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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감상

[스크랩] [[국외]]파란색 두건의 비밀

작성자민승준|작성시간08.01.25|조회수647 목록 댓글 2

維梅爾

Johannes Vermeer (1632-1675)

 

<베르메르>

그는 네델란드 바로크 미술 화가로 서민적인 실내화를 많이 그렸다.

이 소재는 당시유행보다는 베르메르의 독창적인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내밀하고 정적인 실내화라는 소재는 문학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주위에 배치한 여러 기물들을 통해 많은 상징을 보여준다.

 

1665 - 1667 추정
Oil on canvas
Mauritshuis, The Hague, Netherlands

 
 1632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태어난 요하네스 베르메르.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평가도 오랫동안 미루어져 오다가
19세기 중반에 와서야 겨우 진가를 인정 받았다.
 1675년 43세의 젊은 나이에 찾아온 죽음은
그의 후원자들이 몰락하고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전쟁으로 야기된
 미술 시장의 몰락으로 인한 스트레스 발작 또는 심장병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베르메르는 조심스럽고 침착하게 작품에 임하는 화가였기 때문에
일생동안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불과36점 정도이고
대부분의 작품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가옥의 실내에 있는
 단순한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베르메르의 작품 중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추앙받으며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타국에서 그의 작품전이 열리더라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만큼은
 절대 나라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네덜란드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얼마나
 소중한 국가적 보배로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증거다.
 그의 일생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소설에서처럼 그리 극적인 인생은 아니었다고 보여진다.

가톨릭가문의 여인과 결혼하였고 15남매 중 넷을 잃었다.

그가 일생을 마칠 때에는 아들 하나만 남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평균적으로 일년에 두 작품 정도를 제작해서 작품이 많지 않다.

 이는 그의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그림으로 벌 수 있는 돈이 적어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준 화랑을 운영하면서 가족을 부양했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제작 기법상의 대단히 세밀하고 느린 작업도 그 원인이 있다.

 그는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았음에도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1672년의 경제난으로 그는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고

1675년 그가 사망했을 때 그의 가족은 큰 어려움에 처했다고 전해진다.

 

얀 베르메르 반 델흐트 [Jan Vermeer van Delft. 1623-75]

--베르메르에 대한  E.H.곰브리치의 견해--

렘브란트의 맥을 잇는 거장'얀 베르메르'는 네델란드 바로크시기 화가이다.

베르메르는 조심스럽고 침착하게 작품을 제작하는 화가였다.

그는 일생동안 그다지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작품 중 의미심장하거나 거창한 주제를 묘사한것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작품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가옥의 실내에 있는 단순한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작품은 우유를 따르고 있는 여인과 같은 단순한 일을

 하고 있는 한 인물밖에 묘사하지 않고 있다.

 

 

그의 그림은 사실상 인간이 들어있는 정물화로 단순하고 가식이 없다

이런 그림이 불후의 명작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질감, 색채 및 형태를 치밀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베르메르의 기법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 밝고 정확한 화면속에는 힘들여 제작했던 흔적이 나타나 있지 않다.

형태를 흐릿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사진의 거친 대조를 교묘하고 부드럽게 수정하는 사진사 처럼,

베르메르는 윤곽선을 부드럽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굳건하고 단단한 물체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의 최고 걸작들을 그처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부드러움과 정확성의 불가사의하고 독특한 조화에 있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단순한 정경의 조용한

아름다움을 참신한 눈으로 보게 만들고,

그 화가가 창문을 통해서 넘쳐 흘러 들어오는 빛과

그 빛에 의해 천의 색채들이 돋보이는 것을 관찰하면서

느꼈던 감흥이 어떤것이었는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영화 >

 

미술을 이용한 영화는 이해하기 힘들다.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래와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어떤 감동과 느낌을 주기 위해 제작되었을까?

 그리엣(여주인공)이 왜 베르메르의 하녀로 들어갔나?

 아버지가 주신 물건(타일)은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에밀리(마님)'과 피터는 무슨 역할인가?

 그리엣이 모델이 되어 그려지는 그림은

뤼즈벤을 위한 것이라 하는데 왜 뤼즈벤을 위한 건가?

 왜 허무하게 영화가 끝나버리는 것인가?

 '에밀리(마님)'가 화낸 이유가 그리엣(하녀)이

자신의 진주귀걸이를 사용해서 인가?

 

  

 

긴 원작 소설내용을 영화로 만들다 보니니 함축적으로 제시만 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이 그림은 일반적인 초상화에 지나지 않지만,

 당시 중세 기독교 시대의 시각으로선 외설적 그림이었다.

 

소설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그 당시 시각을 짐작할 수 있다

'베르메르는 그리엣에게 입을 살짝 벌리라고 했다.

그리엣은 당황했다. 여자가 입을 벌린다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

 '참 외설적 그림이군요..'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이 당시에는

여자가 머리를 보이는것도, 입을 벌리는 것도 안 되었다.

 그래서 머리도 보이지 않게 하려고 노란천과 파란천으로 감쌌다.

  

 단지 주인 화가와 하녀만의 사랑은 아니다.

  예술가가 작품대상을 볼 때 생기는 예술혼, 예술애가 더 크다

 

 소설 내용의 이해 -

 

 

1665년 네덜란드,  하녀가 된 그리엣
 베르메르의 작업실을 청소하기 위해 방에 들어선 순간
그리엣은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되고
그런 그녀를 본 베르메르는 신선한 영감을 얻게 된다.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색을 보는 법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가까워 지지만 탐욕스러운 아내, 장모와 함께 살면서
여섯 명의 아이들을 건사해야 하는 베르메르는
안타까운 시선 이상의 관심을 그리엣에게 표현할 수가 없다.

 베르메르의 마음을 눈치 챈 그의 아내와 딸은
이들의 시선조차 감시하고 베르메르의 후원자인 라이벤은
청순한 그리트를 보고선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모델로 해서 그림을 그리라고 베르메르에게 종용한다.
그리엣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베르메르와
하녀라는 신분으로 인해 안타까운 눈빛밖에 보낼 수 없는 그리엣.
그럴수록 베르메르는 신비하고 오묘한 그녀의 매력에
 더욱 더 빠져들게 된다.
 

그리엣의 집이 가난했다.

아버지는 눈 먼 타일장이(건축용tile)이다.

  아버지가 눈이 멀어 일을 그만두게되어 더욱 힘들어진다. 

그 아버지가 준 타일. 그건 그리엣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뤼즈벤은 베르메르의 후원자였다. 

베르메르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 그림을 계속 주문한다.

뤼즈벤은 베르메르에의 집에서 꼭 필요한 존재였다.

 뤼즈벤은 경제적으로 힘이 있는 인물이다.

근데 그가 그리엣에게 흑심을 품는다.

그래서 뤼즈벤은 자기와 같이 있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예전에도 같이 모델을 했던 한 하녀를 임신시킨 적이 있었다.

그리엣과 같이 모델을 서게하면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베르메르의 입장에서는 이 점이 싫었던 것이다.

또한 잠시라도 그리엣에게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꼭 남여사랑의 문제만은 아니다. 예술혼일 수도 있다) 

 

 

뤼즈벤이 자신의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지만 그리엣을 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둘이 같이있는 그림을 안 그리겠다고 하면,

베르메르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나름대로 타협을 한다.

"둘이 같이있는 그림은 그리기 싫다,

대신에, 그리엣만의 초상화를 그려주겠다."

초상화를 그리면서 베르메르가 그리엣에게 모든 정신이 간다.

이에 마님은 질투를 한다. 

아내인 자신도 베르메르의 작업실에 못 들어가는데,

젊은 하녀가,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귀고리를 하고 모델을 했기 때문이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예술로서 예술을 소개하는 마법같은 영화
 
 
 진주귀고리 소녀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작품이라는 것은
작년 이 무렵인 2007년 12월 말, 산동대학교 중문과 석사연구생들의
 예술비평 수업시간을 통해서였다. 베르메르의 초상화를 다룬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원작이 영화화 되었고,
그 영화에 나타나는 색채미에 대해 공부를 했다.
이 수업을 통해 요하네스 베르메르라는 바로크시대 네델란드 화가와 
그의 '북구의 모나리자' 라는 초상화 진주 귀고리 소녀를 알게 되었다.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는  진주 귀고리 소녀 작품 속
소녀의 모호한 표정을 보고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했다.
화가와 모델 사이에 어떤 유대가 있었을 것이다. 
 소녀는 베르메르 때문에 슬픈지 기쁜지 모를 그런 표정을 짓게 되었다.
그래서 그림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꾸미게 된것이다.
 
-영화평론가 한성진-
 <세익스피어 인 러브>도 그러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영화이지만
그림 하나를 보고 그 안에 인물의 표정을 계기로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를 만든 것에 너무나 감탄했다.
 이렇게 나의 관심은 돌고 돌아 영화에 대한 기대로 높아만 갔다.
영화-->원작-->그림-->영화
원작자의 사실적인 묘사와 지식,상상력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베르메르 그림이 보여주는 신비함을
어떻게 영화에서 담아낼까하는 기대감,
걸작을 망치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 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그런 불안감을 하나하나 벗겨주고 있었다
영화의 처음 그리엣(하녀)이 양파 껍질을 부드럽게 벗기며 시작하듯
  한 겹, 한 겹 벗겨질수록 신비스러운 빛을 더해갔다.
보는 내내 감상이 아닌 홀려 있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베르메르의 신비함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놓은 듯 했다.
베르메르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섬세하게 스며드는 빛이
영화에 옮겨져 영화는 하나의 회화를 보는듯 했다 .
 
 바로 이 빛! 이 빛이 영화에서 그야말로 빛을 발했다
 전기가 없는 그 시대적 배경을 빛으로서 너무나 잘 표현을 했다.
촛불들 사이로 베르메르를 바라보는 그리트의 눈빛
그 얼굴에 비친 흔들거리는 촛불,
화실을 청소하며 창문 열었을때 쏟아져 들어오는 빛 !
 
 
베르메르의 회화에서 그랬듯 영화에서도 빛의 예술을 보여준다.
이 모든것이 조명으로 만들어진 것에 대해
정말 영화에서 조명의 힘이 엄청 나다는 걸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회화같은 채색미
모든 장면에도 공들인 흔적이 넘쳐난다
 영화의 장면은 모두 베르메르의 회화속으로 들어온것 같은 느낌을 준다
베르메르의 회화에 등장하는 붉은색과 노란색의 탁자보,
화실에 있는 창문, 심지어는 바닥의 카펫까지
모두 베르메르의 회화에 나온 그대로를 보여준다.
감독이 얼마나 베르메르에 빠져 연구 했는지
 단 한 장면 봐도 알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의 심리묘사 또한 뛰어나다.
이들은 단 한번도 입으로 사랑한다는 말이나 또는
강렬한 애무나 성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그 모든것을 표현한다.
 
베르메르가 그리트의 귀를 뚫어줄때 귀에서 흐르는 붉은 피,
그리엣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의 갈망에 차 때론 끈쩍이는 것 같은
그 눈 빛과 손 끝의 스침, 
베르메르가 그리엣의 초상화을 그릴 때의 그 흐르는 긴장감,
그리엣의 젖은 입술,
 무표정하게 그리엣을 바라보는 베르메르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사랑을 긴장감 있게 끌고 나간다.
 회화 같이 빛이 쏟아지는 장면들에 감도는 긴장감
그리고 그 위에 신비스로운 음악이 영화를 정말 숨막히게 만들어 버린다.
 
영화는 잠자던 300년전의 베르메르를 깨워 그의 작품들을
영화속에 녹여 우리에게 그의 작품을 알게 해준다.
바로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미술이라는 다른 예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진주 귀고리 소녀 작품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예술이라는 것이 인간을 얼마나 홀리게 만드는 마법적 존재인가 알수 있다.
한국영화가 많이 발전을 했지만 부족한 점이 아직 많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바로 섬세함, 부드러움, 신비함 이다.
굵은 것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다양하게 발전해야 한다.
                                                                               -영화평론가 한성진-
 
강렬한 애무나 성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그 모든것을 표현한다.
이 말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이 말은 <색.계>에 대한 서양의 잘못된 이해를 다룬
조여명의 글을 떠올리게 한다. 가학적인 섹스장면에 대한
 서양의 오해가 무엇인지 여기서 알 수 있다.
섬세함, 부드러움, 신비함
서양영화평론가는 <색.계>에서의 사랑에는
 섬세함, 부드러움, 신비함이 없다고 비평한다.
사실 섬세, 부드러움, 신비는 동양의 대표적 미감이다.
이러한 미를 어찌 동양의 감독이 모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색.계>에선 표현할 수 없는 아니,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美미이다.
가혹한 성행위장면을 통해 이성과 감정의 충돌, 서로가 비밀을 가지고
그것을 밝힐 수 없는 의사소통의 고통을 다루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안감독의 문화장벽을 넘는 예술혼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얀색
 
 그녀의 하얀두건
 그녀의 주 임무인 빨래,
순수, 깨끗하게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얀색이야 말로 그녀의 색이다. 
 
파란색
 
 마님은 안타깝게도 남편을 너무도 사랑합니다.
 자신이 보석을 한 모습을 바라봐주는 남편을 보는 게
일생의 제일 큰 행복인 사람입니다.
그녀가 입은 옷의 색은
파란색 물이 다 빠진 흐린 하늘색이다.

 

당시(1660년대 네덜란드)에는 파란색이 굉장히 유행했고

 신비롭고 환타스틱한 색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베르메르에게 다가온 그리엣은 신비로운 대상이다.

베르메르는 물감을 주문한다.

 그녀에게 처음 요구한 색상은 하얀색이었다.
 깨끗하고 순수한 소녀이다.
 그녀에게 요구되는 색상은 파란색이다.
소녀가 여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의미인가?
 

 

-소설가 이영도-
"사랑 중에서 가장 힘든것은 짝사랑이다.
왜냐하면 상대를 아무리 변화시키려 해도
상대는 절대로 변하는게 없거든..
 사랑이 상대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은
 오히려 복수나 증오와 매우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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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金平 | 작성시간 08.04.10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을 묘사한것 ,그리고 베르메르의 순수한 사랑을 본것같아 너무나 고맙습니다.
  • 작성자김세웅 | 작성시간 08.04.11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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