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여동생은 방학만 되면 제게 그림일기장을 맡겼습니다. 꼭 개학을 며칠 앞두고 말입니다. 제가 동생 숙제를 대신해 주는 걸 알게 된 엄마는 “숙제는 맡기는 사람보다 해 주는 사람이 더 나쁜 거여!”라며 저를 향해 매를 드셨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가시나야! 날마다 니가 그림을 그려” 하고, 단호하게 말하면 동생은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새하얀 일기장을 앞에 놓고 하루 종일 구멍이라도 날 만큼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제가 보다 못해서 좀 도와주려고 옆에 앉아 거들면 “숙제 해 주는 사람이 더 나쁜 거여!”라며 여지없이 엄마의 회초리가 날라 왔습니다.
엄마가 외출하신 어느 날 동생이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언니야! 내 그림일기 좀 대신 그려 주면 안 되나? 응?”
“그럼 니가 글씨만 써! 엄마한테 안 들키게 내가 회관 가서 그림 그리면 되잖아.”
농활 왔던 대학생들이 선물해 주고 간 안데르센 동화책 읽으러 동네 회관에 간다며 엄마께 거짓말한 뒤 그곳에서 동생의 그림일기를 그려 주었습니다.
개학하고 며칠 뒤 학교에서는 잘한 숙제를 복도에 전시해 놨는데, 아니 글쎄 동생의 그림일기가 복도에 떡 하니 전시되어 있는 겁니다. 내 일기도 아닌 동생의 그림일기가 전시 되었으니 질투가 나 엄마께 일러줄까 말까 하면서 동생의 용돈을 많이도 빼앗아 썼습니다.
‘방학’ 하면 초등학교 내내 동생의 그림일기와 저의 그림일기를 내용 겹치지 않게 그리던 일이 생각나네요. 동생의 그림일기를 그려 주며 실력을 쌓은 덕분에 우리 아이들에게 비록 크레파스로 그린 네다섯 장의 그림이지만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그림동화를 만들어 주는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장사녀 님 / 충북 충주시 봉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