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를 준비하는 시절
대학원 공부하던 시절 진주에서 서울을 오르내렸는데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여섯 시간 가량 걸렸다. 그래서 바른 길을 찾아 고속버스가 일반국도로 다니기도 했다. 한번은 줄곧 창밖을 보고 있는데 차가 국도로 들어서고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작은 언덕에 진홍빛 꽃이 무성하게 피어 눈길을 끌었다. 차가 꽃동산에 가까워졌을 때 무슨 꽃인지를 확인하고는 감탄을 하고 말았다. 그 흔한 코스모스였던 것이다. 미처 몰라본 것은 오로지 진홍빛 코스모스만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진홍빛 코스모스만 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일 년 전 가을날에 진홍빛 코스모스 꽃씨만 모아둬야 한다. 코스모스 꽃밭에서 흰색과 분홍색이 섞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모았을 것이다. 봄이 오자 꽃씨를 뿌리면서 진홍빛만 피어 있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 새롭고 아름다운 동산을 꿈꾸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누가 국도변에 저렇게 열심히 꽃을 심었을까. 그날 집으로 올 때까지 꽃씨를 심은 사람의 마음이 내게 전해졌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인데도 그토록 정겨울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 동안 나도 가을 무렵이면 꽃씨를 모아 서랍 안에 넣어두곤 했다. 봉숭아, 채송화, 백일홍, 접시꽃 같은 다채로운 꽃들에겐 예쁜 색깔이 따로 있다. 예쁜 꽃이 피어 있는 곳을 보면 기억해 두었다. 꽃이 지고난 후 꽃씨를 골라 모았다가 다음해 다시 심기도 하고 나눠 주기도 했다.
물론 꽃집에서 꽃씨를 사다 심는 쉬운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어떤 색깔의 꽃이 필지, 어떤 모습의 꽃길이 될지 잘 모른다. 맘에 두었던 꽃씨를 직접 거두어 원하는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씨앗을 심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
이제 가을이 오고 있다. 꽃씨를 모아둘 시절이 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꽃씨를 모아두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김대군 님 / 경남 진주시 가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