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나라 전통문양에 무쟈게 관심이 많습니다. ^^ 지난 일요일(11/20) 경희궁 답사 때 관람했던 숭정전입니다. 왕궁의 정전 앞 계단에는 이렇게 한가운데 봉황문양이 있고 네 귀퉁이랑 앞면에 꽃문양이 있습니다. 숭정전 뒤 건물, 임금의 집무실인 자정전으로 들어가는 자정문 앞 돌계단에도 봉황문양 주위에 꽃문양이 있습니다. 이 꽃은 무슨 꽃을 형상화한 것일까요? 조용진 교수의 명저, "동양화 읽는 법"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있어 소개 드립니다. 전각 앞 계단이나 다리 난간에 새겨진 감꼭지 무늬 (枾蒂紋)도 바탕이 튼튼하다는 뜻의 시반(枾盤)에서 온 것이다. <시경>에 "나무 중에서 가장 뿌리가 견고한 것은 감나무다 (木中根固者 最爲枾)"라는 구절이 있다. 임금은 매미의 오덕 (五德: 文, 淸, 廉, 儉, 信)을 항상 염두에 두고 (즉, 매미날개를 형상화한 익선관을 쓰고), 나라가 튼튼히 보전되기를 바라면서 (즉, 감꼭지를 바라보면서) 이 계단을 올랐을 것이다. 그렇다. 이 계단에 새겨진 봉황 문양 주위를 장식한 꽃 문양은 다름아닌 나무 가운데 뿌리가 가장 튼튼하다는 감나무를 상징하는 감꼭지 문양일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마침 집에 커다란 감이 몇개 있어서 실제 감꼭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봤다. 놀랍게도 감꼭지는 잎사귀가 4장이다. 조선왕궁의 계단에 새겨진 꽃문양이 감꼭지를 형상화 한 것이라면 꽃받침이 4장이어야 하는데... 저 위의 사진을 보면 꽃받침이 5장이다. 무엇보다 생김새가 다르다. 이 감꼭지는 원래 꽃받침이다. 그래서 감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봤다. 감꽃은 꽃잎도 4장, 꽃받침도 4장이다. 나는 왕궁의 전각 앞 계단에 있는 봉황 문양 주위를 둘러 싼 꽃문양이 감꼭지라는 조용진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이다.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일세"를 상징하는 문양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경희궁 전각 앞 계단의 화강암에 새겨놓은 감꼭지 문양은 꽃받침이 4장이 아닌 5장이라서 감꼭지 문양이라는 주장에 확신이 서질 않는다. 조선시대 장인이 감꼭지 생김새를 착각한 것일까? 그래서 경복궁 근정전 앞 화강암 계단에 새겨놓은 봉황 주위를 장식한 꽃 문양을 살펴봤다. 아래 사진처럼 두 종류의 꽃 문양이 관찰되었다. "A" 문양은 앞서 보았던 경희궁 숭정전 문양과 비슷한데, 여기선 꽃잎 (또는 꽃받침) 개수가 6장이다. "B" 문양은 바로 감꼭지 문양이다. 조선시대에 한양도성을 건설할 때, 도성 출입문의 명칭을 유교의 5개 덕목인 인, 의, 예, 지, 신 (仁, 義, 禮, 智, 信)에서 따왔고, 임금이나 신하가 머리에 쓴 모자 (익선관)에 매미날개를 단 것은 매미의 오덕(文, 淸, 廉, 儉, 信)을 본받자는 뜻이었듯이, 옛 선인들의 조형물에는 반드시 어떤 뜻이 담겨져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왕실 전각의 계단에 새겨놓은 꽃 문양은 바로 <시경>에 "나무 중에서 가장 뿌리가 견고한 것은 감나무다 (木中根固者 最爲枾)"라는 구절을 형상화했다고 생각되는데, 위 사진에서 "B" 문양은 확실히 감꼭지 문양으로 판단되지만, "A" 문양은 아무래도 감꼭지 문양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문양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