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자취 생활
2004년, 집을 떠나 생활하고 싶다는 나의 간절한 꿈이 이루어져 서울로 올라와 대학교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네 명이나 북적대는 삶은 나만의 공간을 심하게 챙기는 성격인 나에게 맞지 않아 탈모증까지 생기고 말았다. 결국 부모님을 졸라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창문도 없는 고시원은 숨통을 조여 왔고, 또다시 조르고 졸라서 자취방을 얻었다.
막상 혼자 살아 보니 자취는 어렸을 때 상상하던 ‘따사로운 햇살에 레이스 커튼을 걷으며 일어나고,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는 상쾌한 아침’이 아니었다. 빵 조각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금방 물리고, 혼자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해서 세수도 하지 않고 학교로 달려갔다. 또 집안일은 끝이 없었다.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금세 광나던 방바닥은 윤기를 잃었고, 뭐 하나 해 먹을라 치면 쌓이는 설거지에 군것질만 늘었다.
자취 생활 하다 보니 엄마에게 “집안에서 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라고 투덜거리던 일이 떠올랐다. 엄마에게 웃는 낯으로 대한 적도 거의 없었다. 집안일은 아무리 많이 해도 티 안 나는 일이었음에도 가족들에게 도와 달란 한마디 없이 이불 집 운영하면서 다 해 온 엄마. 부모님 도움 없이 자기 혼자 돈 벌어서 학교 등록금 대고 생활비 대는 사람도 많은데, 난 좋은 정남향 하얀 집에 살면서 학비 대 주고, 연애비 대 주고, 용돈 대 주는 아빠한테 애교 한번 부린 적 없었다.
이제야 그 고마움을 깨달은 나는 집안일도, 공부도 더 열심히 하려 노력한다. 요즘에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웬만한 음식은 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다. 집에서 떠나고만 싶었던 어린 마음은 이제 집과 가족을 향한 더 큰 애정이 되어 자취방과 본가를 이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