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1년, 조선 중기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은
돌연 세상을 떠난 맏누이를 위해
슬프고도 아름다운 묘지명을 지었다.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에 화장하던 모습이 마치 어제 일 같다.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다.
내가 시집가는 누나가 미워 발을 동동 구르며
새신랑 말투를 흉내 내 말을 더듬거리자,
누님은 빗을 떨어뜨려 내 이마에 맞췄다.
내가 성이 나 울면서 분가루에 먹물을 뒤섞고
거울을 침으로 더럽히자,
누님은 옥압(玉鴨, 옥으로 만든 오리)과
금봉(金蜂, 금으로 만든 벌) 등
패물을 꺼내 주며 나를 달랬다.
그때로부터 벌써 스물여덟 해가 지났구나.
말을 세우고 강가를 바라다보니,
상여의 명정이 바람에 휘날리고
뱃전의 돛 그림자는 물 위에 꿈틀거린다.
강가의 먼 산이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 찐 머리 같고,
강물 빛은 누님의 화장 거울 같으며,
서쪽으로 지는 새벽달은 누님의 고운 눈썹 같다.
누님이 빗을 떨어뜨린 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세월은 덧없이 긴데,
그 사이에 이별의 근심을 괴로워하고
가난을 걱정하며 보냈으니
인생의 덧없음이 마치 꿈결과도 같구나.
남매로 지낸 날들이
어찌 그리도 빨리 지나갔더란 말인가.
떠나는 사람 정녕 다시 온다 약속을 남기고 가지만,
보내는 사람 눈물로 여전히 옷깃을 적시며
강가에서 외롭게 돌아가네."
박지원과 동시대를 산 실학자 이덕무가 읽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 글은
《연암집》의 <연상각선본>에 실려 있다.
"아름다움은 진실이고, 진실은 아름다움이다."
영국 시인 존 키츠의 말이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지극한 슬픔이고,
슬픔은 아름다운 것 아닐까.
신정일 |
문화사학자
박지원 초상화
* 박지원(1737~1805) : 『열하일기』 저자.
아들 박종채가 <과정록(過庭錄)>에 묘사한 것을 보면
큰 키에 살이 쪄서 몸집이 매우 컸고,
얼굴은 긴 편이며 안색이 붉고
광대뼈가 불거져 나온 데다 눈에는 쌍꺼풀이었습니다.
그의 초상화와 거의 일치하는 모습이지요.
가장 그리운 이름
요양원에서 치매 어르신을 대상으로
낭독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계절이나 가족 또는
먹거리처럼 공감하기 쉬운 짧은 글을 읽는다.
그날은 편지를 주제로 이해인 수녀의
<너에게 띄우는 글>이라는 시를 낭독했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어르신들은 단어를 곱씹듯이 낭독한 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아들아, 얼마나 힘드냐? 보고 싶구나.
행복해라." "딸, 내가 너무 괴롭혀서 미안하다.
네 마음 다 안다." "남편에게, 잘 있어?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고 잘 있어요.
내일 왔다 가면 안 되나요?
올 수 없는 것 알지만 한번 왔다 갔으면 좋겠어요."
다음으로 수업 때마다 풍부한 감성을 나눠 주는
문학소녀 어르신의 차례가 됐다.
그는 떨리는 입술로 천천히 발표했다.
"엄마에게.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저희를 길러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자나 깨나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아픕니다."
첫 구절을 듣는 순간
어르신들도 어머니가 보고 싶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우면 꺼내 보는 한 장의 사진처럼
오랜 세월 어머니를 가슴 깊이 간직해 온 것이다.
그렇기에 '편지'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어머니를 떠올렸으리라.
편지에는 가장 그리운 이름을 불러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날 어르신들에게 또 하나 배웠다.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이름 하나가
사람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어르신의 마음속 보물 창고를 열
열쇠를 찾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글 숲을 헤맨다.
김민 |
경기도 고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