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역사와 이론] 커피의 역사에 대해…
커피 또는 커피차는 커피나무의 씨를 볶아 가루로 낸 것을 따뜻한 물이나 증기로 우려내어 마시는 쓴맛과 신맛이 나는 음료다.
커피콩은 주로 적도지방 라틴 아메리카, 동남 아시아, 남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70여개국에서 재배되는 커피나무에서 얻는다.
녹색 커피콩(로스팅 전의 생두)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교역되는 농산물 중 하나로
카페인 성분으로 인한 사람을 각성시키는 효과가 있다.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중 하나다.
에티오피아 원산의 커피 나무의 열매는 본 고장에서는 음료보다 곡류나 두류와 같이 사용되었고
커피 나무가 아라비아 각 지방으로 분포되어 재배되었다고도 한다.
커피가 문헌상에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A.D 900년경 아라비아의 내과의사인 라제스의 의학서적에 기록되어 있다.
커피는 처음엔 음식으로 사용되었고 그 다음엔 술, 의약품 그리고 음료로 쓰여졌다.
음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A.D 1,100년경 부터이다.
11세기 초 아라비아의 라제스와 아비세나 등의 의학자들은
커피가 위장의 수축을 부드럽게 하여 주는 반면 각성제로도 좋은 약이라고도 했다.
그 후부터 하나의 기호 음료로 전환되었으며 페르시아, 아라비아 전역에 애음되었다.
1517년 터키의 세림 1세가 이집트에 원정차 방문하다가 커피의 애음풍습을 터키에 들여왔으며
1554년 콘스탄티노플에 화려한 카네스 커피숍이 등장하였다.
이 카네스 커피숍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콘스탄티노플을 관광하는 관광객들은
항상 이 곳에 들려 이국적인 정취와 기이한 커피 맛에 매료된 나머지 각자 자기의 나라에 그 풍습을 전했다고 한다.
커피는 급속도로 퍼져 유럽 전역에는 1573년 독일의 의사 라볼프의 기행문에 의해 처음으로 커피가 소개되었다.
커피에 대한 기원에 대한것은 여러 설이 존재 하지만 그 중 대표적인것은 칼디와 오마르이다.
둘 다 사실여부는 모르지만 그 기원이 그럴듯하면서도 묘하게 낭만적이며 커피와 어울리는 기원이다.
칼디는 월리엄 유커스가 지은 '커피의 모든 것'에 소개되고 있는 커피 발견에 얽힌 전설이다.
7세기경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칼디라는 이름의 양치기 소년이 자기가 기르고 있는 염소들이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그 날밤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동안 얌전했던 염소들이 갑자기 흥분한 모습을 본 칼디는 그 뒤로 염소들의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하였으며
그 결과 염소들이 주변에 있는 어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따 먹었을 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열매를 먹어본 칼디는 자신도 신기하게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꼈고 이러한 사실을 가까운 이슬람 사원 승려에게 보고하여
그 뒤로 커피는 곧 여러 사원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참고로 커피 체인점 '춤추는 염소'의 이름은 여기서 기인했다.
오마르는 1258년 아라비아의 승려 셰이크 오마르가 문책을 당해 아라비아의 오사 산으로 추방된 뒤 배고픔에 못 이겨
산 속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우연히 한 마리의 새가 빨간 열매를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 그 역시 그 빨간 열매를 따 먹었다.
그 결과 피로가 풀리고 심신에 활력이 되살아 났다.
그 후 그는 그 열매를 이용하여 많은 환자들을 살렸고 결국 성자로서 존경받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한 빨간 열매는 커피의 열매이다.
커피의 각성효과때문에 아랍어의 "Kaffa" 즉 힘을 의미하는 단어로 불려지게 되었고
그것이 영국에 전래된 후에는 Coffee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스어 "Kaweh"로 불렸으며 이후 유럽각지에서 비슷하게 파생되면서 불리워졌다.
커피를 뜻하는 아랍어 카와(Qahwa)가 원래는 술(Wine)이란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아마도 잘 못 해석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한국에 커피가 들어온 역사는 1895년(고종 32년)에 을미사변 때 부터이다.
러시아공사는 커피 열매를 건조하여 잘 으깬 후 끓인 물에 놓고 맛있게 만들어
고종황제에게 진상하여 시음하게 한 것을 최초라 한다.
당시 고종은 세자(후에 순종)와 함께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고 덕수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맛을 잊지못하여 커피를 찾게 되었다. 그 때부터 커피는 궁중내의 기호 식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889년 러시아 역관으로 세도를 부리던 김홍륙이 천러파의 몰락으로 관직에거 쫓겨나고
또 러시아와의 통상에 거액을 착복한 사건이 들통나 흑산도 유배가 결정되자 김홍륙은 덕수궁에서 일하던 두 하사인을 매수,
고종의 생일에 아편을 대량으로 탄 커피를 마시게 하려다 발각되었다.
고종은 대량의 아편이 든 커피의 맛을 보자마자 맛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후 독일여자 손탁이 러시아 공사관(정동 위치)근처에 정동구락부라는 커피점을 열었는데
이 것이 우리 나라 최초의 다방이라고 전해진다. 일제시대때는 이상이 여러 다방을 지금의 충무로에 열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