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우리 퇴도(退陶) 선생께서 동남 지역에서 강도(講道)하실 적에, 문하의 믿음 깊은 선비들이 선성(宣城)보다 많은 곳이 없었으며 오천(烏川)은 더욱 많았으니, 참으로 추로지향(鄒魯之鄕)이었습니다. 지금 선생이 돌아가신 지 36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도(道)는 날이 갈수록 감추어지고, 문하의 제자로서 세상에 남아 있는 분들도 거의 없습니다. 못난 제가 직접 만나 본 분으로 말하면 읍청정(挹淸亭)이 돌아가시자 일휴당(日休堂)이 이었고, 이제 공이 또 이었는데, 땅을 더듬어 길을 찾는〔擿埴〕 후학들이 의지할 곳을 잃으니, 사도(斯道 유교)를 걱정하는 이는 모두들 마음 아파합니다.
생각건대 공은 신의와 두터운 덕을 마음에 간직하고서 빈틈없이 자세하게 세상일을 논하였고, 마음이 아름다워 용납함이 있어서 담백하고 남을 해치지 않았으며, 효성과 우애 있는 행실은 마을에 소문났고, 공손하고 삼가는 덕은 원근에 알려졌습니다. 사람들이 당대의 선사(善士)를 말할 때면 반드시 설월당을 앞세웠으니, 말세의 풍조에 붙좇으며 그 본심(本心)을 잃는 사람에 비하면 진실로 퇴계 선생의 문하를 더럽히지 않았으니 어찌 올바르지 아니합니까.
천고(千古)토록 육침(陸沈)함에 이르러서는 취한 사람들 속에서 함께 먼지를 덮어쓴 것은 실로 이광(李廣)의 기구한 운명이니, 어찌 저 하늘을 원망하고 탓하리요. 높일 만한 일은 흰머리에 여윈 얼굴로 고향 강가로 돌아오니 손님은 공융(孔融)의 당(堂)처럼 가득하고, 사람들은 서막(徐邈)의 성인(聖人)과 알맞은데, 양잠(養蠶)과 길쌈을 이야기하면서 세상의 먼지 떨쳐 내고, 풍월(風月)은 짧은 글에 담아두고 성정(性情)은 긴 글에서 펴면서 여생을 마친 것이니, 참으로 자연 속에서의 훌륭한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가볍고 꼼꼼하지 못하며 제멋대로여서 취할 것이 없는데도 선친과의 두터운 교분에 힘입어 용문(龍門)에 조용히 모실 수 있었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이제 어른의 가르침을 잃고 선인(先人)의 음성과 용모를 생각하며 조문객의 줄에 있으니, 양담(羊曇)의 비통함이 더욱 절실합니다. 조재(祖載)는 기일이 있어 상여 줄을 당기기에 평소 주고받던 술을 오늘 유자(孺子)의 솜에 적셔 왔으니, 잠들지 않은 영령이시여, 오셔서 보잘것없지만 흠향하소서.
[주D-001]선성(宣城)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禮安面)의 옛 이름이다.
[주D-002]오천(烏川) : 경상북도 안동시에 속해 있는데, 1974년 안동댐 조성 공사로 인해 수몰되었다.
[주D-003]추로지향(鄒魯之鄕) : 추(鄒)는 맹자(孟子)의 출생지이고, 노(魯)는 공자(孔子)의 출생지로서, 공자ㆍ맹자의 유풍(遺風)이 있는 문명한 곳을 말한다.
[주D-004]읍청정(挹淸亭) : 김부의(金富儀, 1525~1582)의 호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신중(愼仲)이다. 오천에서 태어나 가학의 훈도 속에서 기초 학문을 이수하였고, 이황의 문하에 입문하고부터 본격적으로 도학을 터득하였다. 31세 되던 해에 사마시에 입격하고, 성균관에 유학하였다.
[주D-005]일휴당(日休堂) : 금응협(琴應夾, 1526~1596)의 호이다.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협지(夾之)이다.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충신독경(忠信篤敬)과 궁행실천(躬行實踐)에 힘썼다. 특히,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 공부를 중시하였으며, 저서로는 《일휴집(日休集)》이 있다.
[주D-006]땅을 …… 찾는〔擿埴〕 : 적식(擿埴)은 맹인이 지팡이로 땅을 더듬어서 길을 찾는 것인데, 학문의 지름길을 모르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주D-007]육침(陸沈) : 세상이 심히 어지러움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8]이광(李廣) : 후한(後漢)의 명장(名將)이다. 흉노와의 전쟁에서 70여 차례나 승리를 거두는 등, 큰 군공(軍功)을 세웠다. 정치적 처세를 중요시하지 않아, 그의 휘하에 있던 부장이 열후에 봉해지고 사졸도 후작에 봉해진 자가 있었지만, 정작 그는 작위나 봉읍도 얻지 못하고 관직도 구경(九卿)을 넘지 못하였다. 《史記 卷109 李將軍列傳》
[주D-009]공융(孔融)의 당(堂) : 후한(後漢) 말년에 북해 상(北海相)을 지냈던 공융은, 자리 위에 손님이 항상 가득하고, 술동이 속에 술이 늘 비지만 않는다면, 내가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술과 빈객을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한다. 《後漢書 卷100 孔融列傳》
[주D-010]서막(徐邈)의 성인(聖人) : 서막은 삼국 시대 위(魏)나라 사람이다. 당시 금주령이 엄한 속에서도 술을 마음껏 마시고 취하여, 술을 “성인에 일치한다.”라고 높이기도 하였다. 조조(曹操)가 이를 듣고 성을 내자, 선우 보(鮮于輔)가 “취객들이 술이 맑은 것을 성인(聖人)이라 하고 술이 탁한 것을 현인이라 한다.”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三國志 卷27 魏志 徐邈傳》
[주D-011]용문(龍門) : 성망이 높은 사람의 비유이다. 여기서는 설월당 김부륜을 가리킨다.
[주D-012]양담(羊曇)의 비통함 : 양담은 태산(泰山) 사람으로, 진(晉)나라 때 재상 사안(謝安)의 생질로 그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사안이 죽은 뒤, 사안이 오가던 곳을 피하다가, 언젠가 술에 크게 취하여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도 모르게 사안이 거닐던 곳에 이르러, 몹시 슬퍼하고 통곡한 고사가 있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주D-013]조재(祖載) : 장지(葬地)로 가기 전에 영구(靈柩)를 수레에 싣고 제전(祭奠)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주D-014]유자(孺子)의 …… 왔으니 : 유자는 후한(後漢)의 고사(高士) 서치(徐穉)의 자(字)이다. 서치가 평소 술에 담근 솜을 잘 말려 두었다가 문상을 갈 일이 있으면 구운 닭을 그 솜으로 싸 가지고 가서 솜을 물에 담가 우러난 술과, 닭을 무덤에 차려 놓고 제사를 올렸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53 徐穉列傳》
惟公信厚存心,周詳談事,休焉有容,泊然不忮。孝友之行,著於鄕閭;恭愼之德,聞於遐邇。人稱一世之善士,必先雪月,其視浮沈末路而失其本心者,誠不忝先生之門矣,豈不韙哉!
至如陸沈於千古,塵同於衆醉,實李廣之數奇,何怨尤於彼蒼!所可尙者,白髮蒼顔,歸臥江鄕,客滿孔融之堂、人中徐邈之聖。談桑麻、遺氛埃,籠風月於短章、宣性情於長篇,以終餘年,實林泉之勝事也。
如生者,輕疏狂妄,無所取裁,賴先契之厚分,得從容於龍門,爲幸大矣。今者失長者之訓誨、念先人之音容,在諸弔客之列,尤切羊曇之慟。祖載有期,來相神紼,以平昔酬酢之酒、漬今日孺子之緜,未昧英靈,來歆菲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