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뜻, 땅의 길, 우리의 선택
신명 30,15-20; 루카 9,22-25 /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2026.2.19.
재의 예식을 치루고 마귀와의 전투를 시작한 우리에게 오늘 들려오는 말씀은 생명과 행복에 관한 하늘의 뜻을 알려주는 한편, 그리고 이를 몸소 삶으로 보여주시고자 세상에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길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역시 죽음과 불행을 겪지 않으려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짊어지는 선택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동족을 죽음과 불행에서 탈출시켰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동족인 히브리인들에게도 그들이 믿어온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확인시켜 주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는 동안 생겨난 노예근성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 했습니다. 신명기 저자는 이러한 모세의 역할을 두고 오늘 독서로 기록한 것입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신명 30,15). 모세가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내세우면서까지 이 조건부 선택 권고를 꺼내든 것은 당대의 히브리 인들과 그 후손들이 생명을 선택하기를 바라서 였습니다. 이 ‘생명’은 적대적인 토착부족들이 즐비한 시나이 광야에서 그들이 무사히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 대대손손 누릴 수 있는 행복까지를 포함한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이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율법에 들어있었고, 그것은 길 없는 사막에서 길이 되어주었으므로, ‘토라’(Torah)라고 불리었습니다. 이 말은 어원(語原)상으로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하여 던지던 제비”라는 뜻에서 출발하여,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이라는 뜻으로 발전한 다음, 창세기부터 신명기에 이르는 ‘모세5경’을 의미하다가 후대에 이르러서는 이를 포함한 유다교의 모든 경전 즉 십계명은 물론이고 이에 대한 구두(口頭) 주석(註釋)으로서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온 탈무드(Talmud)와 하가다(Haggada) 등 모든 율법을 가리키는 의미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토라’라는 율법(律法)의 권위는 여느 나라의 법 현실과 달리, 입법자(立法者) 역할을 수행한 모세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나오는 권위였습니다.
예로부터 하늘은 하느님을 상징하는 대명사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선조들도 하늘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연대로 따져보자면, 다른 민족들이 문명은 고사하고 번듯한 나라를 세우기도 전인 까마득한 옛날, 초저녁에 저물어가는 태양 주위에 해와 초생달 사이에 금성, 목성, 토성, 수성, 화성이 늘어섰다는 ‘오성취루’(五星聚婁)에 관한 단군세기(檀君世紀)의 기록이 그러하고(기원 전 1734년 7월 13일), 세계 역사상 최초로 신라에서 7세기에 천문을 관측하기 위해 경주에 석조건축물로 세운 첨성대(瞻星臺)가 그러하며, 천체를 관측하기 위하여 조선에서 15세기에 만든 기구로서 달력과 시간을 알아내는 데 쓰인 혼천의(渾天儀. 국보 230호))가 또한 그러합니다. 이 중 혼천의는 세종대왕과 당시 조선의 과학기술을 기리고자 우리나라 만원 권 지폐에도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는 아주 작게 그려져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天文圖)로 알려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국보 228호)도 들어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하늘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백성의 살림살이 특히 농사를 짓는 데에 필요한 달력과 시간을 알아내기 위한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이 살아가고 나라를 다스리려는 의지로까지 나타났습니다. 그 결실이 고조선 시대에 하늘의 뜻을 받아 정했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라는 건국이념입니다. 이는 그 이후 왕조가 여러 번 바뀌는 가운데에서도 올바름의 가치를 중시하는 언어와 풍속, 민간신앙 등 전통문화에 고스란히 담겨서 내려 왔습니다.
이렇듯 하늘의 뜻에 대한 관심이 내려오다가 중국을 통해 서양 선교사들이 펴낸 ‘천주실의’ 같은 천주교 교리서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진리를 알아본 선비들이 처음에는 학문적 관심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신앙적 관심으로 발전하여 이 땅의 천주교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정신적 토양이 비옥했기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기는 했지만 진리 대신에 단지 서양 문물에 대한 관심으로 받아들였던 이웃 나라(중국, 일본) 교회와는 물론 권력자들의 강요로 집단 개종한 이래 매우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도 신앙을 믿어온 서양 여러 나라 교회와도 질적으로 다른 신앙 행태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동기와 질적 수준이 다른 겁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은 강생하신 하느님에 의해 정확하게 땅에 드러났습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 말씀에 드러난 대로, 십자가와 부활의 길입니다. 이 진리로써 하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정화되고 승화되어야 합니다. 막연히 하늘에서 복을 내려 주기를 바라는 기복신앙적 사고방식은 십자가와 부활 신앙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길로 하늘의 뜻을 밝히신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당신은 아무 죄도 없으셨으면서도 다른 이들이 저지른 죄를 없애기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고 목숨을 바치셨으며,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신앙인들이 살아가야 할 목표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대속신앙(代贖信仰)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는 진리이며 우리를 구원할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로부터 그분 백성으로 선택되었다는 선민의식(選民意識)을 지니고 있었어도 그 하느님 백성이 실제 하늘의 뜻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이제껏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놀라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 민족 역시 하늘에 기대어 기복신앙으로 그치면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뜻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부활하는 진리로 보여주셨으니, 이 진리에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땅에 드러난 하늘의 뜻은 이제 우리의 선택이 되어야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