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연휴 마지막날(2/17일) 오대산 월정사랑 동해안 바다열차 투어를 댕겨왔습니다. 겨울철 시퍼런 동해바다를 보면서 기를 받아오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월정사에 들러 8각9층석탑과 석조인물좌상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고픈 마음이 동했기에 투어를 신청했습니다.
때마침 월정사 하늘 위에는 비행운처럼 보이는 동그란 구름이 바람결에 흘러왔습니다. 비행운일 것이라는 짐작을 했지만 신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치 필자가 이곳을 방문한 목적을 하늘이 알고서 이렇게 환상적인 구름을 띄워 반겨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습니다.
[사진 1] 고려초에 세워진 월정사 8각9층 석탑과 석조인물좌상(복제품). 하늘에 동심원 모양의 신비한 구름이 있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이 석조인물좌상은 공양보살이 아니라 불법의 수호신 범천(사함파티 브라흐마)입니다. 원시불교(소승불교) 경전인 팔리어 삼장(경장.율장.논장)에서 경장(5부) 가운데 세번째 묶음으로 상응부(相應部.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 Nikāya)가 있는데 상응부의 마하박가(Mahā-vagga)편에 범천이 막 깨달음을 얻은 붓다에게 그 깨달음을 혼자만 간직하지 말고 무지한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설법을 간청하는 장면, 즉 불교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범천권청.梵天勸請)이 나옵니다. 월정사 8각9층석탑과 석조인물좌상은 바로 마하박가에 나오는 이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라 판단됩니다. 인도불교가 중국으로 건너가 인도불경이 한자로 번역되었는데, 한역 대장경의 증일아함경에도 이 범천권청 이야기가 살려있다고 합니다.
[사진 2] 월정사 8각9층 석탑과 석조인물좌상. 월정사 상공의 동심원 구름이 신비롭다.
이 석조인물좌상이 어째서 범천인지는 마하박가의 해당 장면을 묘사한 이야기(범천의 설법 간청, 연못의 연꽃 비유와 붓다의 설법 결심)를 살펴보면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아래에 불교신문(2006. 4. 15일자)에 소개된 범천권청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사진 3] 월정사 8각9층 석탑과 석조인물좌상. 나는 누구인가?
범천의 설법 간청
“不死의 문을 열겠으니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타풋사와 발리카의 공양을 받은 날부터 7일 뒤 부처님은 삼매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라자야타나 나무를 떠나 아자팔라 니그로다 나무로 가 머물렀다. 그곳에서 홀로 선정에 든 부처님은 생각했다. “증득한 이 진리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구나.” 마침내 타인을 위해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마하박가〉에 따르면 홀로 선정에 든 부처님 마음에는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도달한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숭고하다. 단순한 사색에서 벗어나 미묘하고 슬기로운 자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착하기 좋아하여, 아예 집착을 즐긴다. 그런 사람들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의 도리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또한 모든 행(行)이 고요해진 경지, 윤회의 모든 근원이 사라진 경지, 갈애(渴愛)가 다한 경지, 탐착(貪着)을 떠난 경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경지 그리고 열반의 도리를 안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비록 법을 설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만 피곤할 뿐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게송을 떠올렸다. ‘나는 어렵게 도달하였다. 그러나 지금 결코 드러낼 수 없다. 이 법을 원만히 깨달을 수 없다. 흐름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 미묘하고 깊고 보기 어렵고 섬세하니, 탐착에 물든 자들이 어떻게 이 법을 보겠는가? 어둠의 뿌리로 뒤덮인 자들이.’ 이같이 깊이 사색한 부처님은 법을 설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주저하는 부처님을 본 범천(梵天) 사함파티는 생각했다.
‘아! 세상은 멸망하는구나. 아! 세상은 소멸하고 마는구나. 여래 응공 정등각자가 법을 설하지 않으신다면.’
그리하여 사함파티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굽히는 것처럼 재빠르게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진 뒤 부처님 앞에 나타났다. 한쪽 어깨에 상의를 걸치고 (-> 즉,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은 다음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며 간청했다. “부처님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선서(善逝)께서는 법을 설하소서. 삶에 먼지가 적은 중생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법을 듣는다면 알 수 있을 것이나, 법을 설하지 않으신다면 그들조차 쇠퇴할 것입니다.”
[사진 4] 월정사 8각9층석탑과 석조인물좌상. 이 석상이 조형된지 거의 1천년 만에 드디어 나를 찾았다!
석조인물좌상의 자세를 살펴보면, <마하박가>에 표현된 자세 그대로 임을 알 수 있다. 즉 붓다에게 설법을 간청하기 위해 겸손의 자세로 한쪽 어깨에 상의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두손을 한데 모아 합장하는 자세이다. 초기 부파불교(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가 파생되어 AD 1세기 무렵 불상이 등장하기 전까지 석탑은 붓다를 상징했다. 석탑에는 붓다의 진신사리(또는 화장후 뼛가루)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었다. 위 사진을 보라! 불법의 수호신 범천이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석탑(붓다)를 향해 설법을 간청하는 간절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사함파티는 다시 게송으로 간청했다. “부처님 이전의 마가다국에는 어지러운 법이 설해져 있었으니 때 묻은 자들이 사유한 것이었네. 이제 부처님께서 오셨으니 불사(不死)의 문을 여시어 그 법을 듣고 때 없는 자들이 깨닫도록 하소서. 지극히 현명한 분이시여! 모든 것을 보는 분이시여! 슬픔이 제거된 분이시여! 선의 정상에 있는 바위에 오르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법으로 이뤄진 누각 위에 올라 태어남과 늙음에 정복당하고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소서. 빚 없는 대상(隊商)들의 지도자처럼 세상을 다니소서. 부처님이시여! 법을 설하소서. 아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사함파티의 청을 듣고 부처님이 말했다. “범천아! 나는 생각했다. ‘내가 도달한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 열반의 도리를 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비록 법을 설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만 피곤할 뿐이다.’ 범천아, 그대 나에게 이런 게송이 떠올랐다. ‘나는 어렵게 도달했다. … … 어떻게 이 법을 보겠는가? 어둠의 뿌리로 뒤덮인 자들이.’ 범천아, 이런 깊은 사색 끝에 나는 법을 설하지 않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사함파티가 다시 부처님에게 청했다. 부처님은 “내가 피곤할 뿐이다”며 거절했다. 사함파티는 낙담하지 않고 다시 한번 더 간청했다.
범천의 간청을 세 번이나 들은 부처님은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켜 부처님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참으로 여러 중생이 있음을 아셨다. 먼지가 적은 중생, 먼지가 많은 중생, 감관(진리에 대한 인지 능력)이 날카로운 중생, 감관이 무딘 중생, 자질이 좋은 중생, 자질이 나쁜 중생, 가르치기 쉬운 중생, 가르치기 어려운 중생을 보셨다. 아울러 저 세상에서의 두려움을 의식하며 지내는 중생이 있는가 하면 저 세상에서의 두려움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는 중생도 있음을 보았다. 비유하면 연못의 연꽃들과 같으니, 그곳에는 푸른 연꽃, 붉은 연꽃, 흰 연꽃이 있다. 그들은 모두 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물의 보호를 받는데, 어떤 연꽃은 물에 잠긴 채 자라고 어떤 연꽃은 물의 표면에 있고 어떤 연꽃은 물위로 솟아 나와 물에 젖지 않은 채 있다. 그와 같이 세상을 내려다보니 참으로 여러 중생이 있었다. 먼지가 적은 중생, 먼지가 많은 중생, 저 세상에서의 두려움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는 중생도 있음을 보았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사함파티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귀 있는 자들에게 불사의 문을 열겠으니 죽은 자에 대한 근거 없는 제사는 그만 두어라. 범천아, 나는 단지 피로할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에게 덕스럽고 숭고한 법을 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함파티는 부처님이 설법을 허락했음을 알고 공손히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다음 그곳에서 사라졌다.
[사진 5] 부처님은 사함파티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귀 있는 자들에게 불사의 문을 열겠으니 죽은 자에 대한 근거 없는 제사는 그만 두어라. 범천아, 나는 단지 피로할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에게 덕스럽고 숭고한 법을 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함파티는 부처님이 설법을 허락했음을 알고 공손히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다음 그곳에서 사라졌다. 월정사 하늘에 뜬 구름이 공(空)을 상징하는 듯 하다.
얼른 보기에 “부처님이 설법하기를 주저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싯다르타가 출가했을 때 그는 분명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가 설법을 주저했다. 아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하박가〉 〈쌍윳따니까야〉 〈니다나 가타〉 등의 불전에 전하는 것처럼 “내(부처님)가 도달한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숭고하다. 단순한 사색에서 벗어나 미묘하고 슬기로운 자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착하기 좋아하여, 아예 집착을 즐긴다. 그런 사람들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의 도리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법을 설한다 해도 사람들이 과연 그것을 이해 해줄까”가 부처님은 걱정됐다. 부처님이 깨달은 법은 매우 어려운데 사람들은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혀, 격정(激情)과 무명(無明)에 덮여 있다. 설법이 중요한 문제지만 부처님은 이런 이유로 쉽사리 그쪽으로 마음을 열지 못했다.
이런 부처님의 주저하는 마음을 설법하는 방향으로 돌린 데는 범천의 간청이 큰 역할을 했다. 범천(梵天)이란 만유의 근원이라는 범(梵), 즉 브라만을 신격화한 인도의 신. 그것이 불교에 들어와 불법(佛法) 수호의 신으로 자주 등장한다. 범천의 간청을 받아들인 부처님은 “불사의 문을 열겠으니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외쳤다.
어떻게 보면 부처님이 설법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불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싯다르타가 출가해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었다 해도, 만약 가르침을 펴지 않았다면 불교는 있을 수 없다. 때문에 보리수 밑에서 증득한 깨달음을 설법의 형식을 통해 객관화한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처님이 가르침을 펴지 않았다면 불교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범천권청(梵天勸請)이야말로 불교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라 생각된다.)
[사진 6] 월정사 8각9층 석탑 앞 석조인물좌상은 불법의 수호신, 범천이다. 마하박가의 '범천권청' 이야기와 너무나도 똑같은 차림새와 자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장한 두손에는 뭔가를 꼽은 듯한 구멍이 뚫려 있는데, 마하박가의 범청권청 이야기에 비춰보면, 구리로 만든 연꽃의 줄기를 꼽았을 가능성이 높다. 범천권청(梵天勸請)이야말로 불교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사진7] 월정사의 가람배치는 범천상-석탑(비로자나불)-적광전(비로자나불을 모신 금당)이 일직선 상에 놓이는 구조이다. 이 석조인물좌상은 '석조보살좌상'이 아니라 '석조범천권청설법상' 또는 '석조범천권청전법륜상'으로 불러야 한다.
필자는 붓다(깨달음의 화신인 비로자나불)를 의미하는 8각9층석탑과 범천상으로 이뤄진 이 한쌍의 조형물을 "불교의 디시스(Deesis: 간청, 애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한국미술사학계는 필자의 주장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한 후, 현재 "공양보살상"이라 부르는 석조보살좌상의 이름을 "석조범천권청설법상" 또는 "석조범천권청전법륜상"으로 바로 잡아주길 바라고 있습니다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요.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입니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왜 유독 강원도 일대 사찰에 범천과 비로자나불로 이루어진 한 쌍의 조형물이 유행했는지 그 사연이 무척 궁금합니다. 또한 필자는 고려 전기에 집중적으로 세워졌던 이형석탑의 한 종류로, 사자 네 마리와 함께 한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을 안치한 사사자석탑과 그 앞에 놓인 석등 형태의 석조인물좌상 (예: 충북 제천의 4사자빈신사지 4사자 구층석탑, 강원도 금강군 금장암터 4사자3층석탑 등등) 역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범천상의 또 다른 변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