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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세상]26/06/10 6·10 민주항쟁 39주년, 민주주의 헌신한 가톨릭 교계 인사들 조명

작성자성기화 요셉|작성시간26.06.10|조회수37 목록 댓글 0
  • 기자명 경동현 기자 
  •  입력 2026.06.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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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영 의장 국민훈장 모란장, 정호경 신부 국민훈장 동백장, 정형달 신부 국민훈장 목련장, 송영순씨 국민훈장 석류장 추서

 

남영동 대공분실 터에서 울려 퍼지는 민주주의의 노래

 

제39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이 6월 10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거행됐다.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故 김근태 고문사건(1985년)과 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년) 등 과거 민주인사들에 대한 인권 탄압이 자행되었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 부지에서 열려 공간적 의미를 더욱 깊게 했다. 올해 기념식은 ‘그날의 외침으로, 날자! 민주주의’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됐다. 개식 공연을 시작으로 주제영상 상영, 정부포상 수여식, 유가족을 위로하는 특별 뮤지컬 '어느 어머니 이야기' 공연 등이 이어졌고, 참석자 전원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제창하며 마무리됐다.

제39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 포스터. 이미지 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특히 기념주간 행사로 1987년 6월의 외침을 예술로 담아낸 민중미술 특별전 ‘1987 개화(開花): 다시 피는 유월’이 민주화운동기념관 1층에서 개최되며, 영상 음악회와 KDF 글로벌 포럼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되어 민주주의의 가치를 널리 되새길 예정이다. 민중미술 특별전은 오는 8월 2일까지 진행된다.

민중미술 특별전 ‘1987 개화(開花): 다시 피는 유월’ 전시 포스터. 이미지 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4년 만에 부활한 정부포상, 빛을 발한 가톨릭 인사들의 헌신

 

이번 39주년 행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4년 만에 ‘민주주의 발전 유공’ 정부포상이 재개되었다는 것이다. 총 31점(개인 28명, 단체 3곳)의 훈장과 표창이 수여된 가운데, 엄혹했던 독재 시절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몸 바친 가톨릭 교계 인사 네 명의 헌신이 국가적 예우를 받았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받은 故 이범영 의장은 독재와 분단에 맞서 온몸을 던진 불굴의 청년 투사이자 '토마스 모어'라는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였다. 대학 시절 가톨릭학생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1976년 유신 반대 학내 시위를 주도해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생애 동안 세 차례의 구속과 수배 생활을 겪어야 했다.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창립을 주도해 집행국장과 부의장을 거쳐 1988년 의장에 올랐으며, 이후 전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와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한청협) 초대 의장을 지내는 등 청년 조직의 전국화와 민족 통일 운동에 투신하다 만 39세의 나이에 암으로 짧고도 불꽃 같은 생애를 마감했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 받은 故이범영 의장(1955~1994).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받은 안동교구의 故 정호경 신부는 농민들의 든든한 언덕이자 민주화의 버팀목이었다. 1968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1974년 지학순 주교 구속사태를 계기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결성을 주도했으며, 긴급조치 위반과 '오원춘 사건' 등으로 1977년과 1979년 두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1982년에는 가톨릭농민회 전국 지도신부를 맡아 농민 사목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1984년에는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농민사목'이라는 의안을 준비해 나자렛 예수의 삶을 농민의 현실에 접목하고자 애썼다. 1994년부터는 경북 봉화군 비나리 마을로 들어가 스스로 교구의 생활비 보조를 사양하고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냈다. 평생을 가난한 농민의 동무로 살며,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통해 하느님을 뵙고자 했던 그의 삶은 이 땅의 민주화 운동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선종 시에는 각막을 기증해 마지막까지 나눔을 실천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받은 안동교구의 故 정호경 신부(1941~2012), ⓒ 한상봉

 

국민훈장 목련장을 추서받은 광주대교구의 故 정형달 신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증인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직후인 1969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공의회 정신인 '교회 쇄신'과 '평신도 사도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80년 5·18 직후 광주대교구 사제단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서 '광주사태의 진상'을 직접 작성하여 보안대에 연행되는 고초를 겪었으며, 1985년에는 '광주의거 자료집'을 발간해 진실 규명에 앞장섰다. 이후 1981년부터 1986년까지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을 지낸 그는, 2021년 선종하기 직전까지도 한국 교회의 성직주의를 비판하며 평신도 신학운동을 이끄는 '우리신학연구소'에 1억 원을 기탁하는 등 교회 쇄신을 향한 멈추지 않는 애정과 헌신을 보였다.

국민훈장 목련장을 추서받은 광주대교구의 故 정형달 신부(1943~2021),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민훈장 석류장을 추서받은 故 송영순 씨는 김수환 추기경의 조카사위로, 일본 정의평화협의회를 통해 3.1절 명동 기도회 사건 대응 및 김지하·김대중 구명운동 등에 앞장섰다. 구속 사제들을 위한 기도회를 열고 한국의 인권 상황을 알리는 문서 번역 및 책자 간행을 주도하는 등, 해외 연대를 통해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데 보이지 않는 헌신적 노력을 기울였다.

국민훈장 석류장을 추서받은 故 송영순 씨(1930~2004),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대를 깨운 28인의 개인과 3곳의 단체, 역사가 되다

 

가톨릭 인사들 외에도 이날 각계각층에서 민주주의에 헌신한 유공자들이 훈·포장의 영예를 안았다. 국민훈장 모란장에는 9년간의 수감 생활 속에서도 민주화운동의 시대정신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故 김남주 시인, 1983년 강제 징집 후 의문사하여 민주화의 아픔을 상징하는 학생운동가 故 김두황, 박정희 유신체제에 항의하다 고문으로 사망한 故 최종길 교수 등이 추서되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목련장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 초대 지부장을 지낸 故 오종렬, 부림사건과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등을 변론한 인권 변호사 故 이흥록 등 시민사회 및 노동현장에서 투신한 주역들이 이름을 올렸다. 또한, 1980년대부터 양심수 석방운동과 고문 폭로 등에 앞장선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주열사 명예 회복에 기여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한국교회인권센터' 등 3개 단체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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