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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타이틀] 포기 : 포기의 삶

작성자노지현|작성시간11.12.18|조회수61 목록 댓글 0

“포기의 삶”

 

오지섭

 

언제부터인가 포기하는 편이 마음 편하고, 욕심을 비우는 것이 마음 뿌듯하게 느껴진다. 내 나이에 비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걸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다. 원래 내 성향이 악착같이 경쟁하고 어떻게든 이루어내는 승부욕을 드러내기 보다는 적당한 정도에서 나 스스로를 달래 멈추는 편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못내 아쉬움을 삭히지 못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그런 아쉬움도 남지 않는다. 완전히 없어졌다면 거짓말이고, 그런 나 자신의 아쉬움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지는 일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은 분명하다.

인생의 과정 전체를 보면 열심히, 무턱대고, 무모할 정도로 앞만 보고 달리면서 뭔가를 모아들이고 쌓는데 몰두하는 시기가 있다. 그 때는 응당 그렇게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이런 저런 변화를 겪고 나면 다시 내 안에 쌓아놓은 것들을 하나하나 비우고 포기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도 꽉 틀어쥐고 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어느 순간 포기하는 것이 편해지고, 포기가 가능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나이를 먹은 탓만은 아닐 텐데. 나의 경우에 비추어 보자면 아마도 마음에 변화를 얻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대하는 내 마음에 분명 예전과 다른 변화가 생긴 것이다. 완전히 변화를 이루었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변화가 시작되었고 계속해서 변화를 이루어가려는 지향성이 생겼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돌아보면 삶이 피곤하고 힘들어지는 경우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내가 원할 수 있는 것과 원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마음의 무모함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저 내 마음에서 원하고 가질 수 있다고 무모하게 설정했기에, 세상과 나 자신의 참 모습은 그렇지 않음으로 인한 좌절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이런 저런 상황을 겪은 덕분일까,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의 무모함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좀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되었고, 또 무엇보다 나 자신의 참 모습을 인정하게 되면서 마음에 변화가 이루어졌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 내가 원할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니 그에 대한 포기가 가능해졌다. 결국 진정한 포기는 세상과 나의 참 모습을 정확히 알고 인정했을 때 가능하다.

나의 마음에 이런 변화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종교 공부가 깊은 도움이 되었다. 30년 전 대학에 입학할 때에는 전혀 안중에 없었던 종교학을 나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도 여러 번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종교학을 선택하면서 시작된 종교 공부가 결국 나를 살리는 공부가 되었다. 결코 이론으로서 만은 안 되고 실천적 삶의 수반을 요구하는 학문이 종교학이기에 너무도 버거웠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스스로 감동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불교 공부는 포기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적절한 가르침을 제시해주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불교의 가르침은 ‘자기 비움’으로 집약된다. 세상을 한없는 갈등과 대립의 도가니로 만들고, 나를 그 안에서 고통 받게 만드는 주범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세상 모든 것을 나 중심으로 재단하려는 아집이 모든 번뇌와 고통의 원인이다. 결국 불교에서 제시하는 깨달음은 나 중심적인 분별과 집착을 포기하고 나를 비우는 일이다. 바로 무아(無我)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이렇게 포기의 삶을 이루어가는 데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이 출가수행자이다. 인도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출가 수행자를 삼야신(samnyasin)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세상의 포기(renunciation of the world)’를 뜻하는 삼야사(samnyasa)라는 어원을 지니고 있다. 즉, 출가 수행자는 ‘세상을 포기한 사람(renouncer)’라는 의미를 지닌다.

‘세상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출가 수행자를 소극적으로 세상을 등진 사람 혹은 현세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출가 수행에 담긴 의미는 오히려 현세 삶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자 맞싸움이다. 우선 출가 수행에는 현세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관심과 고민이 전제되어 있다.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현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이 참된 삶의 진리인가에 대한 누구보다 진지한 고민과 성찰 끝에 결국 출가수행자의 삶을 선택한다. 아울러 출가수행에는 현세 삶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저항의 의미가 담겨있다. 나 중심적인 분별과 집착에 의해 끊임없이 갈등과 다툼을 반복하는 거짓된 현세 삶을 단호히 거부하고,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의미에서 (거짓된) 세상을 포기하는 삶을 선택한다.

출가 수행자들처럼 온전히 포기의 삶을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일상에서 조금씩 포기의 삶을 이루어가는 노력은 해야겠다. 조금씩 내가 틀어쥐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나를 비워가는 일이 그저 나이를 먹었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에 도움을 주기 위한 책 한 권을 소개한다.

  

 

『버리고 사는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저, 유윤한 역,

21세기북스, 2011년,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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