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에 따른 성격, 그 구라의 세계
딴지 과학부 / 2002. 7. 29. 월요일
바이오리듬 이론의 구라, 그리고 산성체질론의 구라를 까밝힌 기사 이후 멜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지난번 산성체질론 비판은 많은 반론이 올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제대로 된 반론은 한 통도 오질 않았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반론 있으신 분은 얼렁 멜 쎄려 주시라.
이번 기사의 주제는 조금 가볍다. 무엇이냐 하면 혈액형으로 성격이나 운세를 맞춘다는... 아주 우끼고 자빠라지는 내용이다. 흔히들 혈액형으로 보는 성격이나 운세를 그냥 재미로 본다니까 그냥 가볍게 읽어주심... 될까? 아닐껄?
혈액형에 따라 성격의 특징이 드러난다는 구라도 의외로 상식처럼 널리 알려져있고, 그에 반해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분덜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내용이라고 심각하게 주장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어린이 과학 학습 만화라는 곳에 당당히 나오기도 한다. 아... 21세기 명랑과학 입국에 졸라 장애물이 되는 거뜰...
자... 이번 기사에서는 혈액형과 성격 이론의 비과학성에 대해 까발려 드리도록 하겠다. 우선.. 도대체 누가 이런 주장을 했었는지 알아보자. 그 역사를 알고 나면 이제 더 이상 이런 조또 아닌 이론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아리안민족의 우수성을 주장하던 나치스 시대의 독일 스포츠잡지. 이상적인 아리안민족 여성을 그렸다. |
20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하는 학문 중에우생학 이란 것이 있었다. 주로 백인종이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학문적으로입증하려 한 것들이었다. 첨부터 뭔가 심상치 않지? 그쥐?
거기에 새롭게 ABO식 혈액형 지식이 도입되면서, A형이 우수하고 B형은 뒤떨어지며, 따라서 B형이 비교적 많은 아시아인들은 원래 뒤떨어진 인종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독일의 듄겔박사도 이런 걸 다루기 시작했고, 거기에 유학 가있던 일본인 의사 하라에 의해 이 주장이 일본에 들어왔다.
그렇다... 초장부터 감 잡으셨겠지만, 이 이론 역시 앞의 두 이론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꽃핀 구라이론 되겠다. 또 일본이다... 아싸~
그 영향을 받아 1927년 8월 심리학자 후루카와가 자기 친척, 동료, 학생 등 319명을 조사해
<혈액형에 의한 기질연구>라는 논문을 일본심리학회지에 발표한 것이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다.
물론 일본은 황인종의 나라이니만큼 차마 인종간의 우열기준으로 사용하진 못했고, 그 대타로 성격을 나누는 기준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실제 일본군에서는 혈액형에 따른 적성판단으로 정예부대를 만드려고도 했었다. 731부대도 모자라서... 엽기적인 넘들...
이 설은 그다지 지지를 얻진 못하고 일단 사라졌으나 전후 이 설의 영향을 받은 작가 노오미(能見)의 책(1971년)이 인기를 얻으면서 <혈액형 인간학>이 유행을 일으켰다. 물론 이 작가가 무슨 엄밀한 통계조사 등을 한 건 아니고 자기가 작가생활을 하면서 만나본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이렇게 보였다는 식이었다.
저자인 노오미는 혈액형 인간학의 교조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이 이후로 이 사람의 책, 그 아들의 책, 그걸 베낀 책들이 이 이론을 그대로 받아썼다. 역시 장인정신이 투철한 나라다. 과학적 근거? 물론 거의 없다. 그냥 이 사람의 '느낌'으로만 써재낀 3류 소설 나부랑탱이쯤 된다니깐?
이후 이 말도 안되는 이론은 여성지 등을 중심으로 궁합문제, 직업문제, 대인관계, 학습법 등으로 응용되고 온갖 파생 상품들도 생겨나게 된다. 우끼는 나라인 일본이여...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여러 학자들의 비판으로 그 붐이 가라앉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잡지와 책 등이 나오고 있고 점쟁이들도 장사에 이용하고 있다.
이 이론이 우리나라에는 다른 엉터리 과학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본의 혈액형관련 서적들이 번역, 인용되면서 대중들 사이에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아직도 서점에 있는 <혈액형>과 관련된 책 중에 노오미 이름의 책들이 많다.
지금은 그냥 가볍게 여기는 혈액형 인간학이지만 그 역사는 이렇게 엉터리 과학이론의 극치였던 우생학에서 시작되었고 단지 구분의 기준이 되었던 <인종>이 일본으로 넘어가 <성격>이라는 기준으로 껍떼기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러면 좀 뽀대날라나?
서양인은 대부분 A형과 O형이고, B형과 AB형은 10% 정도 밖에 없어 혈액형으로 사람을 나누는 유행 자체가 없으며, 나치스의 만행을 경험한 유럽인들은 혈액형으로 따지는 인간학을 우생학의 망령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은 혈액형이 네 가지로 골고루 나눠진 편이라 아직 이 쓰레기 같은 구분법이 남아있는 것 같다.
일본에선 "이런 건 외국에 없는 엉터리 이론이니 괜히 외국인에게 그런 얘기해서 망신당하지 말라"는 충고도 있고, 일본대학 명예교수이며 심리학자인 오오무라 교수는 "일본인이 원래 조그만 집단에라도 속하면 안심하는 민족성이라 그런 걸 믿는다"고도 한다. 더 우끼는 건 "한국에도 믿는 사람들 있으니 너무 부끄러워말라"는 어느 일본인 개인 홈페이지도 있다는 사실이다.
황인종은 진화가 덜 되었다는 우생학적 관점에서 시작된 이론이 우습게도 황인종의 나라 한국과 일본에서만 아직도 남아있는 셈이다. 우습다고 해야할지 슬프다고 해야할지... 참나...
위에서 본 우원, 어느 한 작가의 <느낌>에 근거한 이론이었다고 얘기를 했다.
대부분 이 이론은 이렇게 설명을 지작한다.
누구에게나 수혈을 할 수 있는 O형은 대범하다.
받기만 하는 AB형은 사생활에 비밀이 많고 냉정하다.
같은 혈액형끼리는 잘 어울린다.
이런 등등...
그러나 수혈관계는 단지 혈액성분의 항원항체 반응인데 기본부터 문제점이 있다. 더구나 실제 수혈을 할 때는 O형이라고 아무에게나 수혈하지 않는다. 오늘날은 여러가지 위험성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같은 혈액형끼리만 수혈하는 게 원칙이다.
혈액형은 수백가지 분류법이 있으며 단지 가장 유명한 게 ABO식일 뿐이다. 요즘엔 Rh식도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사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이 이야기의 시초인 후루카와의 1927년 논문에서 ABO식만을 다뤘기 때문이다. 실제 논문이 나온 1927년에서도 MN, P 혈액형이 발견됐다. 하지만 외국에서 발견된 의학지식을 몰랐던 후루카와는 자기가 아는 ABO식이 혈액형의 전부인 줄로 알았던 듯 하다.
만일 그가 다른 혈액형들까지 제대로 알았다면 <혈액형에 의한 기질연구>가 아니라
물론 시작할 때는 근거가 없는 가설이라 하더라도 나중에 과학적 근거가 발견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혈액형 인간학>의 생물학적 근거로 제시된 것은 고작해야 <혈액은 몸 전체 구석구석에 퍼져 있으므로 그럴 수도 있다> 정도다.
그러나 이 말도 정확하지가 않다. 성격을 결정하는 부분은 뇌일텐데, 정작 뇌세포와 혈액 순환계 사이에는 혈액 뇌관문이라는 곳이 있어서 혈액이 직접 뇌세포에 갈 수도 없다. 물론 ABO식 혈액형을 정하는 항원, 항체도 이곳을 통과할 수는 없다. 성격이 발가락이나 손가락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뇌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잊은 듯하다.
생물학적 근거가 없다면, 그럼 유일하게 남은 대안, 통계학적 근거는 있을까?
이것도 <없다>가 정답 되겠다. 일본에서 나온 각종 통계자료를 보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는 경우들이 있지만, 그건 통계의 장난인 경우가 많았다.
왜 꼭 특정회사 특정부서만 따질까?
왜 꼭 특정연도의 특정국가 국회의원만 따질까?
왜 꼭 프로야구에서 타자의 각 부문의 10위까지만 따질까?
투수는? 20위까지는? 한국, 일본,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 전체는?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여러가지로 범위를 좁히고 좁히면 그럴듯한 결과는 얼마든지 얻어낼 수 있다. 게다가 프로야구의 예에서는 한 가지 속임수도 있다. 홈런, 안타, 타점부문에서 따로따로 특정 혈액형만 많았다면 뭔가 신기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홈런, 안타, 타점에는 공통인 선수들이 많아서 특정 혈액형이 많게 보일 뿐이다. 이게 바로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말쌈.
그럼 왜 맞는 것처럼 보일까?
내가 무슨 죄야? |
사실 이 이론에 대해 생물학 쪽에서는 별로 반론이 없다. 왜냐? 애초에 이게 과학적 근거 자체가 없기 때문에 반론도 없는 것이다. 얘기할 건덕지가 있어야 하지...
오히려 심리학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런 근거없는 이야기를 믿는 심리 기저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주제로 말이다. 우끼지?
그렇다면 어째서 혈액형 성격 분류는 주위에서 맞게 보일까? 사실은 당연하다. 가장 큰 이유는 <성격>이라는 게 애초부터 애매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행동이든 아무 혈액형 특징으로 자신있게(?) 갖다 맞출 수 있다.
여기선 상대를 특정 기준에 맞춰서 판단하는 <암시>와 사람들이 자기 혈액형에 맞춰 행동하는 <암시>, 그 두 가지가 작용한다.
먼저 판단하는 쪽의 <암시>란, 각 성격 정의가 애매하므로 그 범위를 맘대로 정한다. 저 사람이 일을 척척 잘 해낸다. 그건 어떻게 보면 성실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적극적이이서, 어쩌면 실천력이 있어서, 아니면 몰두를 잘 하는 타입이라 이것도 아니면 적응력이 높거나 욕구가 강해서 또는 합리적이라 그런 것 같다. 여러분은 이게 다 구별이 잘 되시나? 즉 어느 혈액형이든 대부분 설명이 가능하다.
그리고 혈액형에 맞춰 행동하려는 <암시>란, 예를 들어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를 믿는 사람들을 설문조사 하면 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 혈액형 특징에 맞는 답변을 해서, 결과가 혈액형과 성격이 관계가 있다고 나오며, 이러한 문화가 없는 곳에선 반대 결과가 나오곤 한다.
<성격>에 대해서 하나 더 생각하자. 우린 정말 하루 24시간 1년 365일 특정 성격을 가질까? 용감하고 적극적이며 불의를 참지 못 하지만 바퀴벌레만 보면 연약한 부인을 애타게 부르는 저 아저씨는? 왜 저 아저씨는 바퀴벌레에게만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일까? 평소에 내성적이고 수줍은 저 아가씨가 마이크만 잡으면 가장 용감해지는 경우는?
우린 각각 어느 정도 일관된 성격들을 가지지만, 그때 그때의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의외로 우리 생각보다 더 자꾸 변한다. 밖에 나가선 친절한데 집안에선 폭군인 남자, 옷 입으면 점잖은데 옷 벗으면 색마, 머 그런 경우도 많지 않은가?
이런 이유들 때문에 <성격>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대상으로 학문적 연구가 매우 어려운 주제다. 그리고 이런 <성격>에 따라 실제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 혈액형으로 이런 걸 할 수 있다니... 쩝...
게다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이런 것도 있다. 당신의 성격이 이러이러하다는 설명을 여러분이 읽는다고 치면, 자기 해당되는 사항은 열심히 읽지만 다른 곳들은 대충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는 "야 정말 맞는구나" 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다른쪽 설명도 잘 읽어보면 자신에게 맞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런 사람도 있다. 자신의 혈액형 성격이 잘 맞는다고 느꼈는데, 알고 보니까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혈액형 성격을 보니 그것도 잘 맞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는 거다. 즉 자기가 어디에 속하느냐는 선입관에 의해 거기에 납득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온 설명에서도 잘 들어맞는 문장과 단어 몇 개만이 기억에 남고 나머지 부분은 그냥 지나친다. 즉 뭐든지 설명 하나만 자기에게 주어지면 왠지 잘 맞는 것처럼 여겨진다. 또한 설명을 교묘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소심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때로는 대범하게 행동해 주위에서 의외라고 합니다'
'당신은 평소 대범하지만 가끔은 소심하게 고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뭐가 다른지 구별이 되시나? 실제 엉터리 성격판단이나 점, 사주팔자 사이트 등에서도 이런 점을 악용해 애매하게 만든 설명들을 만들고 무작위로 적당히 골라서 보이는 방법을 쓸 수 있다. 뜨끔한 분들 계시리라 여겨진다.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면?
이 이론을 과학적 이론으로 만들기 위해선 아래와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성격을 결정하는 유전자들이 밝혀지고 또 게놈(유전정보 세트 전체)상에서 혈액형 유전자 가까이에 있다는 게 밝혀지는 경우. 유전자들은 게놈상에서 서로 가까워야 함께 자손에게 유전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인간 게놈프로젝트로 인간 게놈을 전부 읽어냈다지만 아직 그 암호를 푼 것은 아니며 또한 적극성 유전자, 낭만성 유전자라는 것들이 하나씩 있는 게 아니라, 복수의 유전자들이 서로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밝혀진 유전자들이 대부분 그렇다.
또한 기본적으로 성격을 포함한 특징들은 유전정보와 환경요인 모두가 참여하는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유전정보로 정해지는 건 일부분이다. 100% 유전정보로 정해진다는 일부 유전병들조차 전형적인 클론인간인 일란성 쌍둥이(유전정보가 100% 일치)에서 오랜 세월 간격으로 발병한다.
혈액관련 연구에서 성격과 관련된 물질들이 밝혀지고 이 물질들이 혈액형과 일치하는 차이가 있다고 밝혀지는 경우. 특정 물질들의 성격에 관한 기능들이 계속 보고되겠지만 결국 복잡한 네트워크의 일부라는 것이 밝혀지는 정도이며 더구나 혈액형과 일치할지는 좀 의심스럽다. 물론 그 물질들이 단순히 혈액 안에서가 아니라 뇌 안에서 어떤 기능인지가 밝혀져야 한다.
생물학적 원리까진 밝히지 못 해도, 성격에 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통계자료가 나오는 경우. 인간의 여러 성격을 너무 단순화시킨다는 기본적인 문제점이 있고 폭넓은 조사대상 확보, 사람들이 실제 자신의 성격에 의한 대답을 하는지 아니면 자기 혈액형에 맞는다고 생각되는 대답을 하는지 구별해야 하는 어려움들이 있다. 위에서 인용한 대부분의 연구결과들은 이 어려움들을 극복하지 못했다.
실제 행동조사에 성공. 혈액형별로 사람들을 나누고 그들의 하루하루 생활 전부를 면밀히 해석해 혈액형별로 행동상의 성격을 설명, 예측할 수 있는가를 조사한다.
문제는 상황요인이나 선입관이 완전히 통제된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데이터의 해석에서 해석하는 사람의 주관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약점도 있다.
결론
이 이론의 기본적인 문제점은 우리들의 끝없이 다양한 성격을 겨우 4가지로 나누는 너무 난폭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성격은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하고 풍부하며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해야지 겨우 4가지로 나눠 구별하고 또 무슨 직업에 맞고 무슨 형끼리 잘 어울린다는 결론들은 <차별>이라는 큰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단순 무식이 이럴 ? 적절한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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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사람이란 개인 개인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중요한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실제 일본에서 나왔던 예들은, 회사에서 특정 혈액형만을 뽑으려고 하거나 인사이동에서 참고로 삼는 경우, 혈액형 별로 아이들을 나눠 친구관계를 단절시키는 유치원(최신과학지식을 도입한 교육방법이라고 선전), 혈액형별 궁합으로 갈등을 겪는 커플 등이 있었다.
특히 대부분의 설명에서 제멋대로라든가 이중적이라는 상대적으로 나쁜 설명이 많은 B형이나 AB형인 사람들은 기분 나쁠 수 있다. 실제로 머리수로 따졌을 때 숫자가 적은 B형과 AB형에게 이런 것들을 덮어씌우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일본의 신봉자들 중에선 단순히 혈액이 아니라 혈액 외에서도 나타나는 혈액형 물질과의 관련성을 추측하거나 신경세포 형성 등에서 혈액형에 따른 차이를 주장하지만 결국 밝혀진 건 없다. 또한 최근에는 남자와 여자는 반대라든가 같은 혈액형이라도 민족에 따라 다르다는 등 지금까지의 주장이 완전히 의미가 없어지는 조사결과를 내기도 하는 등 복잡하게 하는데, 이 모든 복잡한 논란을 정리하면 결론은 이렇다.
자기들도 모른다....
언젠가는 혈액형에 따른 미묘한 차이를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대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혈액형 분류는 기본적으로 지역감정하고 별다른 차이가 없다. 어떤 사람은 성격이 이렇다, 하는 것과 어느 혈액형은 성격이 이렇다, 하는 거는 기본적으로 똑같은 거라는 말이다.
거기에 무슨 고도의 과학적 근거나 정확한 통계자료가 있었던가? 그냥 누가 어떤 나쁜 경험을 했다더란 소문(평범한 반대 경험들은 기억에 남기질 않는다)만이 퍼지고 퍼져서 서로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될 뿐이다.
외모 성별 나이 혈액형 출신지역 등등,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하고 단정지어 버리는 것은 때로 위험하고 폭력적인 생각이 될 수 있다. 혈액형 분류는 아무리 재미로 한다지만 이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란 절대 <개인>으로 판단해야 하며 엉터리 선입관에 의존한다면 양쪽 모두 피해이다.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사람을 시간을 두고 이모저모 따지고 능력을 검토해서 뽑겠는가? 아니면 만날 필요도 없이 그냥 혈액형이나 출신지역이 적힌 종이만으로 뽑겠는가? 어느 쪽 회사가 앞으로 살아남을까? 당신이라면 어느 쪽 회사에 투자하고 싶은가?
차별주의자가 꼭 히틀러나 나치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덧붙여
페루인디언은 100%가 O형, 마야인은 98%가 O형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다 똑같은 성격일까? 궁금하다.
끝나지 않은 혈액형 신드롬... 통계의 오류가 믿음을 확산시켜
오마이뉴스 / 2006-08-01 12:19 오기현 (ohmypd)
▲ 우리사회의 'B형 차별'에 맞서 공연활동중인 'B형 센세이션' |
ⓒ 오기현 |
7월 30일 밤 10시 홍익대학교 앞의 한 지하음악실. 비좁은 공간에서 의대생 다섯명이 공연 준비에 열중이다. 한창 의학서적을 뒤져야 할 이들이 키보드를 맞추며 연주연습을 하는 이유는 그들 그룹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
'B형 센세이션'. 우리 사회의 황당한 'B형 죽이기' 현상에 분노하다가, B형도 섬세한 예술적 기질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해 창단했다. 이미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혈액형 편견에 역부족을 느끼지만, 사회적 불의에 대항하기 위해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다.
혈액형을 마케팅에 활용해 재미를 보는 사람도 있다. 온라인 의류업체 '더 걸스'는 혈액형별 코디법을 마케팅에 도입했다. 주로 20~30대 여성 중심으로 고객 층이 형성되어 매출이 20% 이상 증가했다.
의정부시 호원동에 사는 서미옥(46)씨는 인테리어 가게를 하다가 최근 죽 전문점을 열었다.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성격의 A형은 죽 전문점이 더 어울린다는 창업컨설팅회사의 권고에 따라 업종 변경을 한 것. 결과적으로 적성에도 맞았고 수입도 늘었다.
네티즌의 절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혈액형 물어본다
▲ 온라인 쇼핑업체 '더 걸스'는 혈액형 코디로 매출을 20% 늘렸다. | |
ⓒ 오기현 |
이렇듯 혈액형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식을 줄 모르고 지속되고 있다.
'혈액형별 성격분류'를 긍정적으로 활용하거나 단순히 재미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혈액형이 인간의 성격을 규정한다는 일종의 '성격결정론'이 확산되고 또, 이 그릇된 믿음이 특정 혈액형에 대한 차별로까지 이어지고 있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SBSi가 지난 7월 20일부터 28일까지 9일간 남녀 네티즌 152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전체 응답자의 50.9%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혈액형을 물어본다고 대답했다. 혈액형이 여전히 상대방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남녀 모두 좋아하는 혈액형은 O형(남 55.5%·여 43.2%)이었고, 싫어하는 혈액형은 B형(남 38.1%·여 31.9%)이었다. 단 여성은 AB형(32.5%)도 싫어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대로 정말 A형은 침착·소심하고, B형은 쾌활·제멋대로며, O형은 포용성·우유부단하고, AB형은 현실적·괴팍한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팀이 지난해 남녀 대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혈액형에 관심이 많은 젊은층이 대상이었지만 혈액형과 성격간에는 유의미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가 최근 부부 280쌍을 조사했는데 부부간의 행복과 혈액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혈액형이 부부간의 만족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혈액형과 성격]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제멋대로... 진짜?
그렇다면 혈액형과 성격간에 생물학적인 관련성은 있을까?
혈액형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면 먼저 성격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발견되어야 한다. 성격 유전자가 존재해야 혈액형 유전자와의 관련성이 입증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격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다.
게다가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물학적인 요인은 무수히 많다. 키가 큰가 작은가, 피부빛깔이 검은가 흰가, 왼손잡인가 아닌가, 눈이 큰가 작은가….
따라서, 설사 먼 미래에 성격유전자가 발견되고 그것이 혈액형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성격이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혈액형은 수많은 성격결정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격은 유전적인 영향보다는 환경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에 하나 혈액형에 의해 성격이 선천적으로 결정되더라도 나중에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결국 혈액형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인정되더라도 영향력이 아주 적은 한 가지 요인에 불과할 것이다.
[혈액형과 직업] 정치인과 운동선수 중에는 O형이 많다?
1983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지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1만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혈액형과 사회·경제적인 지위의 관련성을 분석한 것이었는데 상류층일수록 A형이 많고 O형이 적다는 내용이었다.
이듬해 통계 처리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흐지부지해졌지만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에 혈액형에 따라 개인의 능력이 결정된다는 내용이 실린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었다.
▲ '혈액형의 믿음'은 근거가 전혀없다는 일본 다카다 아키가즈 교수의 저서 | |
ⓒ 오기현 |
혈액형이 개인의 성향과 능력을 결정하고 직업선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혈액형 성격학을 창시한 일본의 노미 마사히코는 예를 들어 O형에 정치인이 많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역대총리 55대 이시바시 단잔으로부터 87대 고이즈미 준이치로까지의 혈액형 중 O형으로 밝혀진 사람은 8명이고, A형은 3명, B형은 1명이라는 것이다. 또 1978년 당시 일본 중의원 중 O형이 35%로 일본인의 O형 평균치 31.5%보다 약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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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33대 트루먼 대통령부터 43대 부시 대통령까지의 혈액형 가운데에도 O형이 7명으로 가장 많고 A형 3명, AB형 1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현직 대통령 중에는 O형이 3명(이승만·윤보선·노무현), A형(박정희·최규하·김대중)이 3명, B형(전두환)은 1명, AB형(노태우·김영삼)은 2명이다.
그러나 2005년 일본의 중의원은 A형(36%)이 O형(26%)보다 월등히 많았다. 우리나라의 현직 국회의원 295명 중에서도 A형(35%)로 가장 많고, O형(29%)은 2위이다. 만약 기초자치단체의 장이나 의원까지 확인해 보면 또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노미 마사히코씨는 운동선수는 O형 혈액형이 많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K리그 축구선수 510명 중 O형이 177명으로 가장 많고 A형이 138명, B형이 124명, AB형이 45명이다. 그러나 독일월드컵 대표선수 중에는 O형은 7명이고 A형이 9명이다. 대학선수나 중·고등학교 등록선수까지 조사해 보면 또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 확실하다.
결국 혈액형과 직업과의 관계는 통계의 기준이나 범위에 따라서 들쭉날쭉 이지만 대체로 그 나라의 혈액형분포도(우리나라의 경우 A형 34%·O형 28%·B형 27%·AB형 11%)와 일치한다.
일본 하마마츠대학 명예교수인 다카다 아키가츠(71)교수는 표본집단이 적은 경우 우연히 특정 혈액형에 특정직업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표본집단이 많아지면 일반적인 혈액형분포도와 일치한다고 밝히고 있다.
조사의 범위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혈액형에 관해 다양한 통계가 증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는 자주 통계조사와 해석의 오류가 비과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마술을 발휘한다.
덧붙이는 글 | 오기현 기자는 < SBS 스페셜> 담당 PD로 '혈액의 진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현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취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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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인만 아는 혈액형... 다른 나라 사람들은 "수혈할 때나..."
오마이뉴스 / 2006-08-04 13:54 오기현 (ohmypd)
▲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의 혈액은행 소장인 데이빗 스트론섹 박사(David F. Stronce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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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피를 원하십니까?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하는 캐나다인 David Dion(26)씨는 자신의 혈액형을 모른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 학생이 혈액형을 묻기에 굉장히 당황했다. 수혈을 원하는 급한 환자가 있는 걸로 착각하고 되물었다. “혹 내 피를 원하십니까?”
SBS 스페셜 팀이 지난 주 워싱턴의 한 공원에 산책 나온 시민 10명에게 혈액형을 물어봤는데, 자기 혈액형을 아는 사람은 3명이었다. 한 여성은 제왕절개 수술할 때 병원에서 알았고, 두 사람은 헌혈할 때 알았다고 했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의 혈액은행 소장인 David F. Stroncek 박사는 혈액형이 다른 사람에게 수혈했을 때 거부반응이 일어난다는 것 이외에 혈액형의 다른 의미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단 혈액형과 일부 질병간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알려진 정도라는 것이다.
실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혈액형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이력서에 혈액형 기재란이 있는 나라도 우리와 일본뿐이다. 혈액형은 수혈할 때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인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한국인은 왜 그다지 혈액형에 관심이 많을까?
우선 ‘피’ 즉 혈연을 중시하는 전통을 생각할 수 있다. 혈액형은 유전되므로 혈액형에 단순히 수혈에 필요한 정보 이상의 그 무엇이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 일본인들의 혈액형에 대한 관심은 세계에서 제일 높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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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를 강조하는 동양의 전통 또한 중요한 요인이다. 처음 대하는 사람의 고향, 출신학교, 가정환경 등에 관심이 많은 우리의 정서상 혈액형은 유용한 정보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혈액형이라는 비교적 간단한 자료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할 뿐 아니라 대화를 풀어나가는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
네 가지 혈액형의 분포가 비교적 균질하게 나타나는 것도 혈액형별 성격유형을 유행하게 하는 요인이다. A : B : O : AB형별 각국의 비율은 영국인 43.4 : 7.2 : 46.3 : 3.1 프랑스인 43.8 : 10.6 : 43.1 : 2.5 등으로 A형과 O형이 90% 정도이지만, 일본인 37.3 : 22.1 : 31.5 : 9.1 한국인 34 : 27 : 28 : 11로 네 가지 비율이 골고루 나타난다.
유럽인들은 대체로 A형과 O형 두 가지 비율이 압도적이어서 혈액형별 성격분류가 별 의미가 없지만, 동양인은 네 가지 혈액형의 비율이 고르게 나타나므로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분류하는 것의 의미가 있다. 또 적당히 꿰맞춰 이야기해도 맞을 확률이 1/3∼1/4나 된다. 그래서 사주나 점에 비해서 상당한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남들이 다 믿으면 내 성격이 바뀐다
▲ 버넘효과 실험에 참석한 A,B,O,AB형 혈액형 학생과 시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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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외향적이고 붙임성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심한 면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니오’ 라고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 ‘당신은 냉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이 많아서 누가 부탁하면 거절 못하는 사람이다’는 평가에 대해 단호히 'NO'라고 대답할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반적인 성격특성을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말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버넘효과(Barnum effect)’라고 한다. 점쟁이들이 얼렁뚱땅하는 말을 자신의 속을 꿰뚫어 보고하는 말이라 믿는 것이 그 경우이다. 성격에 관해서 혈액형 별로 모호하게 얘기해도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도 버넘효과 때문이다.
SBS 스페셜 취재진이 네 가지 혈액형의 사람 각 5명씩 20명에게 혈액형별 성격특성을 조사하는 것이라고 감추고, 실제로는 똑 같은 내용의 설문을 제시하여 자신의 성격과 일치하는지를 물어봤다. 그런데 혈액형과 상관없이 설문의 70% 정도를 자신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대답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인데도 자신의 특이한 성격을 묘사하는 것으로 오인한 것이다.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사회 전체가 혈액형별 성격분류를 믿게 되면 자신의 성격이 그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은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서울시 강서구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발표를 시켰더니 자신은 소심한 A형이어서 남들 앞에서 발표를 잘 못한다고 했다. A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감수성 강한 한 학생의 성격을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오차노미즈 여자대학의 강사인 사카모토씨는 혈액형과 성격과의 관계가 나이에 따라 변화하는지 조사했다. 그런데 B형의 사람이 B형성격의 특성을 알게 되면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B형처럼 되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혈액형별 성격분류를 믿는 사회분위기가 작용한 결과다.
배우자 선택에도 혈액형은 기준
▲ 혈액형성격론 반대론자인 오무라 마사오(80)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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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심리학자 ‘오무라 마사오’교수가 한 여자대학 1학년의 심리학 강좌시간에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면서 혈액형과 성격은 관련성이 없다는 내용의 강의를 했다. 그리고 학기말에 질문을 해 보니까 “나는 아직도 혈액형별 성격분류를 믿는다”고 대답한 학생이 344명 중 168명(48.9%)이나 되었다.
이렇듯 혈액형별 성격분류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일본 하마마츠 의과대학 명예교수인 다카다 박사는 아무리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더라도 혈액형에 대한 신념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중매를 신청하는 미혼여성 중에서 특정 혈액형은 제외시켜달라는 비율이 20∼30%에 달한다. 주로 B형이지만 AB형을 피하는 여성도 가끔 있다.
그러나 혈액형과 성격 사이의 관련성을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다. 단순히 재미로 또 상대방과의 대화를 열어나가는 자료로 활용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인종, 외모, 성별과 같이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선천적인 그 무엇으로 인간의 성격이나 능력을 결정짓는 것은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인종, 외모, 성별에 이어 혈액형이라는 또 하나의 유사과학이 우리사회의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 과학의 시대에 비과학적인 사고가 확산될 경우 우리 사회가 입게 될 불이익과 후유증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오기현 기자는 SBS 스페셜 담당 PD이다. 8월 20일 밤 11시에 방송되는 <혈액형의 진실> 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취재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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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대학을 다니는 K(23)씨는 미팅으로 한 여성을 만났는데, 상대방이 혈액형 궁합을 보더니 연락을 끊었다. K씨의 혈액형도 역시 B형이다. 의대생인 C씨(21)는 마음에 드는 여성이 혈액형을 물으면 O형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B형의 수난이 끝나지 않았다. 2004년 영화 'B형 남자친구'와 가수 김현정의 'B형 남자' 노래 이후 B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젊은층들 사이에서는 아예 기정사실화 되어버린 것이다.
단순히 B형 혈액형만을 타고 났다는 이유로 열등감을 가져야 하는 현실, 도대체 그 황당함의 진원지는 어디인가?
아시아 차별에 악용된 혈액형 인종주의가 일본에 수출
▲ 혈액형은 적혈구(둥근 도너츠모양) 항원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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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1900년 오스트리아의 젊은 병리학자 '란트슈타이너'가 ABO 혈액형을 발견한 후 유럽에는 혈액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인들의 혈액형에는 A형과 O형이 많지만 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의 혈액형에는 B형이 많은 것이 발견된다.
황색인에 대한 차별의 근거를 찾던 유럽인들은 혈액형을 인종주의와 자연스럽게 결합시켰다. B형에 대한 편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역설적으로, 일본인 몰아내기로 시작된 인종주의는 일본에 전파됐다.
1911년 일본인 의사 하라 키마타가 독일의 병리학자 듄겔른이 일하던 하이델베르크의 한 연구소로 유학을 갔다. 듄겔른은 혈액형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발견해 유럽에서 명성을 얻었고, 혈액형 인종주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1914년 세계 제1차대전이 일어나자 일본으로 돌아온 하라는 일본인들의 혈액형을 조사했는데 일본인이 유럽인에 비해 A형은 상대적으로 적고 B형은 많은 것을 발견했다. 서양제국을 모델로 발전하던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불쾌한 일이었다.
하라는 B형 혈액형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16년 일본의 한 신문에 발표한 논문에는 A형은 순종적이고 B형은 난폭하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혈액형 성격학'이 일본에서 탄생한 것이다.
혈액형 비율로 민족성을 계산할 수 있다?
▲ 가장 서양적인 동양인이라는 일본인. | |
ⓒ 오기현 |
1927년 일본 나가노현의 교육학자인 후루가와 다케이치는 직관을 이용해 '혈액형 기질 상관설'이라는 이론을 구성하고 1932년 '혈액형과 기질'이라는 책을 냈다. 'A형은 내성적이고, B형은 외향적이며, O형은 의지가 강하고, AB형은 이중적'이라는 기본적인 이미지가 완성된 것이다.
후루가와는 혈액형을 이용해 '민족성 계수'라는 괴상한 공식을 고안했다. O형의 비율(%)과 B형의 비율을 더한 수치를 A형 비율과 AB형 비율을 더한 수치로 나눈 것이다. 즉 (O+B)/(A+AB)로 구하는 공식인데, O형과 B형의 비율이 높으면 활동적이고 A형과 AB형의 비율이 높으면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후루가와가 B형을 부정적인 혈액형으로 분류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혈액형성격론을 신봉한 그는 혈액형과 기질(성격)의 관련성을 체계화시켰다.
그는 영국·프랑스·독일·미국을 '구미 이상국'이라고 규정하고 일본인들이 이들과 가까워지기를 절실히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성 계수가 높아져야 하지만 당장 국제결혼을 장려할 수는 없으므로 학교교육을 통해 적극적인 국민을 육성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군대 지휘관은 O형, 교사는 A형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혈액행 성격학은 군대조직에도 활용됐다. 1934년 교토의 한 군의관이 혈액형을 이용해 수송부대를 편성한 것.
이 군의관은 인원 각 67명으로 혈액형별 배합을 통해 2개 중대를 편성했는데 '행동적인 집단' '견고한 집단' '견고함과 유연성의 균형이 맞는 집단' 등의 4개 반을 아래에 두었다. 그러나 그 부대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일본은 서양과 동양의 중간 피"
후루가와 다케이치의 학설은 1933년 일본법의학회 제18회 총회의 대논쟁을 계기로 쇠퇴했다. 그러나 그의 학설은 약 40년이 지난 1971년 한 방송작가가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일본사회에 다시 부활했다.
노미 마사히코라는 이 작가는 수십만에 달하는 데이터를 토대로 자신의 이론을 세웠다고 하는데, 1930년대 후루가와의 성격 분류법과 내용이 매우 유사해 보인다. 노미 마사히코와 그의 아들 노미 도시다카가 발행한 책은 100권이나 된다.
"일본인은 외국인들로부터 성실근면하고, 집단의 질서를 중시하고, 예의 바르며, 절도가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A형 성격과 닮았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노미 도시타카가 <혈액형-재미있는 인간테스트(2005년)>라는 책의 서두에서 쓴 내용이다. A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일본인의 국민성이 A형 성격과 유사함을 밝힌 것이다.
이 책을 더 읽어보자. 아래의 글을 보면 일본인들이 왜 혈액형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일본을 가리켜 '반은 동양, 반은 서양'이라고들 하는데 이것은 혈액형 구성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일본의 혈액형 구성을 보면 서구와 비슷하게 A형과 O형이 주류를 이루지만, B형의 비율은 10%도 안 되는 서구에 비해 높은 편이다. 서양과 동양의 중간에 위치하는 특이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 노미 도시타카. <혈액형 비즈니스 파워(동서고금 번역)>
일본보다 B형적인 한국
▲ B형 지도. 유럽에는 B형이 거의 없지만 아시아 쪽으로 올수록 B형이 많아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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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만난 한 의사는 한국은 일본보다 B형 혈액형이 약 10%나 많으며 AB형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라는 사실을 강조했다(실제로 A-O-B-AB 혈액형간의 비율이 일본은 37.3%-31.5%-22.1%-9.1%이고 한국은 34%-28%-27%-11%였으며, 한국의 B형 비율은 일본보다 약 5% 더 많다).
취재 당시에는 그 말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취재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인종주의적인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
즉 그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은 일본보다 'B형'과 'AB형'이 많다(일본에서는 B형뿐만 아니라 AB형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한다). 일본은 혈액형에서조차도 4:3:2:1이라는 질서와 균형을 보여준다. 한국은 일본보다 B형적인 요소가 월등히 강하다.
심심풀이 혈액형 성격학, 언제든지 무기로 돌변?
따지고 보면, 일본의 혈액형 비율은 한국과 도토리 키재기다. 일본은 한국보다 A형이 3% 정도 많지만 구미 각국에 비해서는 훨씬 적다. 또 B형은 구미에 비해 월등히 많다. (영국의 혈액형 비율은 A-O-B-AB가 43.4%-46.3%-7.2%-3.1% 비율이다) 우연의 수치인 4:3:2:1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혈액형별 성격분류를 신뢰할 경우 그 최후의 피해자는 우리 한국인이 될 수 있다. 인종주의의 타깃이었던 B형이 상대적으로 많고,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AB형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기 때문이다.
혈액형별 성격분류의 부정적인 면만 볼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을 잘 활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비과학적인 믿음이 언제든지 약자에 대한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현대적인 사고체계를 세워나가야 한다. 혈액형을 재미로 보기에는 그 피해가 너무 심각하다. 유럽에서 시작되어 일본에서 만개한 '인종주의적 혈액형 성격분류론'은 언제든지 우리를 피해자로 몰아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오기현 기자는 SBS 스페셜 담당 PD이다. 8월 20일 밤 11시에 방송되는 '혈액형의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취재 중에 있다.
ⓒ 2007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