혹은 사좌(四座)의 초수(楚囚)021]를 슬퍼했다.
원통한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치고 정기는 땅에 떨어졌다.
나는 신복(臣僕)이 되지 않겠다는 송(宋) 나라 미자(微子)의 아름다운 말 022]을 마땅히 생각할지니, 죽어서 만이(蠻夷)에 장사하겠다는 이소경(李小卿)의 호귀(胡鬼) 023]가 어찌 차마 되겠느냐?
[주D-016]최(崔)ㆍ노(盧)ㆍ왕(王)ㆍ사(謝) : 최씨ㆍ노씨ㆍ왕씨ㆍ사씨를 말한 것인데, 모두 육조(六朝) 및 당대(唐代)의 거족(鉅族)이었다.
[주D-017]난(欒)ㆍ각(?)ㆍ범(范)ㆍ한(韓) : 춘추 시대 진(晉)의 귀족을 말한 것이다.
[주D-018]선화(宣和)의 장속(裝束) : 선화(宣和)는 송 나라 휘종(徽宗)의 연호. 송 휘종이 금(金)에 포로되어 가서 우연히 여자를 만났더니, 의연히 선화(宣和) 때의 의복을 입고 있으므로 통곡했다는 고사가 있다.
[주D-019]위첩(衛輒)의 이언(夷言) : 위첩(衛輒)은 춘추(春秋) 시대 위 나라 임금 첩(輒)으로서 오(吳)와 회맹(會盟)하다가 오 나라에 억류되었다. 얼마 뒤에 오 나라가 위첩을 놓아 주자, 위첩이 돌아와서 이언(夷言) 즉 오 나라의 방언(方言)을 본받으니, 자지(子之)가 말하기를, “임금이 반드시 면하지 못하고 오랑캐 땅에서 죽을 것이다.” 하였다. 《좌전(左傳)》에 보인다.
[주D-020]중옹(仲雍)의 오발(吳髮) : 중옹(仲雍)은 주(周) 나라 태왕(太王)의 아들. 그 형 태백(太伯)과 더불어 왕위를 사양하고 형제가 함께 오(吳) 나라로 들어가서 단발문신(斷髮文身)하였다.
[주D-021]초수(楚囚) : 초수(楚囚)는 초(楚) 나라 종의(鍾儀)가 진(晉) 나라에 구금되었으므로 말한 것이다. 진(晉) 주의(周?)가 신정(新亭)에서 명사들과 모임자리에 있었는데, 말하기를 “여러분은 사좌에서 초수로 대읍(對泣)만 하려 하는가?” 하였다. 《진서(晉書)》 주의전(周?傳)에 보인다.
[주D-022]아름다운 말 : 《서경(書經)》 미자편(微子篇)에, “상 나라가 망하더라도 나는 신복이 될 리 없다.[商其淪喪我罔爲臣僕]” 하였다.
[주D-023]이소경(李小卿)의 호귀(胡鬼) : 이소경은 한(漢)의 이릉(李陵)을 말한다. 그가 소무(蘇武)에게 보낸 답서(答書)에, “죽으면 만이(蠻夷)의 땅에 매장할 것이다.” 하였다.
?故鄕之可念。乃常物之 大情。蜀禽催歸。越鳥巢南。羽族乃爾。氷狐首丘。代馬 依北。走獸猶然。
하물며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바로 상물(常物)의 큰 정이다. 촉(蜀) 나라의 새는 돌아가기를 재촉하고 월(越) 나라의 새는 남쪽에 깃드니, 날짐승도 그러하고, 수호(水狐)는 언덕으로 머리를 두고 대마(代馬 중국 대군(代郡)에서 나는 명마)는 북풍에 의지하니, 기는 짐승도 오히려 그러하다.
況我體仁之人。豈無反本之志。
彼岵 彼?。須憶父母之瞻望。某水某丘。?記童子所釣遊。
冷雨殘煙。孰非傷心之色。鳴鷄吠犬。盡作斷腸之 聲。
宿草先塋。誰薦一盂之麥飯。喬木荒閭。已入三年 之禾黍。是用依依。焉能鬱鬱。
?秋塞外。不堪吟嘯之 成群。暮春江南。遐想雜花之滿樹。
嗟我流離?尾之 屬。孰無哀痛憤?之心。
하물며 우리 인(仁)을 법받은 사람이야 어찌 근본으로 돌아갈 뜻이 없겠는가?
저 산 저 봉우리를 오르면 부모를 바라볼 생각이 나고, 어느 물 어느 언덕은 아이 적에 낚시질하고 놀던 곳이 아니던가?
쓸쓸한 비와 쇠잔한 연기는 어느 것이 마음 상하는 경색(景色)이 아니리. 우는 닭과 짖는 개도 모두 애끊는 소리를 하는구나.
선영(先塋)의 우거진 풀에 누가 한 그릇의 보리밥을 올리며, 교목(喬木)의 황량한 거리엔 3년의 화서(禾黍)를 거둬들이랴! 이와 같이 아득한 심정이라, 어찌 답답히 앉아만 있겠는가?
서늘한 변방의 가을에 떼지어 노래하는 것을 차마 듣지 못하겠고, 저문 강남의 봄에 나무에 가득한 갖가지 꽃들이 멀리 생각난다.
아아! 우리 유리된 하찮은 족속이, 누군들 애통하고 분개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若余者。江南舊族。魯中諸生。 結髮誦六經。粗識君臣之大義。
應制獻三策。早依日 月之末光。毫髮盡是國恩。頂踵皆歸天造。
四年之內。 六品之官。國耳忘君耳忘。
不憚握蛇騎虎。生所欲義 所欲。自分捨魚取熊。
補天之力雖微。擎日之誠常切。 不意中流之擊楫。遽成五坡之就擒。
나 같은 자는 강남의 구족(舊族)이요, 노중(魯中)의 제생(諸生) 024]으로 머리를 땋을 적부터 육경(六經)을 외어 대강 군신(君臣)의 대의를 알았고,
과거에 응하여 삼책(三策)을 올리어 진작 일월(日月)의 말광(末光)에 의지했으니, 호발(毫髮)도 다 나라의 은혜요, 이마와 발꿈치가 모두 임금이 만드신 것이다.
4년 동안을 6품의 관(官)을 지냈다. 나라를 잊겠느냐, 임금을 잊겠느냐?
독사를 쥐고 범을 타는 것도 꺼리지 아니하며, 삶도 원하는 바요 의(義)도 원하는 바라, 어(魚)를 버리고 웅(熊) 025]을 취할 것을 스스로 분별했다.
보천(補天)026]의 힘은 비록 미약하지만 경일(擎日)의 정성은 027] 항상 간절하더니, 뜻밖에 중류(中流)에서 뱃전을 친 것이,028] 문득 오파(五坡)에서 사로잡힐 줄 어찌 알았으랴!
[주D-024]노중(魯中)의 제생(諸生) : 글하는 선비라는 뜻인 듯하다.
[주D-025]어(魚)를 버리고 웅(熊)을 취할 것 : 의를 소중히 여긴다는 뜻. 《맹자(孟子)》의 고자(告子)편에, “어(魚)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요, 웅장(熊掌)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지만 두 가지를 다 못 얻을진대 어(魚)를 버리고 웅장을 취하겠다. 생(生)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양자를 다 못 얻을진대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 하였다.
[주D-026]보천(補天) : 《회남자(淮南子)》에, “여와씨(女?氏)가 오색의 돌을 달구어 하늘을 때웠다.”는 말이 있다. 후에 와서 세도(世道)를 만회하는 것을 보천(補天)이라 일컫는다.
[주D-027]경일(擎日)의 정성 : 해를 떠받드는 것. 즉 세도(世道)를 만회한다는 뜻이다.
[주D-028]중류(中流)에서 뱃전을 친 것 : 《진서(晉書)》 조적전(祖?傳)에, “강을 건너가는데 중류(中流)에서 뱃전을 치면서 맹세하기를, ‘조적(祖?)이 중원을 맑히지 않고서는 이 강을 건너지 않겠다.’ 하였다.” 하였다.
片時偸生。豈容 鴻毛之顧惜。
八日不食。猶恨一息之尙存。顧不死欲 將以有爲。而殺身未足以滅恥。
伏匕首於橋下。期復趙 孟之?。
奉鐵椎於沙中。誓雪張良之憤。
呼秦敗於陣後。擬遂襄陽刺史之來歸。
乞夏師於關西。願效?延 副將之壯志。
此其素所蓄積。堪可質諸鬼神。
잠깐이나마 구차히 산 것이 어찌 홍모(鴻毛 가벼운 목숨)를 애석해 함에서랴!
8일 동안 먹지 않았으나 오히려 일식(一息)이 붙어 있음이 한스럽다. 그러나 죽지 않은 것은 장차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니, 의미없이 죽는 것은 부끄러움을 씻는 것이 되지 못한다.
비수를 갖고 다리 아래 엎드려 조맹(趙孟)에 대한 원수를 갚기로 기약했고029],
철퇴를 들고 모래밭에 나타나서 장량(張良)의 분을 씻기로 맹세했다.030]
진(秦) 나라가 패한 것을 진(陣) 뒤에서 부르짖어 양양 자사(襄陽刺史)의 내귀(來歸)를 이루려고 했고 031],
하(夏)의 군사를 관서(關西)에서 구걸하여 부연 부장(?延副將)의 웅장한 뜻 032] 을 본받기 원이었다.
이것이 본래의 쌓이고 쌓인 것인지라, 저 신명에게 대질할 만하다.
[주D-029]비수를 갖고 다리 아래 엎드려 조맹(趙孟)에 대한 원수를 갚기로 기약했고 : 조맹은 조양자(趙襄子)를 가리킨다. 조양자가 지백(智伯)을 멸하자, 지백의 신하 예양(豫讓)이 원수를 갚기 위하여 비수(匕首)를 품고 다리 아래에 엎드리어 양자(襄子)를 기다렸는데, 양자의 말[馬]이 먼저 놀랐다. 그래서 수색하여 예양을 잡아 죽였다. 《통감(通鑑)》에 보인다.
[주D-030]철퇴를 들고 모래밭에 나타나서 장량(張良)의 분을 씻기로 맹세했다. :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장량(張良)의 조상이 오세(五世)를 한(韓) 나라에서 정승 노릇 하였다. 한이 진(秦)에 멸망되자, 장량은 원수를 갚기 위하여 창해 역사(滄海力士)에게 철퇴(鐵椎)를 들려 박랑사중(博浪沙中)에서 시황(始皇)을 저격(狙擊)하게 하였는데, 빗나가서 시황의 부거(副車)를 맞췄다.” 하였다.
[주D-031]진(秦) 나라가 패한 것을 진(陣) 뒤에서 부르짖어 양양 자사(襄陽刺史)의 내귀(來歸)를 이루려고 했고, : 진(晉)의 주서(朱序)의 일을 말한 것이다. 주서는 진(晉)의 의양(義陽) 사람으로 자는 차륜(次倫)이다. 집안이 대대로 명장(名將)이었다. 영강(寧康) 초에 양주 자사(梁州刺史)가 되어 양양(襄陽)을 진수(鎭守)하고 있었는데, 부견(符堅)이 장수를 보내 성(城)을 공격하니, 주서가 패하여 잡혀갔다. 그 후에 사석(謝石)과 부견이 비수(?水)에서 싸우는데 주서가 진(陣) 뒤에서, “부견이 패했다.”고 외치니, 전진(前秦)의 군사들이 동요되어 마침내 크게 무너졌다. 그래서 주서는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주D-032]부연 부장(?延副將)의 웅장한 뜻 : 미상
[주D-033]조벽(趙璧) : 조(趙) 나라의 구슬. 조왕(趙王)이 화씨(和氏)의 구슬을 얻었는데, 진 소왕(秦昭王)이 그 구슬을 탐내어 열 다섯 고을과 바꾸자고 하였다. 조왕은 인상여(藺相如)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진왕이 성(城)을 가지고 구슬을 바꾸자고 하는데, 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잘못이 우리에게 있고, 우리가 구슬을 주어도 진 나라가 성을 주지 않는다면 잘못이 진 나라에 있으니, 신이 구슬을 가지고 진 나라에 가겠습니다. 진에서 성을 주지 아니할 경우에 구슬을 완전하게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하였다. 《사기(史記)》
況趙璧 之猶完。而漢節之尙在。
?羊不乳。可作十九年之蘇 卿。馬畜彌山。豈忍數萬衆之衛律。
常思白首歸國。遠愧黑頭還家。
命如鷄豚。身非木石。
指靑丘於海外。山 川渺然。望白雲於天涯。方寸亂矣。
하물며 조벽(趙璧)033]은 오히려 완전하고, 따라서 한절(漢節)034]도 아직 있다.
숫양[?羊]이 새끼를 낳지 못하니, 19년의 소경(蘇卿)이 될 만하고 035], 마축(馬畜)이 산에 가득하니 어찌 수만 군중의 위율(衛律)036]을 차마 하랴.
항상, 흰 머리로 고국에 돌아갈 것을 생각했는데, 미리 검은 머리로 집에 돌아가는 것이 부끄럽다.
목숨은 닭ㆍ돼지와 같고 몸은 목석(木石)이 아니다.
바다 밖에서 청구(靑丘 우리나라의 이칭)를 가리키니 산천이 아득하고, 하늘 가에서 흰 구름을 바라보니 마음이 산란하구나.
[주D-033]조벽(趙璧) : 조(趙) 나라의 구슬. 조왕(趙王)이 화씨(和氏)의 구슬을 얻었는데, 진 소왕(秦昭王)이 그 구슬을 탐내어 열 다섯 고을과 바꾸자고 하였다. 조왕은 인상여(藺相如)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진왕이 성(城)을 가지고 구슬을 바꾸자고 하는데, 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잘못이 우리에게 있고, 우리가 구슬을 주어도 진 나라가 성을 주지 않는다면 잘못이 진 나라에 있으니, 신이 구슬을 가지고 진 나라에 가겠습니다. 진에서 성을 주지 아니할 경우에 구슬을 완전하게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하였다. 《사기(史記)》
[주D-034]한절(漢節) : 한(漢)의 절부(節符). 한 나라 소무(蘇武)가 무제(武帝) 때에 중랑장(中郞將)으로서 흉노(匈奴)에게 사신 갔다가 억류를 당하여 19년 동안 한 나라 절(節)을 가졌다. 《한서(漢書)》 소무전(蘇武傳)에 보인다.
[주D-035]숫양[?羊]이 새끼를 낳지 못하니, 19년의 소경(蘇卿)이 될 만하고 : 소경(蘇卿)은 소무(蘇武)를 가리킨다. 《한서》 소무전(蘇武傳)에, “흉노(匈奴)가 소무를 북해의 사람 없는 곳에 옮겨두고 숫양을 기르게 하면서 숫양이 새끼를 낳게 되면 돌아가게 한다 하였다.” 하였다.
誦奉天哀痛之詔。 猶在耳汪洋。望晉陽龍鳳之姿。不違?咫尺。
問天矯首。擊地奮拳。幸義勝之謀成。而人衆之力濟。有錢可使鬼。東海豈患無梁。
通波非難圖。西風想必借力。
봉천(奉天)의 애통조(哀痛詔) 037] 를 외던 소리 오히려 귓전에 넘실거리고, 진양(晉陽)의 용봉(龍鳳) 038]의 모습을 바라보니, 천안(天顔)이 지척에 가까운 듯하다.
머리를 들어 하늘에 물어 보고, 주먹을 불끈 쥐어 땅을 친다. 다행히 의(義)가 승리하는 꾀가 이루어지고, 많은 힘이 달성되었다. 금전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으니, 동해에 어찌 다리가 없음을 걱정하랴.
파도를 통하는 것도 도모하기 어려운 것 아니니, 서풍이 반드시 힘을 빌려줄 것이다.
[주D-037]봉천(奉天)의 애통조(哀痛詔) : 당 덕종(唐德宗)이 주자(朱?)의 난(亂)을 피하여 봉천(奉天)으로 파천(播遷)하였는데, 육지(陸贄)가 덕종에게 아뢰어 황제 자신을 책하는 애통조(哀痛詔)를 내리게 하였다. 《당서(唐書)》에 보인다.
[주D-038]진양(晉陽)의 용봉(龍鳳) : 상모(相貌)의 탁이(卓異)함을 말한 것이다. 《당서(唐書)》 태종기(太宗記)에, “태종이 네 살 적에 어떤 서생(書生)이 고조(高祖)를 보고서 말하기를 ‘공은 상법(相法)으로 보아 귀인이다. 반드시 귀자(貴子)를 두겠다.’ 하더니, 태종을 보고서는 ‘용봉(龍鳳)의 자(姿)요, 천일(天日)의 표(表)다. 나이 20이 되면 반드시 제세 안민(濟世安民)할 것이다.’ 하였다.” 하였다.
使船如使馬。豈無其人。
擒賊先擒王。亦非難事。爲呂氏 右袒。誰昧逆順之分。微管仲左?。共?尊攘之志。
幸無遠托異國。皆念義重三生。
成敗由天。縱未逆覩。精 誠貫日。定有成功。吾無二言。爾可一力。
배 부리기를 말 부리듯이 하는 그런 사람이 어찌 없겠느냐?
적을 사로잡으려면 먼저 왕을 사로잡으라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呂)씨를 위하여 우단(右袒)한 것 039]은 누가 역순(逆順)의 분간에 어두웠던고. 관중(管仲)이 아니었다면 좌임(左?)하였을 것이니, 함께 존양(尊攘)의 뜻을 격려하자구나.
다행히 다른 나라에 멀리 의탁함이 없는 것은 모두 삼생(三生 불교에 나오는 말로 전생ㆍ이승ㆍ저승. 뜻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의(義)가 중함을 생각해서였다.
성패는 하늘에 달린 것이라, 비록 앞일을 내다보지 못하지만, 정성이 해[日]를 꿸 만하니 단정코 성공이 있을 줄 안다. 나는 두 말 않겠으니, 너희는 한결같이 힘을 모으라.
[주D-039]여(呂)씨를 위하여 우단(右袒)한 것 : 여씨(呂氏)는 여록(呂祿)ㆍ여산(呂産)을 말한다. 우단(右袒)은 오른쪽 어깨를 벗어 지지함을 표시하는 것으로, 《사기(史記)》 고제본기(高帝本紀)에, “여록ㆍ여산이 난리를 일으키려고 하자, 태위(太尉) 주발(周勃)이 군문(軍門)에 들어가서 영을 내리되 ‘여씨를 위하는 자는 오른쪽 어깨를 벗고, 유씨(劉氏)를 위하는 자는 왼쪽 어깨를 벗으라.’ 하니, 군중이 다 왼쪽 어깨를 벗으므로, 여씨의 남녀 노소를 다 잡아 베었다.” 하였다.
嗚呼。武王以 仁而伐暴。伯夷猶餓西山。
?秦棄禮而上功。仲連欲 蹈東海。
葵藿猶傾白日。可以人而不如草乎。
吉了不 入蠻山。恥用夏而變於夷者。
詞不盡意。檄到如章。
아아! 무왕(武王)이 인(仁)으로써 포(暴)를 쳤으되 백이(伯夷)는 오히려 서산(西山)에서 굶어 죽었고,
진제(秦帝)가 예(禮)를 버리고 공(功)만 숭상하니 노중련(魯仲連)은 동해(東海)를 밟아 죽으려 했다.
해바라기도 해를 따라 기우는데 사람으로서 풀만 같지 못하랴
길료(吉了)새 040]가 만산(蠻山)을 들어가지 않은 것은 분명히 야만으로 변하는 것을 부끄러워한 까닭이다.
글이 뜻을 다하지 못했으니 격문대로 시행하라.
[주D-040]길료(吉了)새 : 진길료(秦吉了)인데, 새의 이름이다. 이 새는 만이(蠻夷)의 산에는 들어가지 아니한다고 한다.
해역 /한국고전종합DB
원문 / 한국학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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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 포로(捕虜). 사로잡힌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