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31-38
Point: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쿠오바디스라는 소설-상당한 역사적 근거
베드로의 순교.
쿠오바디스 도미네--본문에 나옴.
예수님 자신이 곧 제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다고 하자
이 말을 듣고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음.
이 본문은 기독교에서 생명과도 같은 말씀
‘예수께서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통하여 무엇을 바라보셨는가?’
제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셨는가
새 계명을 주심 ‘서로 사랑하라’--기독교인의 표지.
본문을 통해 십자가의 의미와 교회의 참된 모습, 우리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됨.
31-When he was gone, Jesus said, "Now is the Son of Man glorified and God is glorified in him.
예수께서는 자신이 지실 십자가를 결코 비참하거나 비극적인 것으로 생각하시지 않으심.
제자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비참한 최후가 십자가이지만 주님은 십자가를 영광으로 생각하심.
‘저가 나간 후에’--가롯 유다가 주님을 팔기 위하여 밖으로 나간 후.
이제 참으로 주님께 속한 자들만 남아 있음.
주님은 십자가를 인하여 얼마나 소망에 차 있고 기대에 차 있는지를 자랑하심.
‘영광’이라는 단어의 출현: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을 의미. 이것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완료형으로) 말씀
물론 아직 십자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미 모든 것이 확정되어 있음.
가롯 유다가 밖으로 감으로 더 확실해짐.
십자가는 이미 주님께 확정적인 사실.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는다’--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을 얻는 것을 말함.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요구하신 것--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것.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존중했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제 우리의 구원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심.
계약 안에 사는 인간: 처음 창조 시- 행위 언약.
아담과 언약-인간이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기로 언약을 세우심.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영광스럽게 하심. 인간의 불순종--영원한 죽음.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에 있게 되는 결과.
아들과 새로운 언약: 아들의 순종을 통하여 아들을 믿는 자-하나님께서 무조건 구원하시겠다는 약속. 아들은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 그 결과 하나님의 뜻이 존중.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짐.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자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고, 예수 믿는 자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모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러워짐.
32-If God is glorified in him, God will glorify the Son in himself, and will glorify him at once.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다시 영광스럽게 하실 줄을 믿음. 예수님은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죽으심.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비참한 상태에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다시 그를 살리셔서 그의 영광을 회복시키시고 교회의 머리요, 이 세상의 심판주로 높이실 것을 바라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at once': 확신에 찬 말씀 ’주고 말고 분명히 주신다.‘ 결단의 의미가 들어있음.
예수께 십자가란-자신의 상처가 아니라 자신의 면류관과 영광으로 보았고 그 십자가 때문에 이루어질 놀라운 것들을 확신 가운데 소망하셨음.
그러나 유다에게 십자가는 미친 짓. 가장 비참한 것--그 앞에서 주님께서 이런 얘기를 했다면 소리소리 질렀을 수도.
십자가를 통해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또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은 다시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시고 모든 믿는 자들을 예수님의 손에 맡기실 것이며 이 세상의 심판도 예수님의 손에 맡기실 것.
우리에게 있는 우리를 꺼꾸러뜨린 것: 십자가 같은 비참하고 힘든 것
-- 괴로워하고 이해가 안되고 용납이 안되나
믿음이 생기면서 그것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었으며 놀라운 지위를 그리스도 안에서 갖게 됨을 알게 됨.
그래서 약한 부분과 치명적인 부분을 사랑함.
자기를 괴롭히고 열등감에 빠지게 했던 약점들을 마치 면류관처럼 자기 머리에 쓰고 남들에게 자랑하면서 다니게 됨.
십자가-비참한 것이 아님. 영광의 죽음. 이 죽음의 결과는 놀라운 것
히 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그 분이 홀로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셨을 때 나타난 영광은 너무나도 엄청났다.
‘예수를 믿는 우리의 영광’: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함.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알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영광스러워짐. 십자가는 우리에게도 영광.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살게 됨.
우리 안의 상처: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우리를 온전케 하며 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 될 것.
우리의 연약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화려한 딴 것으로 채우려고 하면 분주해지기는 하나 분노와 열등이 생겨남. 그것을 십자가처럼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 앞에 드러낼 때 도리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함.
33-"My children, I will be with you only a little longer. You will look for me, and just as I told the Jews, so I tell you now: Where I am going, you cannot come.
34-"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주님은 자신이 떠난 후에 남을 제자들이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한 계명을 주심-------사랑의 계명
떠나시는 예수-더 이상 이제는 육체로 이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심.
떠나시면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사랑하는 일을 하라고 명하심. -----교회에 주신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단순히 관심을 가지고 잘 해 주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세족의 행동에서 잘 나타남.-------무엇보다도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많음: 주님이시며 선생이시기에.
그러나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세상은 자기 권리를 철저히 주장함. 그러나 주님의 제자는 자기의 모든 권리와 야망을 포기한 사람. 자기 권리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완전 무장 해제된 상태. 마음을 열어 놓은 상태.
사람은 다 기질이 있음. 그것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 사랑-그가 가진 약점을 용납하는 것이 사랑. 사랑은 상대의 약한 부분을 깊이 이해하는 것.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을 설득해서 상대의 약한 부분을 위하여 자기가 희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이러려면 그리스도인에게 신실함이 필요.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이 되면 끝까지 견디어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먼저 상대방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계획을 세워야. 자신의 부담과 희생으로 그 일을 추진해 나가야--------이것이 사랑.
35-By this all men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love one another."
진정한 교회의 표지가 여기에 있음.
바른 교회--서로 사랑하는 데 있음.
서로 사랑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은 분명 주님의 제자들.
약점을 가진 사람들. 서로가 힘들어 하기도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서로를 진정으로 자랑하고 사랑할 때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
주님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
따질 게 많고 혐오스럽기도 하고 체질에 안 맞기도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납하고 그들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계획을 가지고 꾸준히 인내할 때 우리는 분명히 주님의 제자들
서로 아는 데 시간이 걸림: 인내하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제자.
36-Simon Peter asked him, "Lord, where are you going?" Jesus replied, "Where I am going, you cannot follow now, but you will follow later."
주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베드로를 더 잘 아심.
‘쿠오바디스 도미네’--주님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약속하셔서 따라왔기에 자신이 따라올 수 없는 곳에 가신다는 주님께 이런 질문을 함.
‘너희가 갈 수 없는 곳에 간다’--자신의 죽음을 가리킴. 지금 이 죽음은 어느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죽음. 오직 주님 혼자 감당하셔야 하는 죽음.
37-Peter asked, "Lord, why can't I follow you now? I will lay down my life for you."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집을 부림.
베드로는 주님을 위하여 죽을 각오.
그러나 이것은 베드로의 자기 생각.
38-Then Jesus answered, "Will you really lay down your life for me? I tell you the truth, before the rooster crows, you will disown me three times!
주님은 베드로의 연약함을 아심.
의욕은 높았지만 그가 실제로 한 것은 주님을 부인하는 것.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주님은 베드로의 의욕을 알고 그의 연약을 알고 그가 어떻게 주님께 사용될 것인지도 아심.
사람은 사람을 잘 모름. 그 앞날도 잘 모름.
우리가 이것을 인정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오직 주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임하셔서 우리 안에 있는 열등감과 상처를 치료하고 내 안에 평화가 충만할 때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뿐.
이 밤에 베드로의 의욕은 아무 것도 아님.
우리의 혈기가 아닌 온유와 사랑으로.
온유와 겸손은 사탄이 항상 패배한 방법.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다른 사람들의 약한 부분을 위하여 죽으러 가는 것.
주님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 껄끄러운 그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심. 내가 포기한 십자가를 주님께서 지고 가심.
‘쿠오바디스 도미네’
Point: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쿠오바디스라는 소설-상당한 역사적 근거
베드로의 순교.
쿠오바디스 도미네--본문에 나옴.
예수님 자신이 곧 제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다고 하자
이 말을 듣고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음.
이 본문은 기독교에서 생명과도 같은 말씀
‘예수께서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통하여 무엇을 바라보셨는가?’
제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셨는가
새 계명을 주심 ‘서로 사랑하라’--기독교인의 표지.
본문을 통해 십자가의 의미와 교회의 참된 모습, 우리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됨.
31-When he was gone, Jesus said, "Now is the Son of Man glorified and God is glorified in him.
예수께서는 자신이 지실 십자가를 결코 비참하거나 비극적인 것으로 생각하시지 않으심.
제자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비참한 최후가 십자가이지만 주님은 십자가를 영광으로 생각하심.
‘저가 나간 후에’--가롯 유다가 주님을 팔기 위하여 밖으로 나간 후.
이제 참으로 주님께 속한 자들만 남아 있음.
주님은 십자가를 인하여 얼마나 소망에 차 있고 기대에 차 있는지를 자랑하심.
‘영광’이라는 단어의 출현: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을 의미. 이것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완료형으로) 말씀
물론 아직 십자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미 모든 것이 확정되어 있음.
가롯 유다가 밖으로 감으로 더 확실해짐.
십자가는 이미 주님께 확정적인 사실.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는다’--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을 얻는 것을 말함.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요구하신 것--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것.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존중했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제 우리의 구원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심.
계약 안에 사는 인간: 처음 창조 시- 행위 언약.
아담과 언약-인간이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기로 언약을 세우심.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영광스럽게 하심. 인간의 불순종--영원한 죽음.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에 있게 되는 결과.
아들과 새로운 언약: 아들의 순종을 통하여 아들을 믿는 자-하나님께서 무조건 구원하시겠다는 약속. 아들은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 그 결과 하나님의 뜻이 존중.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짐.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자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고, 예수 믿는 자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모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러워짐.
32-If God is glorified in him, God will glorify the Son in himself, and will glorify him at once.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다시 영광스럽게 하실 줄을 믿음. 예수님은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죽으심.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비참한 상태에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다시 그를 살리셔서 그의 영광을 회복시키시고 교회의 머리요, 이 세상의 심판주로 높이실 것을 바라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at once': 확신에 찬 말씀 ’주고 말고 분명히 주신다.‘ 결단의 의미가 들어있음.
예수께 십자가란-자신의 상처가 아니라 자신의 면류관과 영광으로 보았고 그 십자가 때문에 이루어질 놀라운 것들을 확신 가운데 소망하셨음.
그러나 유다에게 십자가는 미친 짓. 가장 비참한 것--그 앞에서 주님께서 이런 얘기를 했다면 소리소리 질렀을 수도.
십자가를 통해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또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은 다시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시고 모든 믿는 자들을 예수님의 손에 맡기실 것이며 이 세상의 심판도 예수님의 손에 맡기실 것.
우리에게 있는 우리를 꺼꾸러뜨린 것: 십자가 같은 비참하고 힘든 것
-- 괴로워하고 이해가 안되고 용납이 안되나
믿음이 생기면서 그것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었으며 놀라운 지위를 그리스도 안에서 갖게 됨을 알게 됨.
그래서 약한 부분과 치명적인 부분을 사랑함.
자기를 괴롭히고 열등감에 빠지게 했던 약점들을 마치 면류관처럼 자기 머리에 쓰고 남들에게 자랑하면서 다니게 됨.
십자가-비참한 것이 아님. 영광의 죽음. 이 죽음의 결과는 놀라운 것
히 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그 분이 홀로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셨을 때 나타난 영광은 너무나도 엄청났다.
‘예수를 믿는 우리의 영광’: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함.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알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영광스러워짐. 십자가는 우리에게도 영광.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살게 됨.
우리 안의 상처: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우리를 온전케 하며 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 될 것.
우리의 연약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화려한 딴 것으로 채우려고 하면 분주해지기는 하나 분노와 열등이 생겨남. 그것을 십자가처럼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 앞에 드러낼 때 도리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함.
33-"My children, I will be with you only a little longer. You will look for me, and just as I told the Jews, so I tell you now: Where I am going, you cannot come.
34-"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주님은 자신이 떠난 후에 남을 제자들이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한 계명을 주심-------사랑의 계명
떠나시는 예수-더 이상 이제는 육체로 이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심.
떠나시면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사랑하는 일을 하라고 명하심. -----교회에 주신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단순히 관심을 가지고 잘 해 주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세족의 행동에서 잘 나타남.-------무엇보다도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많음: 주님이시며 선생이시기에.
그러나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세상은 자기 권리를 철저히 주장함. 그러나 주님의 제자는 자기의 모든 권리와 야망을 포기한 사람. 자기 권리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완전 무장 해제된 상태. 마음을 열어 놓은 상태.
사람은 다 기질이 있음. 그것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 사랑-그가 가진 약점을 용납하는 것이 사랑. 사랑은 상대의 약한 부분을 깊이 이해하는 것.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을 설득해서 상대의 약한 부분을 위하여 자기가 희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이러려면 그리스도인에게 신실함이 필요.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이 되면 끝까지 견디어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먼저 상대방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계획을 세워야. 자신의 부담과 희생으로 그 일을 추진해 나가야--------이것이 사랑.
35-By this all men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love one another."
진정한 교회의 표지가 여기에 있음.
바른 교회--서로 사랑하는 데 있음.
서로 사랑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은 분명 주님의 제자들.
약점을 가진 사람들. 서로가 힘들어 하기도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서로를 진정으로 자랑하고 사랑할 때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
주님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
따질 게 많고 혐오스럽기도 하고 체질에 안 맞기도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납하고 그들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계획을 가지고 꾸준히 인내할 때 우리는 분명히 주님의 제자들
서로 아는 데 시간이 걸림: 인내하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제자.
36-Simon Peter asked him, "Lord, where are you going?" Jesus replied, "Where I am going, you cannot follow now, but you will follow later."
주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베드로를 더 잘 아심.
‘쿠오바디스 도미네’--주님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약속하셔서 따라왔기에 자신이 따라올 수 없는 곳에 가신다는 주님께 이런 질문을 함.
‘너희가 갈 수 없는 곳에 간다’--자신의 죽음을 가리킴. 지금 이 죽음은 어느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죽음. 오직 주님 혼자 감당하셔야 하는 죽음.
37-Peter asked, "Lord, why can't I follow you now? I will lay down my life for you."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집을 부림.
베드로는 주님을 위하여 죽을 각오.
그러나 이것은 베드로의 자기 생각.
38-Then Jesus answered, "Will you really lay down your life for me? I tell you the truth, before the rooster crows, you will disown me three times!
주님은 베드로의 연약함을 아심.
의욕은 높았지만 그가 실제로 한 것은 주님을 부인하는 것.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주님은 베드로의 의욕을 알고 그의 연약을 알고 그가 어떻게 주님께 사용될 것인지도 아심.
사람은 사람을 잘 모름. 그 앞날도 잘 모름.
우리가 이것을 인정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오직 주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임하셔서 우리 안에 있는 열등감과 상처를 치료하고 내 안에 평화가 충만할 때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뿐.
이 밤에 베드로의 의욕은 아무 것도 아님.
우리의 혈기가 아닌 온유와 사랑으로.
온유와 겸손은 사탄이 항상 패배한 방법.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다른 사람들의 약한 부분을 위하여 죽으러 가는 것.
주님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 껄끄러운 그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심. 내가 포기한 십자가를 주님께서 지고 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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