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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이야기

폭설이 내리던 밤에 (사연)

작성자어린아이|작성시간13.08.05|조회수6 목록 댓글 0

 

폭설이 내리던 밤에


눈이 왔습니다. 부산에 백년 만에 폭설이 내렸습니다. ‘와아’ 하던 함성이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으로 바뀌던 눈이었습니다. 밤에 살짝 창문을 열어 보니 눈이 여전히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 눈 속을 한 번 걸어봤으면 하는데 남편이 내 마음을 언제 읽었는지, “나가서 좀 걷다 올까?” 합니다. 

“우리가 일이 년 살았나, 척하면 알지!” 


내 마음을 먼저 알아줄 때 부부는 이런 건가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팔짱을 끼고 눈 속을 걸었습니다. 이런 날이 또 언제 있을까 하면서. 남편은 눈을 뭉쳐 던지기도 하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그렇게 걷다가 포장마차가 보여 잠시 들렀습니다. 우리는 포장마차 지붕 위로 쌓이는 눈을 보며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내 남편이 참 잘생겼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남편이 대뜸 “오늘 보니 우리 마누라 무지 예쁘네~” 하면서 날 치켜세웁니다. 이심전심인가 봅니다.


요즘 우리는 참 힘듭니다. 불행은 아닙니다. 그냥 조금 힘든 일입니다. 그 조금 힘든 일들이 모이니 더욱 힘든 나날입니다. 하지만 버텨 낼 수 있는 건 우리에게 아직 사랑이 남아 있어서입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벌써 뉴스에 날 만한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알기에 우리는 마주 보며 눈물도 한 방울 찔끔 흘리고는 서로 아닌 척 하고 웃습니다. 


밖엔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우리는 그 눈 속을 걸어 집으로 향합니다. 눈이 수북수북 쌓이면 아침에 눈사람을 만들 거라고 꼭꼭 일찍 깨워 달라고 하던 아이들이 잠든 집으로.




송미춘 님 / 부산시 북구 구포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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