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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화 피었는데 / 한국전쟁 컬러사진

작성자정남진1|작성시간26.06.16|조회수39 목록 댓글 0
[현충일 추념시]

'현충화 피었는데' 개망초 곱게 핀 유월 높고 푸른데 마음이 무거운 건 유족들뿐이던가 현충원 입 다문 꽃들 눈물도 말랐어라 총소리 멈췄다고 긴장이 끝난 건가 전쟁 잊은 백성들 전우들만 서럽다 철책선 녹슨 핏빛들 눈 감는다 잊힐라 꽃 필 때도 아프고 꽃 질 때도 아프다 청춘은 눈을 감고 비석들 사열한다 충혼은 전설이 되고 현충화로 피었다 / 권오정 作
◇ㅡ◇ㅡ◇ㅡ◇ㅡ◇ㅡ◇ㅡ◇ 시조 ' 현충화 피었는데 '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마음을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으로 창작한 작품이다.
첫 수는 현충원의 정경으로 시작된다. 개망초 곱게 핀 유월 높고 푸른데 / 마음이 무거운 건 유족들뿐이던가 푸른 하늘과 흰 개망초가 아름답게 피어 있는 초여름 풍경은 평화롭지만, 그 평화 뒤에 감춰진 희생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슬픔이 유족만의 몫이 아니라고 묻는다. 나라의 평화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기억한다면 우리 모두가 함께 무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입 다문 꽃들"은 말없이 잠든 영령들을 상징하며, "눈물도 말랐어라"에는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이 배어 있다. 둘째 수는 오늘의 현실을 향한 질문이다. 총소리 멈췄다고 긴장이 끝난 건가 전쟁은 멈췄지만 완전한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잊어가지만, 산화한 전우들과 그 가족들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철책선 녹슨 핏빛들"이라는 표현은 분단의 상처와 희생의 흔적을 강렬하게 형상화하며, 역사를 잊는 순간 희생 또한 잊힐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진다. 셋째 수는 추모와 계승의 의미를 담고 있다. 꽃 필 때도 아프고 꽃 질 때도 아프다 꽃은 젊은 청춘을 바쳐 나라를 지킨 이들의 삶을 상징한다. 꽃이 피는 순간은 그들의 젊음이었고, 꽃이 지는 순간은 희생의 순간이었다. "비석들 사열한다"는 표현은 묘역에 늘어선 비석들을 군인들의 열병식처럼 바라보게 하며 엄숙함을 더한다. 마지막 구절인 충혼은 전설이 되고 '현충화로 피었다'는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꽃이 되어 후손들의 가슴속에 다시 피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추모시가 아니라 "기억의 책임"을 묻는 시조이다. 평화가 너무 익숙해진 시대에, 지금의 자유와 번영이 누구의 희생 위에 서 있는지를 되새기게 한다. 특히 자연의 꽃과 현충원의 꽃, 그리고 젊은 청춘을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하여 호국영령의 숭고한 정신을 아름답고도 애절하게 형상화한 점이 인상적이다. 6월의 개망초처럼 소박하지만 오래 남는 울림을 주는 시조이다.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후손이 선열들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헌화임을 일깨워 준다. 권오정/ 기자


 

한국전쟁 컬러사진  

권총을 든 미군 앞에서 손을 들고 항복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북한 소년병들의 사진. 1950년 9월 20일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에는 매복 중이던 미군에게 붙잡힌 북한 소년병들이 담겨 있다. 권총을 겨눈 미군 뒤로는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던 탱크가 보인다.
1950년 8월 부산 방어선 전투에서 다친 군인을 들것에 실어 나르는 미군 병사들.
1950년 9월 미 해병대가 널브러져 있는 적군의 시체를 지나치는 모습도 보인다. 반자동 소총을 메고 가슴까지 흠뻑 젖은 미군이 논두렁을 달려가고 있다. 죽음이 일상인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1950년 11월 눈보라가 몰아치는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2주간의 혈투 끝에 중국군에게 패해 퇴각하던 미 해병대 제5연대와 제7연대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총을 들고 탱크에 올라 있는 사진 속 8명의 영국 군인은 중국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이날 전투에서 임진강을 건넌 600명의 영국군은 중국군 1만 명을 사살하고 59명의 사상자를 냈다.
인천상륙작전중인 모습.
한 소년이 추락한 북한 전투기의 잔해 위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1950년 여름, 인천상륙작전을 향해 가는 미 해군 상륙함.
파괴된 수원 화성 장안문. 탈환과 재탈환의 과정 속에 수원은 크나큰 피해를 입는다. 연합군의 주요 수송로가 수원을 통과했기 때문에 많은 군인이 이곳을 지날 때마다 기념촬영을 하곤 했다.
서울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폭격으로 파괴된 기차들. 철로 끝으로 서울역이 보인다.
국군 부대원들.
미 군사고문단의 감독하에 국군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훈련을 받고 있다. 그들은 여덟 내지 아홉 발 정도를 쏴본 뒤 부대로 배치되었다.
초창기 휴전 회담이 열렸던 개성의 모습.
영국군 왕실기갑연대 대원들이 전투에 임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51년 1월 중공군의 2차 공세를 앞둔 시기로 추정)
서울 북방 지역에서 미군 병사들이 북한군 포로들을 심문하고 있다. 북한군은 민간인 복장을 하고 피란민 인파에 잠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포로들. 유엔 측이 1951년 초반에 세운 이 수용소는 총 28개 시설에 최대 17만명의 포로를 수용했다.
1951년 봄, 재탈환된 서울 시청 앞에 어린이들이 서 있다. 사진으로는 피해 상태가 경미한 듯 보이지만, 연희고지 등 북한군의 저항이 극렬했던 일부 지역은 유엔군의 집중포격으로 폐허가 됐다.
대구에서 만난 아이들. 한국전쟁 동안 약 10만여 명의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는데, 그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물자나 시설은 거의 전무했다.
헬리콥터를 보기 위해 모여든 아이들과 어른들.
강가에 모여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 전쟁 중에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생필품만 챙겨 어디론가 떠나는 피란민 가족. 어머니의 왼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반지는 아버지의 부재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당시 대부분의 성인 남자는 징집 당했고, 이는 피란민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철로변에서 물건을 파는 소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당선자가 1952년 12월 2일부터 12월 5일까지 한국을 방문했다. 전차에 치장한 환영 현수막과 플래카드(placard)

 

 

후암동 고갯길
물건팔러 나온 아낙네들
6.25 동란 당시 시장통의 막걸리 대포집
6.25 동란 당시 부산 구덕산 아래의 중구 부평동 시장과 보수천 주변에서 금붕어를 팔러 다니는 금붕어 장수(1952년)
드럼통을 잘라 해머로 두드려 펴서 용접시킨 후 페인트를 발라 제작한 택시 대용의 운송 수단이었던 마차 객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두껍게 입고 나무상자로 만든 가판에서 장사하는 모습
집을 잃고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더위에 지친 피난민 가족 (1951년8월16일)
유엔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위해 철로 옆에 들어선 부산의 공구상들 (1951년)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어르신의 가판 잡화점
을지로 입구 광통관 앞의 교통사고 수습
5사단 본부앞 나무 팻말
지금 현재 우리은행 전신인 조선상호은행 종로지점과 여물을 먹고 있는 소
당시 소방차가 출동하여 화재를 진압하는 모습

 

 

1951년 11월 30일 부산시 부전동 제일조병창 대화재로 화약고 1동 및 민가 100여 채가 전소된 모습 (4명 사망, 6명 중상) - 1951. 12. 1. 동아일보
진열장을 콘크리트와 타일을 붙여 제작한 옛날의 시계포
거리의 담배 노점상 당시는 담배 제조기술이 없어서 미국 양담배를 받아 팔았는데 꽁초를 주워 봉지에 넣어 파는 봉초도 팔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경성우체국이라고 불렸던 옛 중앙 우체국 적벽돌의 청동 지붕으로 제작된 르네상스식 건물이엇던 이 건물은 미적 가치가 있었으나 1년 뒤 전쟁으로 인하여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대구 신천변에 피난민들이 만든 방천뚝 피난촌
종로 화신백화점 일제 강점기 화신그룹의 박흥식씨가 세운 이 백화점은 장안의 명소였습니다.
6.25 동란 1년전까지 온전했었던 남대문
삼각지 근처의 미8군 기지 주변
물을 받기위해 줄을 길게 세운 양동이
서울역 앞의 대동 예식장과 사진관
미군에게 초콜릿을 나눠받는 아이들
6.25 동란 당시 경기도 수원 화성 장안문 (1953년8월11일)
성벽에 올라가 놀고 있는 해맑은 모습의 어린이들
서울역 앞 대동예식장과 멀리보이는 남대문 모습
6.25 동란 당시 대구시내의 중국집 유흥원 (1952년)
부산 황령산 아랫동네 (1953년)
부산 황령산 아랫동네 중국집 귀영루 (1953년)
동란이 지난 1년 후 서울 영등포의 중국집 영등각 (1954년)
부산의 중국집 복해원 (1953년)
6.25 동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1년전 평화로웠던 인천 도원동 배다리 마을 장터 풍경 (1949년)
노르웨이 여의사가 찍은 한국 전쟁 당시 컬러사진 6.25전쟁 때 노르웨이 육군 이동외과병원 '노르매쉬(RMASH)' 소속의 잉에르 슐스타드(1920-2010) 라는 여의사분이 찍은 사진 올해 한국-노르웨이 수교 60주년 기념 특별 사진전이 열렸다고 함 사진이 엄청 고화질이라서 기분이 이상해짐. 가난과 고생이 너무 생생하게 전해져서 가슴이 아픔 특히 양손 잃고 화상입은 아이 ㅠ ㅠ

 

 

 

아이들이 받은 선물은 무엇일까 (학용품) ? 받은 선물을 머리에 이고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아이

 

 

서울시 병원에서 온 간호사들이 노르매쉬 여의사 잉에르 슐스타드 박사를 만나고 있다. [사진=주한노르웨이대사관]

 

 

 

초소 옆에 통행금지(晝間通行 夜間不通) 팻말이 세워져 있네요~
책가방을 손에 든 하굣길의 학생들
혼례상을 마주하고 서있는 잔뜩 긴장한 표정의 신랑 각시와 하나같이 웃고 있는 하객들의 모습이 넘 대조적~

 

전란을 겪으면서 모든 물자가 부족하여 미군부대에서 나온 모포 쪼가리로 아동복을 지어 입혔다.

 

 

 

 

 

 

 

주판알을 튕겨 점치는 길거리 역술가(曆術家)
탈곡기로 벼 타작하는 모습

 

1951년 6월 고양시 행주산성 부근에서 남동생을 등에 업은 남한 소녀가 무심한 표정으로 M-26 탱크 앞에 서 있는 모습 역시 인상 깊다.
1950년대 서울 도심에서 바라본 한강의 전경사진. 푸르른 강물이 한 폭의 그림처럼 옛 정취를 갖게하는 노스탤지어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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