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0:5-14절
Point: 앗수르의 교만
전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인격적으로 욕을 먹으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됨.
군대에서 졸병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경우.
그리스도인의 경우: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 폭력적인 사람.
본회퍼의 고민: 미친개같은 히틀러의 난동.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 앗수르가 바로 이 미친개같은 역할.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였고 다른 나라 파괴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김.
이스라엘이 이런 앗수르의 손에 걸려듬.
앗수르는 수리아를 멸망시킴.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를 멸망시킬 순간. 그리고 이들이 궁극적으로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목표로 함.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여기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는지를 물을 줄 알아야. 그렇지 않으면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옴.
5-"Woe to the Assyrian, the rod of my anger, in whose hand is the club of my wrath!
하나님과 청부 폭력업자:
청부업자-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사용하는 방법.
앗수르: 폭력을 업으로 삼음. 그러나 더 놀라운 점은 이 앗수르를 고용해서 끌어들인 장본인이 여호와 하나님.
법률상: 청부업자와 사주한 사람이 똑같이 처벌받게 됨. 상대가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악을 동원하면 이것은 더 악한 일.
그런데 놀랍게도 앗수르를 끌어들인 장본인이 바로 하나님
앗수르는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요 앗수르가 휘두르는 몽둥이는 하나님 자신의 분노.
‘성전(holy war)': 여호수아서-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사용하셔서 음란과 폭력으로 가나안 땅을 가득 채운 악한 왕들을 심판하심. 다윗의 전쟁-거룩한 전쟁의 성격. 선으로 악을 이기는 심판의 경우
그러나 악으로 악을 심판하거나 or 악으로 선을 심판하시는 것-이해가 되지 않음. 그럼에도 악한 세력인 앗수르나 바벨론을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끌이들이셨다고 성경이 증언함.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끌어들이셨다: 비유적인 표현. 하나님은 악을 사용하시는 분이 아님. 악을 억제하시는 분
정부를 허용하시는 이유: 이런 악을 억제하기 위해서.
그러나 주신 평화를 악용하고 점 점 더 교만해지면 악을 누르시던 그 손을 잠시 놓아 버리심. 그러면 앗수르가 나타나고 히틀러같은 이가 등장함.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끌어들이셨다’는 형식으로 표현함.
그러나 결국 폭력이나 살인을 끌어들인 장본인은 이스라엘 사람들.
주기도: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언제 덮칠지 모르는 우리 주변의 악의 세력을 두고 하시는 말씀. 세상은 안전하지 못해 언제 예기치 못한 불행이 덮칠지 모름.
하나님 백성들에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악한 일이 터진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모든 일의 주체는 하나님: 세상의 어떤 악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일어나지 않음. 일시적으로 악을 놓으시면 닥치는대로 악행을 저지르게 됨. 그러나 무한대가 아님. 정해진 시간이 있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아직은 어둠의 때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적극적으로 복음활동. 잡히시던 밤에는 지금은 어둠의 때라고 하심.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사탄에게 넘겨주시는 때라는 것을 알고 계심. 사람들의 양심은 마비되며 악이 마음껏 권리를 행사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심. 제자들에게 깨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부탁하심.
6-I send him against a godless nation, I dispatch him against a people who anger me, to seize loot and snatch plunder, and to trample them down like mud in the streets.
7-But this is not what he intends, this is not what he has in mind; his purpose is to destroy, to put an end to many nations.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세우신 것: 죄와 우상 숭배의 무의미함과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런데 한번 풀어놓으니까 다른 나라들을 완전히 진멸하는 지경까지 감.
앗수르가 노리는 것: 예루살렘이고 하나님의 백성들
8-'Are not my commanders all kings?' he says.
9-'Has not Calno fared like Carchemish? Is not Hamath like Arpad, and Samaria like Damascus?
갈그미스나 아르밧이나 다메섹: 앗수르가 이미 정복한 나라들.
이번에는 갈로, 하맛, 사마리아를 목표로 삼음. 이 나라들도 예전에 자기들이 정복한 나라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절대적인 나라가 어떻게 망하나?
하나님께서 한순간 개입하심으로 한순간에 무너짐.
하나님을 두려워 할 이유-악한 자들의 말로는 어느 한순간의 작은 일로 갑자기 몰락--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인정.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사용하신 것-악을 징계하시기 위해서.
그런데 앗수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 다른 나라를 파멸시켜 버림.
10-As my hand seized the kingdoms of the idols, kingdoms whose images excelled those of Jerusalem and Samaria--
11-shall I not deal with Jerusalem and her images as I dealt with Samaria and her idols?'"
하나님께서 악을 허용하시는 이유:
하나님께서 고용하신 것이 아님. 단지 악한 그들을 붙들고 계시다가 잠시 풀어 놓으신 것.
풀어놓으시는 이유
-은혜를 모르고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평안해지면 교만해지는 경우가 많은 인생.
하나님은 평안을 통하여 사람의 무게를 달아보심. 이것을 아는 사람은 평안할 때 하나님을 더 두려워함. 자신이 잘나서 평안한 게 아님을 알기에. 그러나 어리석은 이는 평안과 형통이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 큰 악을 만나 비참하게 무너지게 됨.
앗수르가 멸망시킨 나라-모두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 평안을 지켜주신 분에게 돌아갈 영광을 우상에게 돌림.
우상을 찾는 이유: 감사는 한데 자기들의 욕심은 그대로 채우고 싶어서 감사의 시늉만 우상에게 내고 자기 욕심으로 달려감.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일종의 보험.
하나님께서 악을 사용하여 악을 심판하시는 것의 특징: 악은 놀랍게도 악을 정확하게 골라냄. 악은 악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알기에 악의 위선을 발가벗겨버림.
악한 마귀가 천국에 부적합한 자를 다 골라내는 역할을 오히려 한다!
v.11 '내가 사마리아와 .... 행치 못하겠느냐 하도다‘
하나님 백성들을 앗수르가 시기함. 그래서 철저하게 짓밟고 멸망시킴으로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함. 이것이 악한 자들의 실수.
악한 자들은 끝을 보아야 직성이 풀림. 하나님 백성을 비참하게 함으로 마음속에 있는 양심의 마지막 등불을 끄려고 함.
이러면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하나? 하나님께 부르짖음. 내가 잘못해서 망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굴욕당하는 것은 참지 못함.
하나님의 백성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보좌에서 일어남.
12-When the Lord has finished all his work against Mount Zion and Jerusalem, he will say, "I will punish the king of Assyria for the willful pride of his heart and the haughty look in his eyes.
하나님의 계획: 앗수르를 일으키시는 것-궁극적으로 어떤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
그 분명한 뜻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시겠다: 시온산과 예루살렘을 겸손하게 하는 것.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게 하는 것. 그렇게 하신 후 앗수르를 멸망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심.
먼저 하나님 백성들을 겸손하게 하심.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우리에게 구원받을 만한 선한 것이 없음. 그러나 구원의 축복을 누리다보면 그것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처럼 착각. 그래서 앗수르같은 불량배를 만나면 구원의 내용을 다시 깨닫게 됨. 나의 모습이 정확해짐. 자랑할 것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만이 살 길임을 깨닫게 됨. 악의 세력 앞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신을 보고 겸손해짐.
13-For he says: "'By the strength of my hand I have done this, and by my wisdom, because I have understanding. I removed the boundaries of nations, I plundered their treasures; like a mighty one I subdued their kings.
-하나님께서 악을 풀어놓으심으로 의인들로 하여금 자기 안에 있는 악한 기질을 보고 깊이 탄식하게 하심.
악한 자들-주어진 자유를 남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자기 이익을 챙김.
앗수르는 자기들의 힘을 이용해 최대한 욕심을 챙김. 머리 속으로 해보고 싶어하는 것은 다 해보는 나라.
영화: 무서운 면-머리 속으로 욕망하는 것을 다 표현하려고 하기에.
저질러 버리면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 인생임에도 앗수르는 일단 머리 속에 생각난 것은 다 해버림. -- 인간의 양심이나 형편이나 사정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든 인간성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에. 인간을 철저하게 물질적으로 보았기에.
이것을 보고 하나님 백성이 깨닫는 것: 내 안에도 그런 성향이 있다. 다만 기회가 없었을 뿐. 생각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이들을 보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이며 악행인지를 알고 두려워함.
깨닫는 것: 사람은 그 근본성향이 치료되지 않는 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 약간의 행동 교정만으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음.
-악을 풀어놓으심으로 하나님 백성이 부르짖게 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는 하나님 백성. 머리 좋은 것 믿음. 죄를 조금씩 조금씩 용납해감.
그러다가 말이 통하지 않는 앗수르를 만남. 이런 세력을 만나면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으면서 기도하게 됨. 이 때는 자존심도 없음.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기도하고 중보부탁을 함.
이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으면서 기도하기를 원하심. 편해지면 기도하는 것을 잊음. 어려움 가운데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죄악을 다 토하여 내고 더 큰 은혜를 사모함.
14-As one reaches into a nest, so my hand reached for the wealth of the nations; as men gather abandoned eggs, so I gathered all the countries; not one flapped a wing, or opened its mouth to chirp.'"
새 둥지에서 알을 꺼내려고 할 때-부리로 쪼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냄.
그러나 어미 새가 없는 경우-꺼내기가 식은 죽 먹기.
앗수르에게 힘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어미없는 둥지에서 알을 꺼내는 것 같음. 길에 떨어진 돈을 줍는 것과 같음. 그 어디에도 앗수르를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없음.
악을 부르지 않으려면 욕심을 포기해야.
하나님이 주신 일부를 나눔으로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또 악이 기승을 부릴 때 기억할 것: 악한 자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으며 허락하신 한계를 넘어서 절대로 나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욱 담대해야.
Point: 앗수르의 교만
전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인격적으로 욕을 먹으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됨.
군대에서 졸병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경우.
그리스도인의 경우: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 폭력적인 사람.
본회퍼의 고민: 미친개같은 히틀러의 난동.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 앗수르가 바로 이 미친개같은 역할.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였고 다른 나라 파괴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김.
이스라엘이 이런 앗수르의 손에 걸려듬.
앗수르는 수리아를 멸망시킴.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를 멸망시킬 순간. 그리고 이들이 궁극적으로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목표로 함.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여기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는지를 물을 줄 알아야. 그렇지 않으면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옴.
5-"Woe to the Assyrian, the rod of my anger, in whose hand is the club of my wrath!
하나님과 청부 폭력업자:
청부업자-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사용하는 방법.
앗수르: 폭력을 업으로 삼음. 그러나 더 놀라운 점은 이 앗수르를 고용해서 끌어들인 장본인이 여호와 하나님.
법률상: 청부업자와 사주한 사람이 똑같이 처벌받게 됨. 상대가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악을 동원하면 이것은 더 악한 일.
그런데 놀랍게도 앗수르를 끌어들인 장본인이 바로 하나님
앗수르는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요 앗수르가 휘두르는 몽둥이는 하나님 자신의 분노.
‘성전(holy war)': 여호수아서-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사용하셔서 음란과 폭력으로 가나안 땅을 가득 채운 악한 왕들을 심판하심. 다윗의 전쟁-거룩한 전쟁의 성격. 선으로 악을 이기는 심판의 경우
그러나 악으로 악을 심판하거나 or 악으로 선을 심판하시는 것-이해가 되지 않음. 그럼에도 악한 세력인 앗수르나 바벨론을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끌이들이셨다고 성경이 증언함.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끌어들이셨다: 비유적인 표현. 하나님은 악을 사용하시는 분이 아님. 악을 억제하시는 분
정부를 허용하시는 이유: 이런 악을 억제하기 위해서.
그러나 주신 평화를 악용하고 점 점 더 교만해지면 악을 누르시던 그 손을 잠시 놓아 버리심. 그러면 앗수르가 나타나고 히틀러같은 이가 등장함.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끌어들이셨다’는 형식으로 표현함.
그러나 결국 폭력이나 살인을 끌어들인 장본인은 이스라엘 사람들.
주기도: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언제 덮칠지 모르는 우리 주변의 악의 세력을 두고 하시는 말씀. 세상은 안전하지 못해 언제 예기치 못한 불행이 덮칠지 모름.
하나님 백성들에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악한 일이 터진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모든 일의 주체는 하나님: 세상의 어떤 악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일어나지 않음. 일시적으로 악을 놓으시면 닥치는대로 악행을 저지르게 됨. 그러나 무한대가 아님. 정해진 시간이 있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아직은 어둠의 때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적극적으로 복음활동. 잡히시던 밤에는 지금은 어둠의 때라고 하심.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사탄에게 넘겨주시는 때라는 것을 알고 계심. 사람들의 양심은 마비되며 악이 마음껏 권리를 행사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심. 제자들에게 깨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부탁하심.
6-I send him against a godless nation, I dispatch him against a people who anger me, to seize loot and snatch plunder, and to trample them down like mud in the streets.
7-But this is not what he intends, this is not what he has in mind; his purpose is to destroy, to put an end to many nations.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세우신 것: 죄와 우상 숭배의 무의미함과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런데 한번 풀어놓으니까 다른 나라들을 완전히 진멸하는 지경까지 감.
앗수르가 노리는 것: 예루살렘이고 하나님의 백성들
8-'Are not my commanders all kings?' he says.
9-'Has not Calno fared like Carchemish? Is not Hamath like Arpad, and Samaria like Damascus?
갈그미스나 아르밧이나 다메섹: 앗수르가 이미 정복한 나라들.
이번에는 갈로, 하맛, 사마리아를 목표로 삼음. 이 나라들도 예전에 자기들이 정복한 나라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절대적인 나라가 어떻게 망하나?
하나님께서 한순간 개입하심으로 한순간에 무너짐.
하나님을 두려워 할 이유-악한 자들의 말로는 어느 한순간의 작은 일로 갑자기 몰락--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인정.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사용하신 것-악을 징계하시기 위해서.
그런데 앗수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 다른 나라를 파멸시켜 버림.
10-As my hand seized the kingdoms of the idols, kingdoms whose images excelled those of Jerusalem and Samaria--
11-shall I not deal with Jerusalem and her images as I dealt with Samaria and her idols?'"
하나님께서 악을 허용하시는 이유:
하나님께서 고용하신 것이 아님. 단지 악한 그들을 붙들고 계시다가 잠시 풀어 놓으신 것.
풀어놓으시는 이유
-은혜를 모르고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평안해지면 교만해지는 경우가 많은 인생.
하나님은 평안을 통하여 사람의 무게를 달아보심. 이것을 아는 사람은 평안할 때 하나님을 더 두려워함. 자신이 잘나서 평안한 게 아님을 알기에. 그러나 어리석은 이는 평안과 형통이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 큰 악을 만나 비참하게 무너지게 됨.
앗수르가 멸망시킨 나라-모두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 평안을 지켜주신 분에게 돌아갈 영광을 우상에게 돌림.
우상을 찾는 이유: 감사는 한데 자기들의 욕심은 그대로 채우고 싶어서 감사의 시늉만 우상에게 내고 자기 욕심으로 달려감.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일종의 보험.
하나님께서 악을 사용하여 악을 심판하시는 것의 특징: 악은 놀랍게도 악을 정확하게 골라냄. 악은 악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알기에 악의 위선을 발가벗겨버림.
악한 마귀가 천국에 부적합한 자를 다 골라내는 역할을 오히려 한다!
v.11 '내가 사마리아와 .... 행치 못하겠느냐 하도다‘
하나님 백성들을 앗수르가 시기함. 그래서 철저하게 짓밟고 멸망시킴으로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함. 이것이 악한 자들의 실수.
악한 자들은 끝을 보아야 직성이 풀림. 하나님 백성을 비참하게 함으로 마음속에 있는 양심의 마지막 등불을 끄려고 함.
이러면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하나? 하나님께 부르짖음. 내가 잘못해서 망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굴욕당하는 것은 참지 못함.
하나님의 백성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보좌에서 일어남.
12-When the Lord has finished all his work against Mount Zion and Jerusalem, he will say, "I will punish the king of Assyria for the willful pride of his heart and the haughty look in his eyes.
하나님의 계획: 앗수르를 일으키시는 것-궁극적으로 어떤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
그 분명한 뜻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시겠다: 시온산과 예루살렘을 겸손하게 하는 것.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게 하는 것. 그렇게 하신 후 앗수르를 멸망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심.
먼저 하나님 백성들을 겸손하게 하심.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우리에게 구원받을 만한 선한 것이 없음. 그러나 구원의 축복을 누리다보면 그것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처럼 착각. 그래서 앗수르같은 불량배를 만나면 구원의 내용을 다시 깨닫게 됨. 나의 모습이 정확해짐. 자랑할 것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만이 살 길임을 깨닫게 됨. 악의 세력 앞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신을 보고 겸손해짐.
13-For he says: "'By the strength of my hand I have done this, and by my wisdom, because I have understanding. I removed the boundaries of nations, I plundered their treasures; like a mighty one I subdued their kings.
-하나님께서 악을 풀어놓으심으로 의인들로 하여금 자기 안에 있는 악한 기질을 보고 깊이 탄식하게 하심.
악한 자들-주어진 자유를 남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자기 이익을 챙김.
앗수르는 자기들의 힘을 이용해 최대한 욕심을 챙김. 머리 속으로 해보고 싶어하는 것은 다 해보는 나라.
영화: 무서운 면-머리 속으로 욕망하는 것을 다 표현하려고 하기에.
저질러 버리면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 인생임에도 앗수르는 일단 머리 속에 생각난 것은 다 해버림. -- 인간의 양심이나 형편이나 사정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든 인간성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에. 인간을 철저하게 물질적으로 보았기에.
이것을 보고 하나님 백성이 깨닫는 것: 내 안에도 그런 성향이 있다. 다만 기회가 없었을 뿐. 생각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이들을 보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이며 악행인지를 알고 두려워함.
깨닫는 것: 사람은 그 근본성향이 치료되지 않는 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 약간의 행동 교정만으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음.
-악을 풀어놓으심으로 하나님 백성이 부르짖게 하기 위해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는 하나님 백성. 머리 좋은 것 믿음. 죄를 조금씩 조금씩 용납해감.
그러다가 말이 통하지 않는 앗수르를 만남. 이런 세력을 만나면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으면서 기도하게 됨. 이 때는 자존심도 없음.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기도하고 중보부탁을 함.
이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으면서 기도하기를 원하심. 편해지면 기도하는 것을 잊음. 어려움 가운데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죄악을 다 토하여 내고 더 큰 은혜를 사모함.
14-As one reaches into a nest, so my hand reached for the wealth of the nations; as men gather abandoned eggs, so I gathered all the countries; not one flapped a wing, or opened its mouth to chirp.'"
새 둥지에서 알을 꺼내려고 할 때-부리로 쪼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냄.
그러나 어미 새가 없는 경우-꺼내기가 식은 죽 먹기.
앗수르에게 힘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어미없는 둥지에서 알을 꺼내는 것 같음. 길에 떨어진 돈을 줍는 것과 같음. 그 어디에도 앗수르를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이 없음.
악을 부르지 않으려면 욕심을 포기해야.
하나님이 주신 일부를 나눔으로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또 악이 기승을 부릴 때 기억할 것: 악한 자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으며 허락하신 한계를 넘어서 절대로 나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욱 담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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