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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군 구출 작전 / 배달의 민족

작성자정남진1|작성시간26.06.08|조회수46 목록 댓글 0
황장군 구출 작전

보더콜리.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섰다. 골목을 빙 돌아 삼거리를 지날 즈음, 개 한 마리와 마주쳤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 갈색 털이 섞인 보더콜리였다. 목줄도 주인도 없었다. 우리는 마주 보고 멀뚱히 멈춰 섰다. '보더콜리는 똑똑하니까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겠지… 근데 너무 똑똑해서 물진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있는데, 목에 반짝이는 이름표가 보였다. 주인이 있다는 증거를 보자 마음이 놓였다. 내가 움직이자 녀석이 신난 듯 빙글빙글 돌며 다가왔다. 뜻밖의 행동에 유쾌했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눈앞의 삼거리는 왕복 4차선 도로였다. 목줄 없는 개와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 불안한 조합이었다. 내 걱정은 안중에도 없는 듯 녀석은 꼬리를 붕붕 돌리며 인도를 마구 뛰어다녔다. 타이어 마찰음과 경적,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떠오르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일단 녀석을 차도에서 떨어뜨려 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야!” 하고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눈이 마주쳤고, 다행히도 나를 따라오는 녀석을 간신히 인도 안쪽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이름표를 매단 목 끈을 바짝 붙잡았지만 언제든 녀석이 차도로 뛰어들 위험이 있었다. 이름표에는 '황장군'이라는 이름만 덩그러니 쓰여 있을 뿐 다른 정보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유기견 보호소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도착까지 20분 정도 걸린다며 개를 꼭 붙잡고 있으라고 했지만, 녀석의 종은 유럽의 초원에서 양치기 개로 이름을 날리던 보더콜리였다.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몸을 뒤틀며 발버둥 치는 녀석을 붙들고 있느라 식은땀이 났다. 그때, 자전거 한 대가 눈앞에 멈췄다. 도… 아…." 고개를 들어 보니, 동네를 오가며 가볍게 눈인사 나누던 청년이었다. 그는 어눌한 말투로 뭔가를 물었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무슨 말인지 되물었지만 다시 들어도 여전히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는 사시가 있고 말이 느렸다. 안간힘을 다해 개를 붙잡고 있는 나를 보며 몇 번 손짓하더니 편의점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그가 강아지 간식을 들고 돌아왔다. 보더콜리는 그의 손에 들린 닭고기 간식을 보고는 순간 얌전해졌다. 보호소 직원이 도착할 때까지 그는 우리 곁을 지켰다. 직원이 도착하자 그가 느리지만 꼼꼼한 태도로 물었다. 주인은 어떻게 찾는지, 만약 못 찾으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지…. 그는 몸이 불편할 뿐 마음은 누구보다 단단하고 따뜻했다. 보호소 직원은 개를 일주일 정도 보호하고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안락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에 우리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지역 커뮤니티와 SNS에 견주를 찾는 글을 올렸다. 이튿날 저녁에 기적처럼 주인이 나타났다. 그렇게 녀석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동네를 걷다 청년을 다시 마주쳤다. 그에게 인사하자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 밝은 미소가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하다. 진상린 | 경기도 평택시
인생의 참된 의미는 자신이 나무 그늘에서 쉬겠다는 마음 없이 나무를 심는 것이다. _ 넬슨 핸더슨
배달의 민족 보부상은 고려 말기에 천민 출신이던 '백달원'이 만든 상인단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그는 마치 요즘의 배달 라이더처럼 함께 일할 사람을 모으고 각 지역에 창고와 유통망을 만들어 체계적인 운반 시스템을 개척했다. 백달원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상인의 상도다.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는 이들이 '여기 사람들은 다시 만날 일 없다.'라고 생각해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말과 태도, 도둑질 등을 삼가라는 행동 강령을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백달원은 다리에 화살을 맞은 한 장수를 만난다. 그는 짐 속에 있던 목화솜을 꺼내 상처를 치료한 뒤 지게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 장수는 다름 아닌 태조 이성계였고, 훗날 조선의 초대 왕이 된 이성계는 백달원의 공을 기려 '보부상'이라는 이름을 주고 패랭이 모자에 목화솜을 달고 다니도록 했다. 그렇게 보부상은 나라의 발전과 백성의 삶을 도우며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모습의 보부상을 만난다. '혹시 몰라.'라는 마음으로 큰 가방에 우산, 상비약, 심지어는 멀티탭까지 챙겨 다니는 사람들이다. 온라인에는 이런 사연도 돈다. "쓰고 있던 마스크 줄이 끊어졌는데 보부상 친구가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며 새부리형, 덴탈형, 입체형 중 뭐 쓸 거냐고 물어봤다. " "혹시 하며 가지고 다닌 휴대용 소화기 덕에 길거리 화재를 진압했다." 수백 년 전 보부상이 보여 준 태도와 우리 주변의 보부상의 모습은 닮아 있다. 자신의 이득을 계산하기보다 남에게 먼저 손 내미는 것, "사람으로서 신뢰를 주면 그 사람의 물건에도 신뢰가 생긴다."라는 백달원의 말처럼 결국 보부상의 정신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 아닐까.
(참고: <보부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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