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려청자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 문양이나 꽃 문양에서 놀랍게도 기원전 고대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또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사용했던 전통문양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는 나의 그리스 여행기에서 처음으로 밝힌 바 있다.
우리 삼국시대 문화가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문명 교류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고, 이는 특히 왕실이나 불교의 유물.유적에서 종종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시대에 접어들면, 주변국가 너머 원거리 국가와 문명 교류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고려청자 문양에서 실크로드의 서쪽 끝에 있는 고대 그리스의 전통문양이 발견된 것은, 이것이 직접 교류의 산물인지, 간접 교류의 산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흥미롭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려청자의 기하학적 문양에서 그리스 전통문양 뿐만 아니라 로마 전통문양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놀라운 발견 (나만 그렇게 느끼는가? ^^;;) 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는 청자 모자합인데, 뚜껑에 십자 모양의 꽃잎 문양이 띠처럼 반복 배치된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차차 설명하겠지만, 이것은 5개의 원 (circle)을 교차시켜 만든 문양의 일부분을 반복 배치한 것이다.)
청자 모자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런데 이 문양과 똑같은 문양을 고려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5개의 원 (circle)이 교차된 문양이다. 나는 이 기하학적 문양을 편의상 ' 오원 교차 문양 (五圓交叉紋樣)'이라 부르기로 한다.
현재 이 향로 뚜껑의 문양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론 '칠보 무늬'로 부르고 있으며, 어느 전문가는 용이 갖고 노는 동그란 여의주에 문양을 새긴 '무량 보주문'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칠보 무늬가 됐든 무량 보주문이 됐던 이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는 곧 밝혀질 것이다. ^^;;
고려청자 투각 향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내가 '오원 교차 문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터키의 유명 관광지인 카파도키아 지역의 으흘랄라 계곡 (Ihlara valley)의 암벽을 뚫어 만든 비쟌틴 시대의 기독교 석굴사원의 천정 벽화 문양을 보고 난 후부터였다.
으흘랄라 계곡 (터키, 카파도키아).
이계곡의 암벽에 수많은 석굴이 있는데, 유명한 기독교 성화(프레스코화)가 있는 몇몇 석굴사원이 있다. 벽화가 그려진 시기는 비쟌틴 제국이 이 지역을 장악했던 AD 7세기-11세기 또는 9세기-11세기로 추정되고 있다.
(왼쪽) Agacalti Kilise (Church under the tree), (오른쪽) Kokar Kilise 기독교 석굴사원
석굴사원의 벽화에서 앞서 언급한 고려청자의 '오원 교차문양'을 볼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의 오원 교차문양은 고려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의 일명 칠보무늬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에 확대사진 참조)
Kokar Kilise 기독교 석굴사원의 아치형 천정에 그려진 '오원 교차 문양'
이 비쟌틴 화가에겐 칠보나 무량 보주란 단어는 없었을테고, 단어가 없으니 이에 대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단어와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문양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비잔틴 문양을 탄생시킨 것은 분명 다른 조형원리였을 것이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앞서 제작된 비쟌틴 문양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일치하는 청자 투각 향로의 뚜껑에 있는 투각 문양을 일컬어 '칠보 문양'이니 '무량 보주문'이니 하는 얘기는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주장이다.
나는 이 문양의 기원을 보다 확실하게 밝혀내기 위해 인터넷 구글 검색을 실시하였고, 검색한지 1시간도 채 안되어 정말 놀라운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아래 내용은 검색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자료 출처: Centuries of Circles)
' 아마도, (으흘랄라 계곡에서) 서로 매우 가까이 있는 두 교회가 기하학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리 놀라지 않을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양의 매력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이곳에서 서쪽으로 750 km 떨어진 에게해에 접한 고대 도시 에페소스로 안내하겠다.'
셀수스 도서관 (터키, 에페소스)
'에페소스는 순례의 중심지였다. 에페소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헌정된 신전이 도시 가까이에 있었는데, 이 여신을 경배하기 위해 고대 로마의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왔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힐만큼 웅장한 건물이었다. 불행하게도, 현재 아르테미스 신전은 다 무너져 없어지고 습지에 달랑 기둥 하나만이 서 있을 뿐이고 신전터 주변에는 관광객에 달라붙는 몇몇 장사치들만이 있을 뿐이다.'
'오늘날 에페소스 유적지에서는 엄청난 복원작업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엄청나게 꼼꼼한 복원작업 끝에 화려한 실내장식을 볼 수 있는 로마시대 귀족들이 살던 집터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옮긴이: 이를 테라스 하우스 (Terrace house)라고 부르며 에페소스 유적지 관람요금 외에 별도 요금을 내야 볼 수 있다. 에페소스 유적지 관람권을 구입할 때 통합권 (에페소스 + 테라스 하우스)을 구입하면 약간 할인된 요금으로 관람할 수 있다.) 이곳에서 앞서 (기독교 석굴사원의 벽화에서) 얘기했던 5개의 원이 교차된 문양을 두 거실 바닥의 모자이크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테라스 하우스의 건축시기는 기원전 1 세기 ~ 기원후 7 세기까지로 보고 있으며, 이 도시의 전성기는 대지진이 닥치기 전인 기원후 1-2세기로 로마시대 전성기와 일치한다.
테라스 하우스 거실바닥의 모자이크 (터키, 에페소스): (왼쪽) 디오뉘소스, (오른쪽) 메두사
테라스 하우스 거실바닥의 모자이크 (터키, 에페소스): 포세이돈과 오원 교차 문양
테라스 하우스 거실바닥의 모자이크 (터키, 에페소스): 메두사와 오원 교차 문양
오원 교차 문양으로 장식한 메두사 모자이크
고려청자 모자합과 투각 향로에서 볼 수 있었던 원 5개가 교차된 문양의 기원(Origin)은 다름 아닌 '로마 문양' 이었다. 이것은 수학과 기하학이 고도로 발달된 로마 문명이 고안해 낸 독특한 전통문양이다. 여기엔 '칠보문'이니 '무량 보주문'이니 하는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냥 로마 문명이 창안한 기하학적 문양인 것이다. (완전히 로마인의 독창적인 문양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이와 유사한 조형원리를 갖는 고대 이집트 문양인 'Flower of Life'라 불리는 기하학적 문양이 이집트 아비도스에 있는 오시리스 사원 (the Temple of Osiris in Abydos, Egypt)의 돌기둥에서 발견되었는데, 최소 6,000년 전 문양으로 보고 있다.)
(1), (2): 로마 문명이 창안한 '로마 문양: 5원 교차 문양' (터키, 에페소스)
(3), (4): '로마 문양'으로 장식한 고려청자 모자합과 투각 향로 (국립중앙박물관)
이제 앞으로 고려청자 투각 향로 뚜껑의 문양을 '칠보 무늬'니 '무량 보주문'이니 하는 엉뚱한 설명 대신 ' 고대 로마 문양이 3차원 공 형태로 독창적이면서 아름답게 구현된 것으로 동.서 문명교류의 흔적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 이라는 제대로 된 설명이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