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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한여름의 그어느날 문득

작성자설화|작성시간17.07.16|조회수63 목록 댓글 0

무더운 한여름의 그어느날 문득,,, 이 음산하고 척박한 시대에 시는 과연 구원을 탐구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인류가 처한 정신적 위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종교나 철학, 또는 명상 수행의 한계는 이미 오래 전에 실증되었다고 본다 오늘 날, 그것들이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이상에는 (그 이유를 추상적으로 찾을 것도 없이 -지금 잔뜩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국면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 인간정신 구원의 주체는 인간외적의 타력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자력이어야 하고 그 정신의 향도 역할은 싫던 좋던, 이제는 달랑 사전적 명칭으로만 남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시인들이 맡아야하지 않을까 시인들마저 자신의 시를 불신하는 기괴한 시대라고 하더라도, 인간회복, 그 탐구의 사명을 그 어떤 다른 정신적 존재에게 짐 지우겠는가 다겁의 생을 통해 세상에 숱하게 지은 빚을 그 누구에게 떠넘기겠는가 이런 末代에 시인이 된 거 자체가 어쩌면 ..어쪄면.. 일종의 저주스러운 일이겠지만... 2017.07.15. ==================================================================


시인에 있어서 꿈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

우리네의 삶의 진정한 의미를 건네 준다. 
단지 인간 존재는 육십년의 삶 한줌을 살아가는
 서글픈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단지 그의 언어는 
심리학의 소독냄새가 엷게 스며들어 있을 뿐,
시인의 시어와 다를 바가 없다. 

시인의 꿈이 자명한 현실이듯이, 
두말할 나위 없이  꿈 옹호주의자이다.
더 나아가 신화와 전설, 
환상과 같은 몽환적 분위기들을 자명한 무게를 지닌 
옹근 현실로 인정한다. 
이러한 밑그림 위에서 그는 자기(Self)와 자아(ego), 
원형(archetype), 집단무의식 (collective uncounsciousness), 그림자(shadow), 
아니마(anima), 아니무스(animus), 그리고 개성화(individuation) 라는 
새로운 색조들을 가미한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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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 있어서 인류를 구원하는 길은 시(詩)이듯이, 

융은 꿈이 인류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에게 예언한다. 

꿈이란 <자기>와 <자아>가 체험하는 두 지대의 합(合)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삶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중심의 소리이다. 
꿈은 삶의 해리를 통합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고백하였다면, 융은 "꿈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지금 우리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꿈을 타고 우리에게 건너오기 때문이다. 
바로 융은 우리가 여기에서 안주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이제 우리는 더디게, 하지만 차근차근 <자기>로 나아간다.
꿈, 신화와 전설, 환상이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아련한 그 자리, 
바로 시인의 마을로 우리는 조금씩 가까이 다가간다.
                                
                                  <낭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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