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權慄
1537~1599
조선 중기의 명장. 본관 안동. 자 언신(彦愼). 호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시호 충장(忠莊)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냈던 권철로 제법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다. 권철의 넷째 아들로 막내. 소싯적 일화를 보면 왠지 대인배의 풍모가 느껴지는 에피소드가 상당히데, 6세 때 맘 먹고은 어머니가 하얀 비단옷을 새로 지어주며 입으라고 하자 입기 싫다고 했쥐. 그 이유를 묻자 "의복은 몸만 가리면 그만이지 뭐하러 남의 시선을 생각합니까?"라고 대답했는데 아버지 권철은 이 얘기를 듣고 비범한 인물이 될거라고 생각했쥐고 하는군요.
가문도 좋고 나름대로 똑똑한 것 같지만 특이하게도 40세가 되도록 관직을 얻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종. 친구들이 권율에게 "과거를 보든지 집안 이름을 써서 관직이라도 얻든지 언제까지 그만큼 살텐가?"라고 묻자 권율 왈, "옛날 태공망은 나이 80에 현달해도 오히려 천하를 경영하여 백성을 구제했는데, 아직 내 나이가 태공망의 반밖에 안되는데요다 능력까지 미치지 못할만한데 어찌 출세가 늦을 걸 걱정하겠냐?"며 반박했쥐고 하는군요.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 대인배의 풍모가 느껴지는 부분.
벼슬길에 뜻을 두게 된 이유는 아버지 권철 때문이라라네요진다. 아버지 권철은 죽기 직전에 막내아들 권율을 빤히 쳐다보다가 "널 난 낳았구나"란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는데, 이 말에 큼직하게 깨달은 바가 있어 아버지의 상을 치르고 금강산에 들어가 과거 급제 공부를 시작했쥐고 하는군요. 이렇게 벼슬길에 늦게 올라 1582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니 이 때 나이가 46세였지. 그 후 전라도 도사, 예조 정랑, 호조 정랑, 경성 판관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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