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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그할까여?

Re: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넘 어려운 영화라서 퍼왔슈

작성자Roset|작성시간09.05.22|조회수949 목록 댓글 9

 

 기억에 낡은 필림처럼 툭툭 끊기기는 해도 그 당시 참 충격적으로 봤던 영화...

하지만 한번은 더 보고 싶었으나 기억의 수면에 떠오르지 못했던 이 영화를 씬디가 보여주니 넘 반갑고 고맙네...

자막없이 보긴 불가능한 영화라서 여기 리뷰를 넘 잘 쓰신 분이 있어 옮겨봅니다.... 

 

 http://sabbath.egloos.com/1505758  <----이 블러그에 있어요. 원본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 1962)]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포 영화입니다. 지금도 이 작품을 만났을 때가 선명히 기억납니다. 2005년 여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로버트 알드리치 회고전"을 했을 때, 저는 그걸 마치 하늘의 계시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경애하는 박찬욱 감독님의 추천을 따라서 로버트 알드리치의 [키스 미 데들리(Kiss Me Deadly, 1955)]를 보기 위해 영문 자막과 씨름하며 그해 봄을 지나온 터였기 때문입니다. 그 영화를 예닐곱 번은 보고 결국 자막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도 한 번 보여준 직후였는데, [키스 미 데들리]를 포함한 열세 편의 알드리치 영화를 상영한다니 아무래도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키스 미 데들리]를 만들었다는 것 외에는 알드리치에 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기대하는 영화도 없었고, 그래서 선택은 그저 서울아트시네마의 소개글에 맡길 뿐이었습니다. 그 열세 편의 영화 중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를 가장 먼저 보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했는데, 첫 상영일인 18일은 깜빡 잊고 그냥 흘려보내버렸고, 다음 날 19일에 상영하는 작품 중 이 작품 앞에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영화 소개가 있었기 때문에 입문자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그랬습니다. 당시 영화 공동체에서 같이 활동하던, 막 필름 누아르에 매혹을 느끼고 있던 형을 이것도 필름 누아르라고 꼬셔가지고 함께 보러 갔는데, 그 때 왜 더 많은 사람들을 꼬시지 않았는지는 아직도 의문이고 후회되는 일입니다. 그 날 저는 의자 등받이에 쑤셔 박히다 못해 뒷좌석으로 튕겨 나가겠다 싶을 정도로 짓눌린 채 134분을 보낸 뒤 뭐 이딴 감독이 다 있어 이번 회고전 내가 다 보고 만다 하는 심정으로 상영관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여름, 저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아니라 낙원 상가 건물)의 비인도적인 냉방 장치에 몸을 망가뜨려가면서 [아파치(Apache, 1954)]를 제외한 열두 편을 모두 보았습니다. 한 감독의 영화를 극장에서 필름으로 그렇게 몰아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제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그리고 그 열두 편의 영화중에서도 첫 경험,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의 위치는 실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그 영화를 "로버트 알드리치의 5대 걸작" 중 하나로 꼽았는데, 그 중에서도 선호도로 따지면 1, 2위를 다툴 정도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작품 자체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이 영화는 제가 가장 선호하는 공포 영화의 유형을 제시한 작품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한정된('폐쇄된'이 아니라) 공간, 소수의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 인물의 심리에 대한 적확한 탐구, 거기서 비롯되는 갈등의 표현으로서 나타나는 폭력, 쉽게 타협하지 않는 결말.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는 이 모든 요소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고루 갖춘 채 두 시간 넘게 꾸준히 밀고 나갑니다. 그 후 저는 신도 가네토의 [오니바바(鬼姿, 1964)],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Carrie, 1976)],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파리(The Fly, 1986)], 로만 폴란스키의 [세입자(The Tenant, 1976)] 등 혼을 쏙 빼놓는 공포 영화를 만나면 꼭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의 맥락에서 생각을 해보는 못된 습관을 갖게 됐는데, 이 습관 아직도 못 버렸습니다. 아마 말만 안 했다 뿐이지 그 해 여름 네 번 상영됐던 이 영화를 보신 관객 분들 중에 저처럼 되신 분들 꽤 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12분에 걸친 도입부가 끝난 뒤 '어제'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에돌러 말하는 법 없이 단숨에 갈등의 핵심을 향해 돌진합니다. 할리우드의 대배우였던 블랜치 허드슨(조안 크로포드)은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자택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부 엘바이라(메이디 노먼) 외에는 바깥에서 찾아오는 이도 없고,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침실이 있는 2층을 벗어날 수도 없는 생활입니다. 화려한 전성기를 누리다 갑자기 그런 처지가 되었으니 남은 생 내내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 채 지낼 법도 하지만 그녀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품위를 잃지 않은 채 살아왔으며 최근에는 그런 인내에 대한 자그마한 보답도 받고 있습니다. TV의 시대가 찾아와 스튜디오가 옛 영화의 방영권을 방송국에 넘기면서 블랜치가 출연했던 영화들이 TV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한 겁니다. 비록 중간중간 애완견 사료 광고 따위가 끼어들어 흐름을 잘라먹는 방송이긴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방송을 보고 자신들의 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되새기는 팬들이 여전히 있고, 허드슨 가의 저택 옆에 사는 베이츠 부인(안나 리) 같은 이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블랜치의 자매 제인(베티 데이비스)은 베이츠 부인에게 꽃을 받아 블랜치에게 전해줘야 하는 자신의 입장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베이비 제인이라는 이름으로 보드빌 쇼 업계에 나가 네 식구를 먹여 살렸고 베이비 제인 인형이 제작되어 팔렸을 정도의 인기를 누렸던 자신이 할리우드에서는 대배우 블랜치의 영향 아래 빌붙어 살았고 자동차 사고 이후엔 하반신 불수인 자매의 시중이나 들며 용돈을 받아 살아온 것만으로도 분한데 이젠 TV 때문에 옛 할리우드 시절에 느꼈던 깊은 좌절감을 다시 느껴야 할 처지이니 말입니다.
 고전기 할리우드의 위대한 경제성을 터득한 작품들이 그러하듯,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도 중심 갈등을 조성하는데 긴 시간을 들이지 않습니다. 각각의 장면(sequence)들은 그 순간 모든 의미를 발휘한 뒤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 다시 환기되며 갈등 요소를 강화하기도 하고 앞의 정서를 뒤로 계속 이어가기도 합니다. 베이츠 모녀가 블랜치의 영화를 보는 장면이 블랜치가 자신의 영화를 보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거기 제인이 끼어들어 TV를 꺼버린 뒤 도입부에 제시된 할리우드 시절을 환기시키며 둘 사이의 깊은 골을 드러내고, 블랜치가 새장을 바라보며 시름을 달래고, 베이츠 부인이 찾아와 블랜치에게 줄 꽃을 꺾어왔다며 제인과 대화하고, 제인이 블랜치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며 비아냥 거리다가 새장을 청소하겠다며 나가고, 나가던 제인과 들어오던 엘바이라가 마주치며 적대적인 시선을 교환하고, 엘바이라가 블랜치에게 제인의 횡포와 해결 방안을 이야기하다 다시 제인이 새장을 갖고 들어오는 바람에 분위기가 싸해지고… 하는 초반부의 흐름이 단적인 예입니다. 시간은 물론이고 베이츠 부인의 집과 허드슨 가의 1층, 계단, 2층이라는 공간이 긴밀하게 붙어있는 상황에서 세 인물이 두 사람씩 짝을 이루어 들고나면서 거기 없는 사람(제인, 베이츠 모녀), 혹은 이미 지나간 시간(보드빌 시절, 할리우드 시절)을 불러들여 갈등을 조성하는 구조 덕분에 개개의 장면들은 마치 하나의 장면인양 붙어가고,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장면만으로 모든 걸 다 보여줄 듯이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쇼트가 끊길 때, 대화가 끊길 때, 인물이 퇴장할 때, 장소가 바뀔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틈을 메우면서 장면을 더 진행시킨다는 건 결코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인물, 서로 다른 장소가 등장하고 퇴장할 때 생기는 시간 동안 장면의 정서를 유지하고 새로 찾아온 인물과 장소 앞에서 새로운 행동과 태도를 취하면서도 여전히 그 정서를 품은 채 언제든지 기회만 있으면 그걸 다시 꺼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마 쇼트를 끊지 않는 롱 테이크가 거기에 좀 더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겁니다. 롱 테이크는 시간과 공간을 좀처럼 생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전기 할리우드의 대가들은 종종 이야기의 전개에 혼신의 힘을 다하면서, 즉 계속 새로운 사건을 연달아 꺼내고 그 흐름에 불필요한 빈 시간들을 들어내면서도 여전히 한 장면, 한 순간의 의미를 오랫동안 지속시키는 솜씨를 보여주곤 합니다. 이쯤하면 디졸브나 페이드아웃 들어가면서 '몇 시간 후', 혹은 '며칠 후'로 시간이 바뀌거나 '한편 비슷한 시간 다른 곳에서는…'이라며 장소랑 등장인물을 바꾸겠지 싶은 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더 끌고 나가는 경우가 허다한데 또 그런 게 한 마디로 해도 될 것을 열 마디로 질질 끄는 지루한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 요소들을 짧은 시간에 보여준 뒤 그것들을 자꾸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섞어가며 인물과 상황을 깊이 파고드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일단 소재를 꺼냈으면 거기서 단물 쓴물 짠물 신물 다 빨아먹고 새로 물 넣어 한 번 더 우려먹은 뒤 남은 건더기는 자근자근 씹어 먹고 나머지는 재활용하겠다는 집요함의 발현이라고 할 만합니다. 할리우드의 반골 감독이 만든 대표작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도 그런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의 집요한 매력이 넘칩니다. 아마 하워드 혹스나 라울 월시, 빌리 와일더 영화랑 비교해보면 의외로 접점이 많이 보일 겁니다.
 게다가 로버트 알드리치의 영화는 그 중에서도 좀 징하다 싶은 면이 있습니다. 2005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로버트 알드리치 회고전"이 열렸을 때 박찬욱, 오승욱 감독 같은 이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 바로 알드리치 영화는 어디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알드리치의 영화가 곧잘 기막힌 반전을 보여준다거나 난데없이 툭 끝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통 영화였으면 끝나고도 남았을 상황에서 갈등을 더 전개시키고 인물을 더 파고든다는 의미입니다. 알드리치가 반골 감독으로 불린 데에는 과격한 소재보다는 그 집요한 연출 태도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도 예외는 아닙니다. 영화 시작하고 30여 분 가량 지나 블랜치, 엘바이라, 제인이 처음으로 한 공간에 모였을 때 느껴지는 감정의 크기, 그 대놓고 드러나는 적개심 같은 것은 보통 영화의 클라이맥스 언저리에서나 기대함직한 수준입니다. 대사가 오가는 속에 뺨을 친다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넌 해고야!'라고 부르짖는 상황으로 이어져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팽팽함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기를 출발점으로 삼은 뒤 1시간 40여분 동안 계속 더 나갑니다. 세상을 날려버릴 폭탄을 한참 숨겨오다가 중간쯤에 보여준 뒤 절정에서 적당히 실랑이를 벌인 끝에 폭발시켜 버리는 걸로 만족하는 대신 폭탄을 아예 처음부터 떡 하니 놔두고 X-레이도 비춰보고 전문가를 불러다 강의도 듣고 위험을 무릅쓰며 만지고 두들기기까지 하면서 점점 더 그게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파괴력은 얼마나 되는지 왜 해체할 수 없는지를 낱낱이 알아가게 될 때의 두려움을 제공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그토록 강하게 나가는 영화들은 종종 관객들의 주의를 놓치기도 합니다. 너무 센 나머지 이야기가 남 일처럼 동떨어져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세게 시작해서 더 보여줄 게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영화의 톤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톤을 유지하면서 계속 끌고 갈 수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의 경우, 이 문제를 돌파해낸 일등 공신은 베이비 제인, 베티 데이비스입니다. 할리우드의 빛나는 별로 군림하던 젊은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 60년대 초 제작 준비 당시 워너브라더스의 제작자에게 "그런 늙다리 할망구 나오는 영화에 돈을 대줄까 보냐!" 소리까지 들었던 이 배우는 좋아, 그렇다면 내가 늙다리 할망구가 어떤 건지를 몸서리쳐지게 보여 주겠어, 라는 듯한 태도로 심지어 그녀의 젊은 시절을 알지 못하는 관객마저도 경악하게 할 만한 연기를 펼칩니다. 거기에 대적할 수 있는 건 아마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 1950)]에서 역시 퇴물 여배우 노마 데스먼드를 연기한 글로리아 스완슨 뿐일 것입니다. 이는 연기의 수준을 두고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연기의 형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대사의 내용 이전에 그 대사를 토해내는 꽥꽥거리는 목소리, 일그러진 주름으로 덮이고 다시 화장으로 떡칠된 얼굴의 표정, 비척이는 걸음걸이와 과장된 몸짓으로 이미 모든 것을 표현하는 베티 데이비스의 연기는 유성영화의 세계에서 무성영화의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노마 데스먼드의 모습을 절로 떠올리게 합니다.
 이미 무성영화가 멸종된 시점에서, 그런 과장된 연기는 처음에는 굉장히 이질적이고 한편으로는 우습게 보이기까지 할 수 있고, 실제로 [선셋 대로]와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모두 초반에는 약간의 코믹한 분위기가 가미됩니다. 하지만 능숙한 배우가 캐릭터의 모든 감정, 의도를 그럴 듯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온 몸으로 펼쳐낼 때, 그 캐릭터의 세계는 영화를 압도하면서 보는 사람이 홀릴 수밖에 없는 괴력을 발휘합니다. 어린 시절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다 늙어서까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제인의 모습을 웃음으로 대하는 건 간단한 일이지만, 옛 무대 의상까지 갖춰 입고 소녀의 모습으로 선 그녀가 공연을 재현하다가 문득 자신의 늙음을 깨닫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에조차 제인을 비웃으며 괴팍하다 못해 돌아버린 미치광이 정도로만 취급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과잉처럼 보이던 연기는 어느새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응어리의 흔적처럼 보이고, 점점 더 속에 감춰진 내용물을 파헤쳐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역을 맡은 조안 크로포드도 잊을 수 없습니다. 크로포드는 데이비스 같은 연기 스턴트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영화 내내 활개치고 다니는 제인의 캐릭터에 한 치도 밀리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곱게 늙은 대배우의 인자함만을 보여줄 것만 같던 블랜치는 제인의 광기가 거세질수록 절박한 처지에 몰린 사람이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기꺼이 다리를 내주고 시작하는 크로포드의 연기는 블랜치의 자유가 제인에 의해 하나씩 차단될 때마다 오히려 더 강력해집니다. 여전히 전성기의 얼굴을 간직한 이 왕년의 스타는 두 팔만으로 바닥을 기고, 쥐새끼처럼 비참한 모습으로 초콜릿을 주워 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면서 제인이 만들어 가는 감옥 속 공포의 농도를 점점 더 짙게 꾸려갑니다. 게다가 크로포드의 연기는 영화를 다시 볼 때 더 많이 보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블랜치의 마음속에 쌓여온 깊은 증오를 목격한 다음 다시 이 자매의 혈투를 보고 있으면, 블랜치는 더 이상 꼿꼿하고 온화하지만 제인의 위협을 두려워하고 때로는 애걸하다 마침내 쓰러지고 마는 희생자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인을 달래려는 대사 사이사이에 비치는 날카로운 가시들, 혹은 제인에게 정곡을 찔린 순간의 침묵들이 더 빛을 발하면서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를 일방적인 감금과 수난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십 년을 이어온 잔혹한 대결의 이야기로 보게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캐스팅에 관해서는 그냥 '대단하다'로 말하고 넘어가는 것 외에 더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가 [선셋 대로]나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1952)]에 비해 직접적으로 할리우드 세계를 끌어들이지 않으면서도 두 영화 못지 않게 영화 예술의 창작자들을 떠올리게 하며,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할리우드 혹은 쇼 비즈니스 업계에 관한 영화로서 언급된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캐스팅이 실제 무성영화 시대의 감독과 배우들을 유성영화 속에 불러다 놓고 쇠락한 무성영화 감독과 배우를 연기하게 한 [선셋 대로] 만큼이나 악랄하기 때문일 겁니다. 두 주인공 제인과 블랜치는 베티 데이비스와 조안 크로포드의 삶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가며 만든 듯한 캐릭터입니다.
 베티 데이비스는 연극계에서 연기를 시작해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하다 유니버셜의 캐스팅 담당자의 눈에 들어 할리우드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잡다한 영화를 찍으며 실패를 거듭했고, 1930년대 초 워너브라더스로 옮긴 후에도 그 독특한 외모(커다란 눈) 때문에 '이 배우를 대체 어떤 부류의 영화에 써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방치 당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워너에서 기회를 잡게 된 것은 어느 안목 있는 제작자 덕분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에 드는 배역을 찾고 그 역을 얻게 될 때까지 제작자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데이비스 자신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거절하는 독특한 역들을 오히려 자신의 기회로 보며 나섰고,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파업까지 벌이며 저항한 끝에 30년대 중후반에는 워너브라더스의 대형 스타로 거듭나며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그 인기는 실로 대단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39)]의 제작 준비 당시 스칼렛 오하라에 어울리는 배우 1순위로 꼽히기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40년대 말 즈음에 스튜디오와 불화를 겪은 뒤 독립했고,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 1950)]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기는 했으나 이후 50년대에는 실패한 영화들에서 드문드문 볼 수 있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조안 크로포드는 출발부터 달랐습니다. MGM과 전속 계약을 맺은 크로포드는 1924년 무성영화 시기부터 영화를 시작했고, 이듬해인 25년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으며 베티 데이비스가 워너에서 첫 영화를 찍던 1932년 무렵에는 이미 클라크 게이블이나 그레타 가르보와 함께 주연으로 나오는 거물이 돼 있었습니다. 30년대 말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아가씨 이미지에 질린 관객들에게 잠시 버림받기는 했지만 이내 베티 데이비스처럼 스스로 '안 예쁜' 역들을 찾아가며 진정한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고, 마침내 워너브라더스로 옮긴 40년대, 베티 데이비스 대신(!) [밀드레드 피어스(Mildred Pierce, 1945)]로 큰 성공을 거두며 이후 주구장창 잘 나갔습니다. 50년대를 거쳐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가 나올 무렵에는 인기가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데이비스처럼 격렬한 부침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베티 데이비스와 조안 크로포드 사이의 라이벌 관계는 아마도 [밀드레드 피어스]를 기점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은 심지어 언론을 통해서까지 서로에게 공개적으로 악담을 일삼을 정도였습니다.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는 그런 두 배우를 데려다 온갖 고난과 부침을 겪었던 데이비스에게서 화려한 스타 시절을 빼앗고, 크로포드에게서는 다리를 빼앗은 뒤 한 집에 가둬놓은 셈입니다. 그리하여 둘은 마치 자신들의 인생에서 뽑아낸 듯한 인물을 연기하며 스스로를 후벼파는 동시에 촬영 사이사이 서로를 후벼팠습니다. 제인이 블랜치를 구타하는 장면에서 데이비스는 크로포드를 실제로 걷어 차 머리를 찢어 놓았고, 크로포드는 앙갚음을 위해 제인이 블랜치를 옮기는 장면에서 자신의 주머니에 무거운 추를 넣어두어 데이비스가 허리를 다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데이비스는 촬영장에 코카콜라 자판기를 설치하여 당시 펩시콜라 중역이었던 크로포드를 약 올렸으며, 크로포드는 데이비스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자 반대 캠페인까지 벌였습니다. 감독 로버트 알드리치 이하 많은 이들은 두 배우가 촬영 중일 때만큼은 말썽부리는 일 없이 충실히 연기에 임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물론 완성된 영화를 보면 그 말을 믿을 만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배역이 그 모양이고 보면 충실할 수밖에 없었지 않겠나 싶습니다. 크로포드 같은 경우엔 좀 억울했을 수도 있겠지만 심지어 그런 좀 억울한 위치조차도 조안 크로포드라는 배우의 이미지에 잘 어울릴 정도입니다.
 두 배우의 전성기가 그리 먼 과거가 아니었고, 여전히 드문드문 둘의 신작을 접할 수는 있었던 1962년 당시에 비해, 오늘날 보는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의 '현실 환기력'은 다소 약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허구 바깥에 있는 현실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오로지 두 주역들의 스타이미지 자체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영화의 중심에 선 베티 데이비스의 연기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데이비스가 보여주는, 온몸을 활발하게 사용하여 인물을 설명해 내는 과장된/무성영화스러운 연기는 영화에 관한 영화 속에 등장할 때 더 의미심장해지곤 합니다. 거기엔 야릇한 자기 반영 같은 느낌이 끼어듭니다. 유성영화 세계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무성영화식 연기가 튀어나오며 좌중을 압도할 때면 어쩔 수 없는 이질감과 소름끼칠 정도의 영향력이 동시에 나타나며 슬픔과 공포를 불러일으킵니다(물론 뛰어난 배우가 연기하는 경우에 그렇단 얘깁니다). 그건 캐릭터의 극단적인 성격을 보며 느끼는 감흥이기 이전에 지금은 쓸모 없지만 대단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옛 것을 바라볼 때 느끼는 아련함에 비교할 만한 감정입니다. 그런데 그 옛 것이 피라미드라든가 거북선 같은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고 반응하는 한 인간일 때, 그는 시대착오적인 괴팍한 인물로만 남는 대신 그 뒤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위엄과 상실감을 지닌 인물로 보입니다.
 그런 종류의 연기가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라는 영화의 맥락 속에 등장하는 순간, 이 영화는 몇 개의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듭니다. 무대 공연이 대중 예술로서의 자리를 영화에 내주는 시간(제인과 블랜치 사이), 무성영화가 유성영화에게 밀려나는 시간(제인과 블랜치의 연기 사이, 혹은 이 영화가 환기하는 [선셋 대로]), 그리고 극장이 TV에게 밀리는 시간. 마지막 시간은 다른 말로 하면 3~50년대에 찬란하게 빛을 발했던 고전기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무너지고 그 속에서 양산된 스타들이 쇠퇴기에 접어들며 마틴 스콜 뭐시기, 브라이언 드 어쩌고, 스티븐 스필 뭐였더라 같은 TV로 영화 보고 자란 '애송이'들이 대학 다니면서 '두고 봐라 니들이 놀라 자빠질 죽이는 거 들고 간다'며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지만 아직 기관단총으로 사람 몸을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거나 죽은 딸이 살아나서 부모를 뜯어먹는다거나 하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 혁명적이지는 않았던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위치한 베티 데이비스가 보여주는 연기는 직접적인 언급을 하진 않지만 이 돌이킬 수 없는 영화사 속의 과도기들을 슬그머니 불러내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브랜치, 엘바이라, 베이츠 부인 등과 분명히 구분되는 주인공 제인의 표현 하나하나가 이미 그 자체로 영화의 시선을 결정한다고 까지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연기에 더하여,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는 두 자매의 심리극 속에 예술가의 모습을 끌어들이는 데에 효과적인 전략을 하나 더 구사하고 있습니다. 바로 베이비 제인을 무대에 올려놓는 연출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영화 전체가 실내극의 양식을 띠고 있는 데다가 특히 제인이 혼자 공간에 남아 대사를 치는 장면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때로는 어린 시절 자신의 공연을 반복하는 장면까지 나오는데, 그 때마다 양식화된 조명과 황량한 실내 공간이 무대의 느낌을 더해줍니다. 이런 장면들은 베티 데이비스의 일관된 연기 양식과 그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미술 및 촬영의 힘 덕분에 영화 전체 맥락에서 조금도 튀지 않으면서도 제인에게 과거에 얽매인 미치광이 이상의 것, 실패한 예술가의 아우라를 부여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슴을 깊숙하게 찌르는 부분은 제인이 블랜치를 흉내내는 장면입니다. 마치 [선셋 대로]에서 노마 데스먼드가 찰리 채플린을 연기하는 모습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제인은 블랜치를 연기합니다. 그런데 제인이 블랜치 앞에서 블랜치를 연기하는 첫 번째 흉내내기와는 달리, 두 번째 흉내내기는 좀 낯섭니다. 블랜치가 아닌 제3자와 전화로 통화하던 제인은 통화 도중 블랜치를 연기했다가 다시 자신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블랜치 부분이 끝나고 제인 부분으로 옮겨왔을 때, 제인은 마치 '제인의 태도'를 흉내내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 묘한 순간, 갑자기 제인이라는 캐릭터 뒤에서 베티 데이비스의 모습이 보입니다.
 소수의 예를 제외하면, 극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 배우가 표현하고 있는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압니다. 예컨대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1995)]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이단 헌트가 뭘 했다고 말하든 톰 크루즈가 뭘 했다고 말하든 큰 차이는 없습니다. 연극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 이뤄지는 암묵적인 약속입니다. 그게 없으면 허구의 극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의 흉내내기 장면이 야릇하고 낯선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그 짧은 순간 이 암묵적인 약속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스크린 속의 인물이 제인 허드슨이 아니라 베티 데이비스라는 사실을 알긴 하지만 그래도 '저건 제인 허드슨'이라고 받아들이며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베티 데이비스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놔두고는 제3의 관객(수화기 건너편의 대화 상대)을 향해 '이게 제인 허드슨'이라고 주장해버립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거기서 보이는 건 제인 허드슨이라는 가면이 아니라 베티 데이비스의 얼굴입니다. 퇴물 배우를 연기하는 퇴물 배우를 보는 것입니다. 소격 효과, 거리 두기 따위의 어휘가 떠오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만, 저는 여기서 오히려 이중의 감정 이입을 느낍니다. 제인 허드슨이라는 극 중의 배우를 바라보는 관객으로서의 위치와 베티 데이비스라는 실제 배우를 바라보는 관객으로서의 위치가 적극적으로 뒤섞이면서 영화가 영화 만드는 이들과 융합하는, 그래서 '어차피 저건 다 뻥'이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아찔한 순간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가 계속해서 극 중의 허구가 아니라 극 바깥의 사람들을 불러내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여전히 허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미술, 조명, 촬영 등의 공이 무척 큽니다. 베티 데이비스가 아무리 과장된 몸짓을 동원하며 강박적인 미치광이의 모습을 잘 표현한다고 해도, 또 아무리 두 자매를 얽고 있는 증오와 죄의식이 깊게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그게 웬 화사하고 발랄한 스크루볼 코미디스러운 공간에서 벌어진다면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의 주무대인 허드슨 가 저택이 두 자매만큼이나 극단적인 자태를 선보이면서 분위기를 휘어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베티 데이비스의 연기는 좀처럼 그 이질감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택이라고 하기엔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촬영 감독 어네스트 홀러의 눈을 거친 세트는 배우들만큼이나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하면서 '제3의 주인공' 자리를 꿰어찹니다.
 허드슨 가의 이층 짜리 저택 안에는 지나치게 튀지는 않으면서도 "고딕"이니 "바로크"니 하는 어휘를 떠올리게 하는 거창한 가구들이 여기저기 가득하고, 거기에 여느 필름 누아르가 부럽지 않을 극단적인 명암 대비를 갖춘 조명이 비춰지면서 기괴한 풍모를 발휘합니다. 물론 빛과 그림자를 뚜렷하게 만들어내는 조명은 공포 영화로서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은 40년대 발 루튼이 제작한 공포영화들처럼 '자, 저 보이지 않는 구석에 무언가 숨어 있단다'식으로 어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빛에 의해 드러나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어둠을 사용하려는 듯이 보인다는 게 재밌습니다.
 이 영화 속의 많은 장면들에서 카메라는 인물만을 잡는 대신 그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실내의 정경까지를 뚜렷하게 잡아내고 있는데, 거기에 강한 빛이 비춰지면서 확고하게 뻗은 직선이나 거창한 곡선을 담은 벽지, 문틀, 창문, 등잔, 탁자, 계단, 그림 따위가 낱낱이 드러나며 화면을 빼곡하게 채웁니다. 빼곡한 정보량이 실로 압도적이어서, 저는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보기까지 한 1년 간 이 영화의 화면 크기가 2.35:1이라고 기억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득 찬 사물들의 주변에는 그림자들이 곰팡이처럼 내려앉아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공간을 가려서 뭘 감추려고 하는 그림자가 아니라 공간과 사물, 혹은 인물들에게서 쇠고기 핏물 번지듯 스윽 흘러나온 그림자 같습니다. 벽지의 얼룩무늬라든지, 가구들의 복잡하고 호화로운 모양새가 눈을 어지럽히기 때문에 심지어 자를 대고 줄을 그어서 이쪽은 빛 이쪽은 어둠이라고 나눠 놓고 찍은 듯한 장면에서조차 그렇게 보입니다. 마치 집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들어서 스스로 신경 질환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이런 모습은 두 자매의 균형을 잡아주는 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제인의 '무대 장면'도 강렬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촬영의 덕을 더 많이 보는 쪽은 블랜치입니다. 아무래도 블랜치 쪽이 당하는 입장이다 보니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세트 전체의 암울함이 블랜치의 심리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건데, 무게 면에서 제인 쪽의 비중이 좀 더 큰 이야기라는 걸 생각해보면 크로포드의 열연에는 생각 이상으로 촬영의 도움이 컸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가장 자주 등장하는 장소인 블랜치의 침실은 제법 밝은 조명을 쓰고 있음에도 몸을 일으키는 데에 쓰는 손잡이가 달린 침대랄지, 왜 달렸는지 알 수 없는 쇠창살이랄지, 침대 옆에 붙어있는 책상이나 식탁 같은 것이 자꾸 블랜치의 장애를 상기시킵니다. 2층이라는 조건도 거기에 한몫 해서, 계단은 보기만 해도 무섭고, 난간으로 가로막힌 복도는 그리 넓지도 않은 데다 맞은 편에는 제인의 침실이 있는지라 심지어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걱정이 됩니다. 특히 블랜치 침실 바로 앞의 복도는 저 멀리 있는 창에서 뻗어 나오는 빛과 그 빛이 가려지면서 드리워지는 어두운 그림자의 모양새가 꼭 '이곳은 필름 누아르 보호 구역임'이라고 도장 쾅 박아놓은 것처럼 생겨서 블랜치가 아래층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휠체어를 느릿느릿 끌고 나오면 그걸로 이미 공포 영화가 되고 말 정도입니다. 거기다 제인에게 당하는 심리를 처절하게 표현하고자 종종 독특한, 다른 캐릭터에게는 쓰질 않는 앵글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통에 그 강도가 한층 더합니다(이 영화에서 딱 한 번 나오는 부감 쇼트 같은 경우는 제가 본 것 중 가장 충격적인 부감 쇼트였습니다).
 이런저런 온갖 강점을 갖고 있는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가 초반에만 좀 세고 뒷심이 딸린 영화가 아니라 초반에는 센데 후반에는 더 센 영화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영화의 각본이 철저하게 제인과 블랜치에게만 초점을 맞춘 공이 큽니다. 사실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고리들은 많이 있습니다. 잊혀진 왕년의 스타가 TV를 통해 다시 부활하는 시기고, 옆집에는 팬도 있고, 팬레터를 보내는 팬들이 전국에 깔린 상황이고, 그 자매도 나름대로 다시 무대에 서고 싶어하고. 팬도 집에 부르고 기자도 좀 찾아오고 하면서 TV라는 소재를 이용하기도 하는 등 뻗어나갈 구석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오로지 제인과 블랜치 둘만 놓고 들입다 판 결과가 바로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입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공포 영화들이 거의 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이 가진 밀도라는 건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꾸 자극을 더하기 위해 새로운 사람, 외부의 자극을 끌어오는 대신 중심 인물들이 자기네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하려고 어디까지 발버둥치나를 보는 데에서 오는 정신적 즐거움은 물론이고, 대체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를 계속 헤집으면서 사람이 어디까지 가 버릴 수 있나를 보는 데에서 나오는 공포란 정말이지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에도 여러 조연들이 등장합니다. 베이츠 부인도 있고, 엘바이라도 있고, 음악가 에드윈(빅터 부오노)도 있고. 모두들 두 자매의 싸움에 개입하게 되고, 제인과 갈등을 겪는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영향은 모두 제인과 블랜치 사이에서 결론이 납니다. 말하자면 조연들은 모두 제인과 블랜치 사이에 있는 갈등을 자꾸 자극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 이야기 흐름이 갑자기 새로운 인물들과 자매 사이로 옮겨가면서 문제가 '바깥'에서 해결된다든가 하는 일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각본가는 그런 기대 심리를 역이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드문드문 새 인물을 끌어들이면서 자매 사이의 갈등을 더 뜨겁게 만드는 동시에 마치 그 새 인물 덕분에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처럼 희망을 심어주다가 오히려 그들을 하나씩 중심 전개에서 제거해가면서 높아진 밀도만 주워 담은 채 계속 앞으로 가는 겁니다. 실로 악질적이고 실로 알드리치 영화답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질질 끌려가면서 두 자매의 적나라한 증오를 온 몸으로 겪은 뒤 기진맥진하는 수밖에.
 다만, 메인 플롯의 전개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베티 데이비스와 조안 크로포드 외의 다른 배우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역할을 좀 더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알드리치는 캐스팅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체 어디서 저런 배우를 알아가지고 데려와서 저런 역에다 써먹었나 싶은 그 능력이 최대로 발휘된 영화 중 하나가 이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입니다. 조연은 물론이고 한두 장면 나오고 마는 단역, 특히 객관적으로 봐서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닌 아역 배우들마저도 잊을 수 없는 힘을 발휘합니다. 이 부분에서 알드리치의 반골 정신이랄까 알드리치 영화의 디테일이 가진 힘이 또 한 번 드러나는데, 정말 뻔하디 뻔한 캐릭터일 배역이 이상한 생동감이랄까 불손함을 가지고 살아나서 영화 속의 세계를 부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악가 에드윈의 어머니인 딜리아(마조리 베넷)를 한 번 보시길. 딱 두 장면에 밖에 안 나오고, 제인이나 블랜치와는 만나지도 않고, 별로 하는 일도 없어서 보통 영화에 나왔으면 지극히 흔해빠진 '어머니' 캐릭터나 하고 말았을 단역인데 이 영화에선 화면을 장악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드리치의 또 다른 걸작 [키스 미 데들리]에 나오는 사악하기 짝이 없는 검시관 아저씨의 마누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유 모를 사악함, 능구렁이라기보다는 살쾡이를 연상케 하는 태도로 아들을 다독이고 하는 모습은 압권입니다. 그 외 [선셋 대로]의 안 팔리는 시나리오 작가 조 길리스에 대한 알드리치의 대답과도 같은 에드윈의 캐릭터라든지, 은근히 동성애적 분위기를 풍기는 엘바이라, 선량한 사람이긴 하지만 제인 때문에 화가 나서 "저 년 확 죽여버릴까 보다"라고 말하는 베이츠 부인, 그 말에 "뭘로 죽일까요?"라고 맞장구 치는 딸 등 떼어놓고 보면 대체 뭐 이런 인간들이 있나 싶은 캐릭터들이 한데 모여서 알드리치스러운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특히 베이츠 부인의 딸을 연기한 사람은 무려 베티 데이비스의 딸인 바바라 데이비스 메릴입니다. 정말 악랄한 캐스팅입니다).
 이런 부분들은 분명히 메인 플롯의 전개와 상관은 없는 것인데, 저는 영화의 디테일이란 이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냥 가난뱅이 음악가 에드윈이 제인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도 되는 거지만 굳이 그 사이에 어머니를 끼워 넣어 킬킬거릴만한 블랙 유머를 집어넣는다거나, 도입부 베이비 제인의 공연 장면에서 전체 이야기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객석의 엑스트라에게 "아가씨, 모자 좀 벗고 보시죠?"하는 대사를 준다든가 하는 부분. 계산적으로 접근하자면 꼭 안 넣어도 되는 걸 공들여서 넣고 보여주고 하는 데에서 나오는 영향력.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의 세계에 가득 드리운 곰팡이 그림자는 아마 거기에 의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그렇습니다. 단지 머리를 짜내서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 인물을 집어넣은 뒤 결말을 향해 내달리기만 하는 '영리한' 영화들은 놓치고 지나가는 여분의 순간들. 그게 사실 이 허구의 세계에 살을 붙이고 잔털을 붙이고 각질, 흉터, 땀방울까지 붙이면서 중심 인물들이 활개치고 다닐 무대를 확고하게 세워주는 겁니다.
 로버트 알드리치는 자기 제작사를 세워 영화를 만들던 감독이었습니다. 몇 차례 실패를 겪기도 했지만 아무튼 장 피에르 멜빌처럼 자기 회사를 가지고 오랫동안 버티면서 많은 영화를 찍었습니다.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의 필수 조건은 흥행과 타협을 잘 해야한다는 겁니다. 알드리치도 예외는 아니라서,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르의 틀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장르의 쾌감을 도외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의 경우도 명백히 드러나는 [선셋 대로]의 영향은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두 해 전에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Psycho, 1960)]의 도움도 컸을 것입니다. 베티 데이비스와 조안 크로포드라는 지긋지긋한 라이벌을 처음으로 한 영화에 출연시켜 싸움을 붙인다는 기획도 꽤 선정적입니다. 로저 코먼스러운 기획이라고 하면 좀 너무한가 싶지만 기본 골조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와중에서도 곧잘 적당히 돈 벌고 들어가는 장르 영화들에게서는 기대하기 힘든 반골 정신을 불어넣으면서 '적당히'에서 타협하는 대신 끝까지 밀고 가서 기어이 바닥을 봐버리고야 말겠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성공해 낸 이런저런 좋은 작품들에서는 아주 기괴하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는 현실 인식이 흘러나옵니다. 장르 안에서의 과잉, 혹은 장르 안에서 기대할 수 없는 요소들이 툭툭 치고 나오면서 과격하게 뻗어 가는 중심 갈등을 '아, 정말 막 나가는 애들이 나와서 치고 박고 물어뜯고 지근지근 밟고 하는구나'라며 구경만 하게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형상은 장르로되 그 안에 있는 캐릭터의 세계를 꿋꿋하게 파고들면 결국 최후에는 냉엄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인간의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아마 관객 끌기는 갈수록 힘들지, 재밌게는 만들고 싶지, 그치만 내 목소리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지 뭐 그런 난관에 봉착해 있을 감독들은 영화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은 남겼으되 말년에는 제작비를 못 구하고 영화도 엎어지고 해서 자살 기도까지 했던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이보다는 오히려 로버트 알드리치 같은 이를 더 따르고 싶어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는 그런 알드리치의 본색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걸작 중 하나입니다.



 덧 하나. 제가 생각하는 알드리치의 특히 손꼽을 만한 작품들은 연대순으로(그리고 당시 상영 제목으로)─ [키스 미 데들리], [공격!(Attack!, 1956)],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미합중국 최후의 날(Twilight's Last Gleaming, 1977)], [캘리포니아 돌스(...All the Marbles, 1981)]였습니다. 지금은 여기에 작년에 DVD로 본 [북극의 제왕(Emperor of the North Pole, 1973)]을 추가한 상태입니다. 아직도 볼 영화들이 남았고, 그 때 본 영화들도 다시 보면 또 달라질 겁니다.

 …[미합중국 최후의 날]과 [캘리포니아 돌스]의 DVD를 내놔라!


 덧 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회고전 당시 펴낸 자료집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한 미국 비평가의 말을 빌자면 로버트 알드리치의 사진에는 이상한 이미지가 숨어 있다고 합니다. 그를 찍은 사진의 절반에서 알드리치는 대부분 넥타이를 매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소수의 사진에서 그의 넥타이가 매어져있을 뿐입니다. 그 나머지의 사진 대부분에서 알드리치의 넥타이는 반쯤 풀어져있는데, 기이하게도 여기서 그의 넥타이는 이상한 십자가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알드리치의 영화적 삶을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입니다."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의 도입부 할리우드 시절에 나오는 제작자는 분명히 알드리치의 이 모습을 반영한 캐릭터입니다. "Oh boy, oh boy, oh boy, oh boy"하는 대사가 무척 재밌어서 종종 제가 따라하곤 합니다. 도무지 그 대사 속도와 어조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만.


 덧 셋. IMDB에 올라온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의 크레딧을 보다가 흥미진진한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대사 담당(dialogue supervisor), 로버트 알트먼. 정말로 '그' 로버트 알트먼이었습니다. 더 재밌는 건 다음이었습니다. 2006년에 새로 출시된 이 영화의 2 디스크 버전 DVD 서플먼트 중에는 촬영 당시의 홍보 영상이 있는데, 그 중 빅터 부오노와 안나 리가 대사 코치(dialogue coach)와 함께 리허설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럼 바로 아래 사진의 왼쪽에 있는 사람이 그 시절의 알트먼?
 그러나 흥분도 잠시. 영화 상의 크레딧을 확인해 보았더니 대사 담당은 로버트 알트먼이 아니라 로버트 셔먼이라고 나오더군요. IMDB의 오류인 것 같습니다.

 여흥 삼아 이 귀한 영상 속의 장면을 몇 개 더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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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중독 | 작성시간 09.05.22 언니, 이 글을 누가 쓴건데? 문장이 짧게 끝나지 않고 연결 연결 되는것이 정성일씨가 쓴것같은 느낌이 든다요...ㅎ
  • 답댓글 작성자Roset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5.23 누구신진 모르겠고 서핑하다 하도 잘 쓰셔서옮겼어... 맨위에 블러그 주소 있으니까 함 가봐바...http://eskimos.egloos.com/372 <--- 이 주소에 사진이랑 있네...
  • 답댓글 작성자중독 | 작성시간 09.05.23 아하...정평론가는 아녔지만 시네마친구들중에 그도 낑겨있네요. 그래도 어찌나 글의 방식이 비슷한지...ㅎㅎ...오래간만에 추억에 젖어 시간가는줄도 몰랐다눈...언니 땡스...
  • 작성자C-in-D | 작성시간 09.05.23 이론적으로 복잡하게 설명해서 글치...실제 이 영화를 보면 저절로 이해되는 야그들...
  • 작성자suehan | 작성시간 09.05.23 빌려서 봐야겠네요.. 가끔 이런 영화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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