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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은 정말 1만2천봉일까?

작성자과천거사|작성시간11.07.10|조회수133 목록 댓글 2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따라~ 고운옷 갈아입는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어렸을 때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죠? 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으로 요즘엔 초등학교 6학년때 배운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이 노래 가사에서 배워 그런지 몰라도 금강산하면 일만이천봉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금강산은 최고봉인 비로봉(1638m), 월출봉(1580m), 차일봉(1529m)등 1500m 이상의 높은 봉우리만도 10여봉이 되고 옥녀봉(1424m), 상등봉(1227m)등 1000m 이상의 봉우리만도 100여봉에 이른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만물상의 기암괴석을 산봉우리로 치면 실제 일만이천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봉우리가 많아도 그냥 많다는 의미의 일만봉이나 일천봉 또는 삼천봉이라 하지 않고 굳이 일만이천봉이라 부른데는 무슨 까닭이 있지 않을까요? 제가 최근에 읽은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 제5권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에 그 연유가 나와 있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제5권은 예초에 나의 북한유산답사기 제2권으로 나온 것인데 최근에 판권을 창비사에서 인수하면서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총서 형태로 해서 일련번호를 다시 부여해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 5권이 됐더군요. 저는 이책이 나온지도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 출간된 제6권을 인터넷에서 구입할 때 알게 되어 함께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다음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유래에 대해 소개된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제5권의 내용을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제5권, p285)

 

 

배재령과 고려 태조 왕건

 

때는 칠월하고도 보름도 다 되어가는 날. 한여름 장마철에 잠시 얼굴을 드러낸 푸른 하늘은 만천골 표훈동의 물빛만큼 푸른데, 꽃이라고는 노란 원추리가 축대 밑에서 부끄럼 타고 있을 뿐이니 천지 빛깔이 푸르고 또 푸를 뿐이다.

표훈사 절마당 한 가운데 서서 천일대에서 청학봉으로, 오선봉에서 돈도봉으로 푸른 산세에 휘감겨 맴을 돌며 눈 가는 대로 나를 맡겨 버렸다. 나는 그렇게 금강에 취하고 금강에 홀려 내가 지금 금강에 있음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만큼 지나서일까, 나는 반야보전 돌계단에 길게 걸터앉았다. 모든 절집에서 가장 마음 편안한 전망을 제공하는 곳은 부처님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는 자리다. 그렇게 멀리 앞을 내다보자니 남쪽으로 길게 늘인 곡선을 그리는 능선에 우묵한 고갯마루가 보인다.

 


나는 내금강 안내원 김광옥 (24) 동무에게 물었다.

"저기 움푹한 곳이 어딥니까?"

"저기가 바로 배재령 (拜再嶺) 입니다. "

"아니, 저기가 배재령이라면 방광대 (放光臺) 는 어딘가요?"

"방광대는 요 오른쪽 천일대 위에 있죠. "

"그러면 저 위가 정양사 (正陽寺) 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교수선생은 많이 아십니다."

그렇구나! 이제 알겠다! 옛날부터 내금강에 들어오다 보면 단발령 고개에서 머리 깎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 또 저 배재령에 다다르면 저절로 큰 절을 두어번 하게 되어 배재령이라고 했단다. 그런데 고려 태조가 임금이 되고서 금강산에 왔을 때 저 배재령에 당도하자 멀리 방광대에서 법기 (法起 : 담무갈이라고도 부름) 보살이 그의 권속 1만2천을 거느리고 나타나기에 황급히 엎드려 절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때 절한 곳을 배점 (拜岾, 배재령) 이라고 했고, 법기보살이 빛을 발한 곳을 방광대라 이름짓고는 거기에 정양사를 지었다. 그리고 방광대너머 보살 닮은 봉우리를 법기봉이라 이름짓고는 표훈사 반야보전엔 법기보살을 모셔놓되 동북쪽 법기봉을 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신증 동국여지승람' 에도 나오지만 1307년에 노영 (魯英) 이 제작한 '법기보살 현현도 (顯現圖)' 라는 칠병 (漆屛)에 그림으로 생생히 그려져 있다. 법기보살로 말할 것 같으면 '화엄경' 에서 "바다 가운데 금강산이라는 곳이 있어 법기보살이 1만2천 무리를 거느리고 상주하고 있다" 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때부터 풍악산.개골산이라 불리던 이 산을 금강산이라고 고쳐 불렀고, 그 봉우리를 1만2천봉이라 말하게 된 것이다.

노영의 법기보살현현도: 옻칠나무에 금니, 22.5x13 cm 1307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화도 선원사 반두(飯頭)였던 노영이 만든 칠병으로 법기보살이 권속들을 데리고 금강산에 나타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왼쪽 중간에 엎드려 절하는 태조(왕건)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 아래엔 노영 자신이 그려져 있다.


표훈사는 이처럼 금강산 내력의 현장이며, 금강산 사상의 핵심처이고, 금강산의 심장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금강산이 살아있는 한 표훈사는 건재할 수밖에 없는 지세와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나는 반야보전 돌계단에서 일어나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옛날 법당안 법기보살상이 향했을 그 쪽을 바라보며 만폭동 골짜기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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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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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과천거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7.10 책의 사진을 이미지 스캐너로 스캔했더니 사진이 구리게 나왔습니다. --;;
  • 작성자베쏘 | 작성시간 11.07.11 일만 이천봉의 유래~~~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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