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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화훼영모대전' 전시작 감상하기: 겸재 정선의 고양이 그림이 뜻하는 바는?

작성자과천거사|작성시간10.10.23|조회수331 목록 댓글 0

간송미술관에선 봄, 가을 한차례씩 주제를 정하여 간송의 수장품 전시를 하는데 올해는 10월17일부터 31일까지 '화훼영모대전'이란 주제로 꽃과 나무와 물고기, 고양이, 까치 등 동식물이 등장하는 시대별 그림을 전시한다. 서양화나 동양화를 보면 어떤 일정한 주제를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화가가 비슷한 형태의 그림으로 그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양화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비너스 신을 주제로 한 '비너스의 탄생'이라든지 성경에 나오는 천사가 성모 마리아의 임신을 알리는 광경을 주제로 한 '수태고지'를 들 수 있는데 이런 주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화가가 비슷한 형태의 그림으로 그렸다. 동양화에서는 축하의 뜻을 함축하는 글귀나 장원급제나 기쁜 소식 또는 노년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글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양식이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왔다. 이번 화훼영모대전에 전시된 그림 중에도 이와같은 동양화의 오래된 전통에 따라 그려진 그림, 즉 그림에 담겨진 뜻을 읽을 줄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되는 그림이 전시되었다. 그 중 신문에 소개된 몇 점의 그림에 대해 그림 읽는 법을 소개할까 한다. 이 그림 읽는법은 조용진 교수가 쓴 <동양화 읽는법 (1989년)>에 최초로 소개되었다.

 

아래는 서예 글자체로 동국진체를 창안한 18세기 명필 원교 이광사의 잉어 그림이다. 전시장 1층에 걸린 이 그림엔 寫頭眼而未竟, 後二十年...'이란 글이 적혀 있는데 해석하면 '원교가 머리와 눈을 그리고 완성하지 못하였는데 20년 후 아들 영익이 그려 완성하였다'라는 뜻이다.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

 

이 그림을 보면, 커다란 잉어 위쪽에 작은 물고기 3마리와 물위에 뜬 듯한 풀과 물 속의 수초(?)가 등장한다. 작은 물고기는 피라미이며, 물위에 뜬 풀은 부평초 (草)이고, 물 밑의 수초처럼 보이는 식물은 수초가 아니라 여뀌(蓼)이다. 피라미는 '소싯적, 어렸을 때' 를 나타내며, 오늘날에는 개구리밥으로 더 잘 알려진 부평초는 물 위에 떠 있는 풀로써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를 일컬어 부평초같은 신세라고 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타향살이'를 의미한다. 여뀌의 한자어 蓼(료)는 중국발음으로 학업을 마치다의 了(료)발음이 똑같다. 따라서 여뀌는 '학업을 마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큰 잉어는 관리로 등용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윗 그림은 '타향살이의 고생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힘써서 공부를 마치고 등용되다 (평향구학 요업등용 ((萍鄕劬學 了業登龍)이란 좋은 뜻의 4자 성어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래 그림은 진경산수의 거장 겸재께서 그린 '가을날의 한가로운 고양이 (추일한묘 (秋日閑猫))' 란 제목의 그림이다.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1759) [추일한묘(秋日閑猫)]

 

<귀거래사>의 도연명이 국화를 사랑한 고사(古事 )때문에 국화는 은일자 (隱逸者), 또 중국어로 국화의 국(菊)이 거(居)와 발음이 비슷해서 은거를 뜻하며 고양이 묘(猫)는 70세 노인 모(耄)와 발음이 비슷해서 고양이는 70세 노인을 의미한다. 따라서 두 의미를 합하여 읽으면 "유유자작 은둔해 살면서 고희를 맞다 (은거향모 (隱居享耄))" 라는 뜻이 된다.

 

 

아래 그림은 단원이 그린 고양이와 나비 그림,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이다. 고양이는 겸재보다 단원께서 훨씬 잘 그리셨다. ^^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

 

왜 고양이가 하필이면 나비를 쳐다보는 그림을 그렸을까? 앞에서 중국어로 고양이 묘(猫)는 노인 모((耄)와 발음이 비슷해서 고양이는 70세 노인을 뜻한다고 얘기하였다. 나비 접()은 역시 중국어로 80세 노인 질(耋)과 발음이 비슷하여 나비는 80세 노인을 의미한다. 따라서 윗 그림은 장수(長壽)를 축하(祝賀)한다는 뜻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며, 이런 그림을 모질도(耄耋圖)라 일컫는다.

 

 

다음 그림은 창강(滄江) 조속(趙涑)께서 그린 매화가지 중간에 까치가 앉아 있는 그림, 고매서작 (古梅瑞鵲)이다.

                                         

                                            창강(滄江) 조속(趙涑;1595~1668) [고매서작 古梅瑞鵲]

 

어느 신문에 이 그림에 대한 느낌을 적기를 '대숲 위 매화가지에 앉은 까치를 담은 이 그림은 힘껏 뻗어오른 담묵의 매화 가지와 고독한 군자 같은 짙은 묵필의 까치가 어우러진 걸작이다. 인조반정에 참가하며 당쟁의 상처를 절감했던 조속의 아린 인생 역정이 절절이 담겨 있다.'고 하였다. 선비가 좋아하는 하얀꽃이 핀 매화가지에 대조적인 색깔인 까만색의 한마리 까치가 머리를 살짝 쳐들고 외롭게 앉아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고독이 짙게 베어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 그림엔 전혀 다른 뜻이 담겨 있다. 매화는 맨 먼저 꽃이 피어 봄소식을 전하므로 춘선(春先)이라고 읽히기도 한다. (그림의 형식에 따라 매화나무는 미수 (米壽; 88세)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춘선(春先))이라고 읽는다.) 까치는 기쁨(喜)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그림은 '봄을 맞아 맨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하다. (희보춘선; 喜報春先)'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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