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 R. Popper :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발제자 : 정원규 (서울대 사회교육과)
1. 포퍼와 열린 사회
포퍼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는 포퍼의 삶, 무엇보다도 이 책의 집필 시기에 잘 나타나 있다. 포퍼는 1902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94년 사망하기까지 『탐구의 논리』, 『추측과 반박』, 『역사주의의 빈곤』, 그리고 이 강의의 주제인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개인적으로는 1차대전과 2차대전을 모두 경험하는 아픔 속에서 유태인으로서의 박해를 피해 뉴질랜드를 거쳐 영국으로 망명, 그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친척들이 학살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으며, 사상적으로 청년 시절에는 맑스주의에 심취했다가 자유주의로 ‘개종(?)’하는 혼란을 겪었다. 이 책은 1938년 3월에서 1943년 사이에 쓰여졌는데, 포퍼에 따르면 1938년 3월은 히틀러가 조국 오스트리아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며 대체로 전쟁의 결과가 불확실한 우울한 시절에 쓰여진 것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퍼가 파시즘(fascism)을 직접 비판하지 않고 맑스주의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파시즘이 몰락해가는 상황에서 전쟁이 끝나면 맑스주의가 주요한 문제로 등장할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맑스주의에 대한 포퍼의 관심은 맑스의 인도주의적 의도와 경탄할 만한 사회학적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가 열린 사회의 대체 이념으로, 즉 닫힌 사회를 대표하는 이론으로 자리매김되는 이유를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개략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맑스주의가 여러 장점, 즉 강한 도덕적 동기와 더불어 합리주의, 개체주의, 실용주의, 제도 분석 등의 올바른 방법론을 채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적 태도를 거부하고 역사주의(historicism)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포퍼는 맑스의 이러한 역사주의와 그에 수반하는 자연주의, 본질주의, 주지주의, 나아가 반평등주의, 집단주의, 권위주의 및 종족주의로서 폭력적 전체주의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헤겔의 유산이라고 본다. 포퍼에 따르면 이들은 동기마저도 불순한, 즉 부족적 귀족사회나 왕정을 정당화하려는 동기를 지닌 그야말로 구제불능의 철학자들이다. 결국 포퍼는 맑스주의에서 이러한 유산을 제거하고 방법론적 장점을 살리며, 거기에 자신의 사회공학과 민주주의 이론을 추가하여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 변혁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2. 역사주의 비판
이러한 포퍼의 의도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역사주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포퍼에 따르면 역사주의는 역사적 예측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역사 진보의 밑바닥에 있는 규칙적인 흐름, 패턴, 법칙이나 경향 등을 발견함으로써 그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사회과학적 접근법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언뜻 역사주의의 잘못된 점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역사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패턴이나 법칙을 지정하는 것이라면 이런 저런 이유에서 그러한 패턴이나 법칙이 들어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사회과학적 영역에도 자연법칙과 같은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역사주의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사회과학적 영역에는 어떤 법칙이나 패턴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포퍼의 대답은 자연과학적 분석과 사회과학적 분석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자연과학에서 설명이나 예측은 보편적 법칙과 우리가 흔히 원인이라고 부르는 초기조건에 의해 특정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분석할 때에는 이러한 일반 법칙의 이해와 결과의 도출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현상의 설명에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사회과학적 설명은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의 개인적 관심과 목적, 접근 가능한 정보의 유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보통 설명이나 예측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이라고 본다.
그리고 관심과 목적, 정보유형 등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 가령 정치사, 경제사 등을 생각해 보라 - 이러한 과정에서 법칙이나 패턴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되는 자료는 이처럼 특정한 관점에 근거해서 수집된 것이므로 법칙의 타당성을 정당화해 주는 자료로서는 부적합하다. 만약 그러한 시도를 한다면 그것은 순환논증의 오류를 범하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역사주의자들은 인류의 역사가 그 자체의 내재적 법칙에 의하여, 우리들과 우리의 문제들, 우리의 미래, 그리고 우리의 관점까지도 결정한다고 믿지만, 역사의 사실을 선택하며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인 것이다.
또한 포퍼에 따르면 모든 보편적 진술, 즉 법칙의 타당성은 입증될 수는 없고, 반증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검은 까마귀를 다수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진술이 참일 개연성을 높여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참임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언제든 검지 않은 까마귀가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검지 않은 까마귀가 발견되었다면 이 진술이 거짓임은 단법에 입증되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법칙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은 진리들의 집합이 아니라 아직 반증되지 않은 명제들의 집합일 뿐이다. 따라서 역사적 법칙이 설령 가정될 수 있다 하더라도 역사주의자들처럼 그로부터 단언적인 예측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3. 맑스주의 분석
그러면 이러한 포퍼의 반역사주의적 입장에서 맑스주의를 분석해 보도록 하자. 우선 사회변혁이론으로서 맑스주의는 경제결정론(economism)과 계급투쟁론으로 요약될 수 있다. 포퍼에 따르면 맑스가 이러한 사회이론을 제시하게 된 것은 당시 무제약적인 자본주의의 폭압 하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으며, 부르주아 혁명의 이념이었던 형식적 자유나 평등이 이러한 노동자들의 고통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을 체험했고, 뛰어난 통찰력으로 이러한 현실에 합리주의, 실용주의, 개체주의, 그리고 제도분석의 방법 등을 적용한 결과이다.
개혁론자로서 포퍼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포퍼는 맑스의 이러한 이론적 동기와 이론 형성의 방법에 모두 동의한다. 다만 포퍼가 지적하는 것은 이렇듯 건전한 동기와 통찰력있는 방법론이 역사주의와 결합하면서 야기된 문제들이다. 가령 경제결정론이 사회학적 판단을 하는데 경제가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라는 정도의 주장이라면 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경제적 요소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맑스의 통찰력에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회학적 사건들의 유일한 원인이라는 주장이라면 이는 지나친 것이다. 가령 정치는 경제적 요소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경제적 요소를 규제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또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계급투쟁이 역사변동의 중요한 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중요한 역사적 변혁은 피지배계급과 지배계급간의 투쟁이라기보다는 지배계급끼리의 투쟁에 의해 이루어졌다.
맑스주의가 이렇듯 경제적 요인과 계급투쟁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된 것은 물론 역사주의의 영향 때문이다. 전술한 것처럼 역사주의는 역사적 법칙을 상정한다. 이는 이미 발생한 역사적 사건들에 언제나 특정한 원인이 결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역사주의자는 이런 관점에서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발견하면 역으로 그것을 모든 역사적 사건에 적용한다. 이러한 적용이 자연과학적 의미에서 올바른 설명이나 예측을 행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자본주의 멸망론도 이러한 역사주의적 오류의 중요한 사례이다. 맑스는 역사법칙에 따라 자본주의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수정함으로써 멸망의 궤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동일한 맥락에서 특정지역에서의 자본주의 멸망이 맑스가 예견했던 사회주의의 건설로 연결되지 않았다. 구소련과 동구권은 심지어 자본주의로 회귀하지 않았는가?
맑스주의에서 역사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폭력혁명론에서 나타난다. 맑스는 역사법칙에 따라 폭력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고, 그 결과 피지배자들의 폭력 사용을 긍정했다. 그러나 피지배자가 곤봉을 사용하면 권력이나 금력에서 앞선 지배자들은 총과 탱크로 대항할 수 있다. 결국 맑스의 폭력혁명론은 지배자들의 폭력사용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맑스주의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파시즘(fascism)이 발호할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4. 닫힌 철학자들의 부정적 영향
포퍼는 역사주의 이외에도 맑스주의의 전체주의적 성격과 계급독재론은 플라톤의 부정적 영향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플라톤이 몸담았던 아테네는 전반적으로 민주주의적 정치체제를 지향했음에도 불구하고 30인 참주 정치에 참여했다가 처형당한 삼촌들의 영향으로 부족적 귀족주의에 심취해 있었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까지 목도하게 되자 사상적으로 그의 특유한 비관주의적 전체주의를 정립한다. 이러한 비관주의는 그의 유명한 이데아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플라톤에 따르면 현실은 모두 이데아의 모사품일 뿐이므로 현실의 역사는 쇠락의 역사이고, 따라서 본질로서의 자연('nature'가 자연과 본질의 뜻을 모두 가지고 있음에 주목하자)이 드러나는 것은 역사적 시원이다. (기원으로서의 역사주의) 또한 플라톤은 자연적 법칙과 규범적 법칙을 구분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법칙을 이렇듯 시원에서 발견되는 법칙, 즉 자연법칙과 동일시했다는 것이 포퍼의 해석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플라톤은 자연주의와 이타주의, 개체주의와 이기주의를 동일시함으로써 은연중에 개체주의를 배격하고 전체주의 철학을 설립하였으며, 누가 통치할 것인가를 물음으로서 어떻게 통치하게 할 것인가, 즉 통치제도의 문제를 희석시켰다. 누가 통치할 것인가라고 물으면 답은 당연히 ‘현자’, 또는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누가 통치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통치하게 할 것인가, 즉 현자나 철인왕(philosopher king)이 아니라 폭군이라 하더라도 폐해를 최소화하게 만들 수 있는 정치제도는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누가 통치할 것인가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답하고 있는 맑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은 바로 이러한 철인왕 이론의 부활인 셈이다.
5. 열린 사회론
포퍼는 이러한 맑스, 플라톤의 전체주의 철학의 대안으로 열린 사회론을 제안한다. 열린 사회론은 점진적 사회공학을 이론적 기초로 하는 사회로서 극소수의 물리적, 사회적 필연성의 영역을 제외하면 인간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는 점진적 사회공학의 의미를 분명히 하면 더욱 쉽게 이해될 수 있는데, 역사주의가 인간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음에 반하여 사회공학은 인간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 입장이다. 또 사회공학 중에도 유토피아적 사회공학과 점진적 사회공학이 있는데, 전자는 모든 합리적 행위는 어떤 목적(가령 이상국가)을 확인한 후에야 적절한 수단을 선택, 실행해 나갈 수 있다고 보는 입장임에 반하여, 후자는 완전이란 성취할 수 없는 것이므로 최대의 궁극적 선을 추구하기보다는 최대의 악과 긴급한 악을 찾고 그에 대항해서 투쟁하는 방법을 적용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포퍼는 이상적 목적은 확인될 수 없는 것이지만 긴급한 악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점진적 사회공학이 더 합리적인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그가 그리는 열린 사회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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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사회 |
닫힌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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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주의적 사회 (개인이 스스로 판단, 행위, 책임질 수 있는 사회) 이성적 비판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 인도주의적 사회 더 높은 지위를 위해 투쟁하는 사회 행위규범이 고정불변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
전체주의적 사회 (개인의 행위를 집단이 결정하는 사회) 마술적 사회 부족적, 종족주의적 사회 계급간의 투쟁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행위규범이 자연법칙과 동일시되는 사회 |
포퍼는 또 열린 사회의 구현체로서 민주주의 사회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악의 뿌리는 맑스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경제적 힙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통제되지 않는 힘이다. 가령 돈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모든 권력을 살 수 있는 되는 상황이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인민의 통치나 다수의 통치같은 이매한 표현이 아니라, 통치자들을 공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고 때로는 피통치자들이 통치자를 해고할 수 있으며, 또한 피통치자들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통치자들의 의사에 반하는 개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일련의 제도적 틀을 의미하는 것이다.
6. 비평
양차 세계대전과 유태인 학살, 그리고 동유럽식 사회주의의 폐해를 직접 목도한 포퍼의 전체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의 적실성과 그러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맑스에 대한 편견없는 긍정과 비판을 감행한 지적 정직성에도 불구하고 열린 사회론에도 몇 가지 문제는 남는 것 같다. 우선 포퍼는 열린 사회론을 통해 사회변혁의 목적으로서 유토피아에는 합의하기 어렵지만 긴급한 악에는 합의하기 용이하다는 근거에서 점진적 사회공학을 옹호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의견대립들만 살펴보아도 긴급한 악이라고 해서 쉽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설령 그러한 악에 합의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변혁 수단이 반드시 점진적인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아마도 열린 사회라면 점진적 해법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겠지만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 사회 자체가 닫힌 사회라면 그러한 사회는 어떻게 변혁될 수 있을까? 아마도 혁명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포퍼는 현 사회를 (경우에 따라서는 부당하게) 대체로 열린 사회라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