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땐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큰 산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을 알아 갈 때쯤
무서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 알 수 없는 바람은
내 가슴까지 불어 눈물을 날리고
그저 의무감으로
무의미한 아버지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세상을 좀 더 알았을 때
세상은 내가 원하는 데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도 상처가 되고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도 상처가 되는 것을
아직 다 하지 못한 말
풀어버리지 못한 벽장 속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또 원하지 않는 상처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느 날
당신이 홀로 앉아 술잔을 기울일 때
나는 알았습니다
그 흔한 김치 한 조각
당신 술잔과 동행하지 않는 것을
그것은 당신이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인생이었을까요
그 쓴 외로움이
그 술잔 속엔
버리지 못하는 빈 허풍만이 가득한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 허풍 속에 감춰진 아픔들이
눈물로 술잔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눈물을 묵묵히 삼키고 계셨던 것을
내 아버지의
쓸쓸한 술잔 옆에
말없이 내 술잔을 놓아봅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좀 더 다정한 자식이 되어드리지 못하고
웃음이 되어드리지 못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허풍의 힘으로
높은 파도를 막아주고 계셨고 나는
그 고운 백사장을
맨발로 걸으며 투정을 했던 것을
아버지
아버지의 술잔이
더는 쓸쓸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흐르는 곡싸이 -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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