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 and Application
오늘의 본문에서 두 가지 표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쫓아내지 못했다"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은 분배받은 땅에서 가나안 거민들을 제대로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본문 가운데 '쫓아내지 못했다'는 표현이 6번이나 나옵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가나안 부족들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을 긷고 나무를 패는 등의 허드렛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허드렛일을 정복한 땅의 가나안 거민들에게 시켰습니다. 그들에게 일을 시키다보니 힘들여 그들과 전쟁하여 쫓아낼 필요도 없고 귀찮은 일도 하지 않게 되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이었습니다.
그러나 일거양득이든, 일거십득이든 그들의 행실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허드렛일을 귀찮아 할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께서 종처럼 부릴 수 있는 가나안 거민들을 모두 쫓아내라고 하셨을까?",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도록 하셨을까?"를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결과는 조금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의 명령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행실은 28절과 35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을 쫓아낼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통한 유익을 누린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강성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일을 범했습니다.
두 번째는 27절과 35절에 반복되고 있는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결심하였다"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의 내용처럼 허술함을 보이자 가나안 사람들의 마음상태가 "휴우, 겨우 목숨은 건졌구나."의 수준이 아니라, "별 것 아니군. 좀 귀찮은 일은 해야 되지만 여기를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아야 되겠군."이라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미입니다. 처음에는 힘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량을 베푸는 입장에서 타협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일찍 알에서 깨어난 두견새가 원래 어미새가 품어야 할 다른 알들을 다 밀어 떨어뜨리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곳곳에 남겨둔 가나안 족속에 의하여 350년 이상을 씨름하며 보내야 했으며, 단 지파는 오히려 분배된 땅에서 살지 못하고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 산지에서 거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유익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적은 없습니까? 오히려 당신의 좀더 나은 지위를 이용하여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착각한 적은 없습니까?
당신이 베푼 아량이 오히려 당신을 좀먹어 들어와서 당신을 곤경에 빠뜨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경우는 없습니까?
당신은 악에 대하여 당신의 마음에 거하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여지를 열어두지는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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