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손
우리 부부는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손을 꼭 잡고 뒷산으로 산책을 갑니다. 야트막한 우리 집 뒷동산은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걷기에 딱 좋습니다.
결혼을 하고 지금껏 우리는 손잡고 길을 걸어 본 적이 없습니다. 팔짱을 껴 본 적도 없습니다. 언제나 그는 앞서 가고 나는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남들만큼 사랑이 깊지 않아서였을까요. 조금은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저 남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묵묵히 들어주는 남편의 심성 덕에 지금도 저를 위하여 조용히 손을 잡아 주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암 수술을 받고 난 후 어느 날, 그가 손을 내밀어 나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굳은살이 박인 거칠고 두툼한 그 손을 마주 잡던 날, 그동안 표현은 안 했어도 날 위해 험한 세상 헤치고 사느라 이리도 손이 거칠어졌구나, 하는 생각에 목이 메었습니다.
거칠고도 억센 남편의 손을 잡고 산엘 오르면 이 손을 위해 오래오래 살아남아 무엇이든 그가 기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서럽게 가슴이 저며 옵니다.
내가 암 환자라니, 한밤중 잠이 깨어 어둔 창밖을 내다보면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습니다. 항암치료로 민둥산이 된 머릴 볼 때마다 거울 속에 어느 낯선 여인이 있는 듯 느껴집니다. 세상은 이다지도 아름다운데, 세상 사람들은 변함없이 잘도 사는데 내게만 이렇듯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비통합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새로운 새벽을 맞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토록 굳은살이 박이면서 힘든 생을 나와 함께해 온 남편을 위해 오늘도 아침밥을 지어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남편의 손을 잡고 걸으면 살아 있다는 게 참으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