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이민기 기자
- 입력 2026.06.19 17:06
- 댓글 0
녹색연합·전쟁없는세상, "평화가 기후다" 세미나 공동 주최
27억 5000만 이산화탄소 환산 톤(tCO2eq). 2022년 ‘지구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들’(SGR)과 ‘분쟁과 환경 관측소’(CEOBS)가 추정한 전 세계 군대의 연간 온실가스 총배출량이다. 이는 같은 해 지구 전체 배출량의 5.5 퍼센트 수준으로, 국가의 탄소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중국, 미국, 인도에 이어 세계 4위 규모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기후·평화운동 세미나 "평화가 기후다"가 열렸다. 녹색연합과 전쟁없는세상이 공동 기획한 이번 세미나는 기후·평화활동가와 시민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 실태를 확인하고 시민사회의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지구를 달구는 군비 경쟁의 악순환
군사적 갈등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비를 늘릴수록, 기후위기도 가속화된다. 군사적 수단과 군사비가 늘면 화석연료 소비도 늘고, 화석연료 의존도 높아지면서 다시금 연료 공급망을 지키기 위해 군비를 증액하는 식이다.
이러한 순환 구조에서 온실가스가 대량 배출된다. 황인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역사적으로 화석연료를 차지하기 위해 군대를 키우고, 군대를 키우기 위해 더 많은 화석연료를 태우는 악순환이 작동해왔다”며 “이 순환 안에서 발생하는 수치로 잡히지 않는 탄소가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6월 17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열린 "평화가 기후다" 세미나 현장. 황인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군비 증가에 따른 기후위기 영향’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녹색연합)
실제 전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잦은 국가 간 분쟁(2025년 기준 8건)을 겪으며 천문학적인 돈을 군비에 쏟고 있다. 올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전 세계 군비 지출은 전년보다 2.9 퍼센트 늘어난 2조 8870억 달러(약 1524원/달러 기준 4400조 원)에 달한다.
군비는 온실가스로 치환된다. 과학자 단체 SGR의 상임이사 스튜어트 파킨슨 박사에 따르면, 군비 지출이 1000억 달러 증가할 때마다 온실가스는 연간 평균 3200만 톤씩 늘어난다. 초국적연구소(TNI)의 탄소 배출 비교 방식을 적용하면, 이는 일반 승용차 약 800만 대가 1년 동안 내뿜는 평균 탄소량과 맞먹는다.
군비 증가 추세에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방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3년~2026년) 한국의 국방예산은 약 8조 7500억 원가량 늘었다. 황 위원은 “SGR의 방법론을 대입하면, 이 기간 국방비 증가에 따른 온실가스 추가 배출량은 약 202만 톤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2016년부터 2026년까지의 대한민국 국방예산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 2026년 국방부 본예산은 65.8조 원으로 7.5 퍼센트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민기
이는 정부의 기후 정책과도 맞지 않는다. 한국은 "제1차 국가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에 따라 2026년까지 온실가스 3100만 톤을 줄여야 하는데, 군비 증액으로 늘어난 탄소(202만 톤)는 목표치의 6.5 퍼센트를 상쇄해 버린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지켜야 할 산업 부문 전체 감축 목표량(350만 톤)의 절반 이상(58 퍼센트)을 차지하는 수치다.
재원 편성의 격차도 분명하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정부가 편성한 기후대응 예산은 약 40조 7000억 원이다. 같은 기간 국방비는 이보다 4배가 넘는 약 177조 7000억 원이 지출됐다. 황 위원은 “예산과 재원이 없어 기후 위기 대응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 방위 산업의 활성화와 군비 확대 추세 속에서 재원 배분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탄소 군화 발자국', 공식 통계엔 안 잡힌다
전쟁없는세상 쥬(여지우) 활동가는 ‘숫자로 보는 군비와 기후’라는 주제로 군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적하는 ‘탄소 군화 발자국(Carbon Bootprint)’을 소개했다. 제품의 전 주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뜻하는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군사 부문에 적용한 개념이다. 군대의 직접 배출(스코프 1)과 간접 배출(스코프 2·3)은 물론, 무기 사용으로 인한 산림 파괴와 전후 재건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함한 ‘전쟁 배출(스코프 3+)’까지 포괄한다.
6월 17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열린 "평화가 기후다" 세미나 현장. 전쟁없는세상 쥬 활동가가 군사 부문 온실가스 배출이 누락되는 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 = 녹색연합)
2020년 녹색연합의 정보공개청구로 확인된 한국군의 배출량은 약 388만 톤이다. 이는 당시 전국 783개 공공기관 전체 배출량(370만 톤)보다도 많다. 쥬 활동가는 “이조차 기지 난방이나 차량 운행 같은 고정 배출을 중심으로 계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쟁없는세상이 TNI의 탄소 배출 추적 방식과 공시된 국내 방산기업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산한 결과, 공급망을 포함한 2023년 한국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량은 약 1460만 톤으로 나타났다. 국방부의 공식 발표치의 3.8배다. 이는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2.2 퍼센트로, 국내 주요 산업인 시멘트 제조업(2.7 퍼센트)이나 반도체 제조업(3.0 퍼센트)에 달하는 수치다.
초국적연구소(TNI)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도출한 한국군의 탄소발자국 계산식. 국방부 공식 발표에는 포함되지 않은 무기 공급망 등 ‘스코프 3+’ 영역의 배출량(빨간색 상자)이 포함돼 있다. (그림 출처 = 쥬 활동가 ‘숫자로 보는 군비와 기후’ 발표자료 갈무리)
쥬 활동가는 “국방부 통계에서 제외된 공급망 배출량까지 포함했을 때 그 규모가 더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군사 부문이 국내 주요 먹거리 산업인 제조업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안보 논리로 탄소 감축 면제 안 돼“
이어진 지정 토론에서 민정희 국제기후종교시민(ICE) 네트워크 사무총장은 기후재난 피해 도서국인 바누아투의 사례를 제시했다. 바누아투와 피지 등 태평양 도서국들은 탄소 흡수량이 배출량보다 많은 국가임에도 해수면 상승 피해를 입자,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기후변화의 법적 책임을 묻는 권고 의견을 요청해 2023년 유엔총회 결의안 채택을 이끌어낸 바 있다. 민 사무총장은 "전쟁으로 인한 기후위기 역시 안보 논리를 넘어 국제 규범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며 법제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6월 17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열린 "평화가 기후다" 세미나 현장. 토론자로 나선 (왼쪽부터) 민정희 국제기후종교시민(ICE) 네트워크 사무총장, 이미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사진 제공 = 녹색연합)
이미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을 “기후 정책의 블랙홀”로 비유했다. 특히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군사 분야와 접목돼 발생하는 전력 과부하 문제를 경고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윤리적 위험성도 지적했다. 이 처장은 “무인기와 인공지능 무기체계가 확대되면 사람을 전장에 직접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 때문에 전쟁을 결정하는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며 사회적 경계와 비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청중으로 참여한 기후솔루션 박주영(글로리아) 캠페이너는 “안보를 이유로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이 상당 부분 누락되는 걸 이번 기회에 자세히 알게 됐다”며 “시민사회와 과학, 철학, 종교, 등 다양한 영역이 연대해 투명한 자료 공개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17일(현지 시각) 미국과 이란 대통령은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했으나 “합의 불이행 시 폭격을 재개하겠다”는 경고가 나오는 등 국제적 긴장은 여전하다. 2022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5년째 장기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은 지난해 10월 휴전이 발효됐지만,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폭격은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의료 지원 단체(MAP)에 따르면, 휴전 이후 17일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희생된 가자 주민은 1000명을 넘어섰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