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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姉 贈貞夫人朴氏墓誌銘

작성자이상윤|작성시간15.04.16|조회수223 목록 댓글 0

「伯姉 贈貞夫人朴氏墓誌銘」 - 옮긴 글

아래 글은 죽은 누이를 그리는 박지원의 애타는 마음이 적혀있다.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마다 코끝이 찡하기를 반복하는 글 중 하나다.
꼬맹이었던 시절 다정했던 누나의 기억을 더듬으며 망자가 된 후에야 자주 보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한다. 사대부 남성의 글도 참 속 깊고 감성적이다. 슬픔은 역시 같은 크기일 수는 없어도 남녀 누구든 같은 빛깔을 지녔음을 느끼게 한다.
<세월이 더디더니 중년에 들어서는 늘 우환에 시달리고 가난을 걱정하다가 꿈속처럼 훌쩍 지나갔도다. 남매가 되어 지냈던 날들은 또 어찌 그리도 빠르게 지나갔던가.> 라는 글귀에서는 인생 무상함이 젖어 온다.
우리도 중년이 지나며 바람처럼 화살처럼 시간이 흐르는 중이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곁에 있는 사람을 아끼며 정성을 다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역설적이게도 인생무상함에 있다는 것...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아래 글은 시간 여유 되실 때 천천히 읽어 보시길....
요즘 죽음, 이별이 이상하게 가슴에 찾아와 한 번 올려 봅니다.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살 힘을 줄 것 같아서.....

[백자 증정부인박씨묘지명(伯姊 贈貞夫人朴氏墓誌銘)]

유인(孺人)의 휘(諱 )는 아무개요 반남 박씨이다.
그 아우 지원(趾源) 중미(仲美)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유인은 16세에 덕수(德水) 이택모(李宅模) 백규(伯揆: 字)에게 시집가서 1녀 2남을 두고, 신묘년 9월1일에 죽다. 향년은 43세이다. 남편의 선산은 아곡(鵶谷)이라 하는데, 장차 그곳 경좌(庚坐 : 남서쪽을 등진 방향)의 묘역에 장사하게 된다.

백규가 어진 아내(맏누이)를 잃고 난 뒤 가난하여 살아갈 방도가 없게 되자, 어린 것들과 여종 하나와 크고 작은 솥들과 상자 등을 끌고, 배를 타고 산골짜기로 들어갈 양으로 상여와 함께 출발하였다. 중미는 새벽에 두포(斗浦)의 배 안에서 송별하고 통곡한 뒤 돌아왔다.

오호라, 슬프구나. 누님이 갓 시집가서 새벽에 단장하던 일이 어제인 듯하다.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는데, 아양을 부리며 누워 말처럼 뒹굴며 신랑의 말을 흉내 내어 정중하게 말을 하니, 누님이 부끄러워 빗을 내 이마에 살짝 떨어뜨렸다. 나는 성을 내고 울며 먹물을 분가루에 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 댔다. 누님은 옥으로 만든 오리 모양의 향로와 금으로 만든 벌 모양의 장식물을 주며 울음을 그치도록 달래주었는데,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28년이 되었구나.

강가에 말을 멈추고 멀리서 바라보니 붉은 명정(銘旌)과
돛 그림자가 너울거리다가, 기슭을 돌아가고 나무에 가리게 되자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강가의 먼 산들은 검푸르러 쪽 찐 머리 같고, 강물 빛은 거울 같고, 새벽달은 고운 눈썹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누님이 빗을 떨어뜨렸던 일을 생각하니 유독히 어렸을 적 일은 역력할뿐더러 또한 즐거움도 많았다.
세월이 더디더니 중년에 들어서는 늘 우환에 시달리고 가난을 걱정하다가 꿈속처럼 훌쩍 지나갔도다. 남매가 되어 지냈던 날들은 또 어찌 그리도 빠르게 지나갔던가.

去者丁寧留後期(거자정녕유후기)
猶令送者淚沾衣(유령송자누첨의)
扁舟從此何時返(편주종차하시반)
送者徒然岸上歸(송자도연안상귀)

떠나는 사람은 거듭 다시 오겠다고 다짐해도
보내는 사람은 오히려 눈물이 옷깃을 적시누나.
조각배 이제 가면 어느 때 돌아오리
보내는 사람은 헛되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

-박지원-

* 휘(諱) : 돌아간 높은 어른의 생전의 이름
* 중미(仲美) : 연암 박지원의 자. (자는 옛사람들이 이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꺼려 결혼후에 붙이는 이름)
* 백자(伯姉) : 맏누이

날씨가 개는 듯... 햇살이 비치는데~
오후에는 다시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네요.
우산 준비하셔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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