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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이야기

새의 방문 (사연)

작성자어린아이|작성시간13.08.08|조회수11 목록 댓글 1

새의 방문





육아를 핑계로 친정 마을에 사글세로 찾아든 지 5년. 얼마 되지 않는 세간도 다 들여놓지 못해 문 한 짝이 떨어져 나간 신발장을 얻어다가 잘 신지 않는 신발이며 잡동사니를 넣어두었다. 그런데 작은 새 한 마리가 신발장에 둥지를 틀었다. 그것도 내 구두 위에.
집에 날아든 새가 둥지 틀고, 알까지 낳았는데 둥지를 뜯어낸다는 것은 죄받을 짓이라는 친정어머니의 강력한 주장에 그대로 두었다. 하루 이틀 지나고 드디어 새끼 새가 재재거렸다.

두려움에 떠는 어미 새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호기심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딸과 시침 뚝 떼고 살짝 들여다보기를 여러 날, 새끼 새들은 드디어 뛰는 듯 나는 듯 마당으로 나오더니 이내 날아가 버렸다. 물론 내 구두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었다. 언젠가부터 새 한 마리가 밤마다 세면장에서 밤을 보내는 것 같았다. 씻으러 들어온 사람을 피해 달아나지도 않을 뿐더러 눈을 마주치고 물끄러미 쳐다보기까지 한다. 그때 우리 집에서 태어난 그 아기 새일까? 가슴이 주홍빛인 새들만 보면 우리 집에서 겨울을 난 그 녀석인 것 같아 괜히 정겹다.

시골에 살면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보며 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한 계절을 보낼 수 있다. 또 온갖 동물이며 곤충, 식물을 아이에게 보여 줄 수도 있는 것은 행운 중에 행운이다. 

얼마 전 마을 뒤로 큰길이 뚫려서 몇 십 분이 걸리던 터미널까지 10분 내로 갈 수 있게 됐지만 별로 반갑지 않다. 올여름 유난히 더웠던 날씨가 새로 포장된 도로와 마을을 빙 둘러쳐 산바람 한 점 못 들게 하는 방음벽 탓인 것 같아서다.

내 삶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 같았던 친정마을이 조금씩 침탈당하고 있다. 씁쓸함을 곱씹으며 올겨울에도 우리 집에 찾아들지 모르는 그 녀석을 생각해 본다.




정은진 님 / 광주시 광산구 송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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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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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도헤이 | 작성시간 13.08.09 어릴적 제비가 생각나네요 저 역시도 그리 했는데 말입니다 기다려 지고 조심조심 울 집에 둥지를 튼 제비가 잘 자랄수 있도록 조심스레 생활했던 때가 말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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