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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작성자장만식/ 이레네오|작성시간25.08.28|조회수26 목록 댓글 0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1테살 3,7-13; 마태 24,42-51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2025.8.28

 

 

 

  오늘은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교회의 정체성을 수립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4세기 중엽에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 어린 기도와 암브로시오 주교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회개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로마 제국이 멸망해 가는 이 어두운 기간에 사제와 주교의 직무를 통해 이단을 물리치며 신앙과 교회를 수호하는 데 뛰어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고트족이 로마를 침탈하는 대혼란 속에서 거짓 신을 섬겨오던 로마인들 중 일부가 이 로마 파괴라는 재앙의 탓을 그리스도교에 뒤집어 씌우려고 하느님을 모독하려 드는 데에 분개하여, 하느님의 집과 도시에 대한 열성에 붙타서 ‘신국론(神國論)’을 집필하게 되었는데, 로마 제국이 망하더라도 하느님의 나라 즉 신국은 영원하리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그 덕분에, 모진 박해 끝에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어 제국과 일체화되었던 로마 가톨릭교회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게르만족을 집단 개종시켜 유럽 가톨릭교회로서 살아남아 번영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로마’라는 이름의 영예를 정신적으로 계승한 후계세력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아우구스티노는 ‘신국론’ 저술을 통해서 교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함으로써 가톨릭교회로 하여금 정체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방향을 제시해 준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신국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외교인들이 자행하는 부당한 공격과 이론에 응수하는 이론적 무기들을 제공하면서 ‘구원(久遠)- 아주 멀고 먼 - 의 역사’라는 고고한 시선으로 인간 역사를 바라보는 경지를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과거 250년 동안 로마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로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가까스로 신앙의 자유를 누리던 신앙인들에게 이러한 역사적 사건으로 부터 철학적 신학적 성찰의 계기를 얻어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게 하고 역사의 지평을 넘어서는 선의 궁극적 승리와 영구한 평화를 내다보고 희구하도록 호소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국론’은 한 지성인이 구상할 수 있는, 거창하고도 체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위대한 인류 지성의 한 조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대세계에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세 대륙에 걸쳐 건설된 로마 제국은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역사적 경이에 해당되는 문명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예는 어디까지나 세속적인 명예에 지나지 않았고, 영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문명 속에 야만적인 군사적 업적이 위주로 되어 있고, 세속적인 다신교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으며, 비인간적인 통치행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교회는 후대에 이러한 로마의 세속적 명예를 정신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언어였던 라틴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가톨릭교회의 공식 언어로 사용되었는가 하면, 문자로서는 여전히 주요 문서의 공식 문자로 여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로마의 영광을 가톨릭교회를 통해서 재현하려는 유럽-로마주의자들의 복고주의적 경향에 대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비유럽-보편주의자들이 파스카 과업을 위한 교회의 복음적 쇄신을 내걸고 상호 간에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실도 우리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이 자리잡고 있는 현 주소를 잘 말해줍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 가톨릭의 정체성을 공의회 이전에 이미 앞당겨 체현했던 인물이 안중근 토마스였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겨레 사랑을 일체화시키고자 했던 그는 하느님의 종교적 진리는 사회적으로 겨레 안에서 증거될 때라야 비로소 설득력을 지니게 되는 이치를 목숨 바쳐 보여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안중근 토마스가 온 겨레에게 던졌던 시대의 화두는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청국 그리고 일본국이 평화로이 공존하며 상생 번영하도록 한민족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로마주의자에 가까웠던 뮈텔 주교와 달리 안중근에게 영향을 끼친 빌렘 신부는 보편주의자에 가까웠습니다.

 

  빌렘 신부는 자신의 고향 알사스 로렌 지방이 평시에 산업의 쌀이 되어 주는 석탄과 전시에 무기의 재료가 되어 주는 철광석 자원이 풍부한 탓으로 오히려 독일과 프랑스의 분쟁지역이 되었던 역사적 교훈을 한반도에 적용함으로써, 안중근 토마스에게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과 역사적 전망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틔워주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쇄국정책으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조선 왕조에서, 그것도 지극히 자국 중심적이고 황당한 대륙 정벌의 야망에 미쳐 있던 일본 제국주의의 정보만이 넘쳐나던 19세기의 가톨릭 지식인이었던 그에게. 이렇듯 유럽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꿰뚫는 안목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안중근 토마스는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사형을 앞당겨 집행한 외무성과 법원장의 약속위반 탓으로 미완의 원고로 남겼습니다만, 천만다행히도 그 요지는 그 반세기 후에 유럽에서 실현된 유럽연합의 현실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지금의 일본이나 중국, 북한을 보면 도저히 평화로이 공존 번영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만, 반세기 전에는 유럽 여러 나라들도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무릅써 가면서 죽고 죽이던 사이였습니다. 전후 유럽을 미국처럼 합중국이나 연방국가로 재건하자고 외친 영국의 윈스턴 처칠의 호소에 대하여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었던 프랑스의 로베르 슈망과 독일의 아데나워 수상이 화답함으로써 오늘날 평화로운 유럽을 건설한 것처럼, 언젠가는 동북아시아에서도 유럽연합을 방불케 하는 국제연합체가 평화의 보루가 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안중근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유럽 문명과 유럽 가톨릭교회에 정체성을 부여했던 것처럼,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역할에 있어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그리고 하느님 사랑과 겨레 사랑을 하나로 일치시켜야 하는 신앙자세에 있어서 한국 가톨릭의 정체성을 세운 예언자로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같은 정통 예언자에게서 확인된 바 있듯이, 무릇 예언의 가치는 다가올 현실을 정확하게 내다보는, 사람으로서는 어렵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안목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미래 실현 여부에 있으므로 그렇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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