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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감상

조선시대 서예

작성자상훈|작성시간02.11.04|조회수318 목록 댓글 0
조선시대

조선시대는 초기에 불교를 배척하고 유학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근엄한 예의 도덕을 중시하였는데,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를 배출 하는 등 초기부터 문화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또한 한글의 창제와 금속활자의 주조·典籍의 간행·건축과 회화의 발달 등 전반적인 문화의 발전을 가져왔다.

조선초기의 서예는 고려말에 유입된 송설체가 성행하였는데, 이를 가장 잘 쓴 사람이 안평대군(李瑢)이다. 안평대군은 시문서화(詩文書畵)에 모두 능했으며, 그의 글씨는 송설체를 썼으면서도 자기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여 독자성을 나타냈다. 대표작으로는 현재 일본 天理大學에 수장된 夢遊桃源圖跋文이 있다. 한편 세종대에는 사자관(寫字官)의 모범으로 왕희지체를 삼게한 것으로 보아 왕희지체도 쓰여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초기에는 이외에도 집현전 학자들과 성임·강희안·황기로·양사언 등이 모두 일가를 이루었다.


성임

강희안

황기로

양사언

조선 중기의 서예는 임진왜란을 전후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는데 지금까지의 송설체에 반하여 왕희지체로의 복고를 주창한 것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서가가 바로 한석봉으로, 그는 처음에는 송설체를 배운 듯하나 후에 왕희지체를 배워 일가를 이루었다. 그의 글씨는 중국에서까지 절찬을 받았고 선조의 사랑을 받아 석봉체는 일시에 풍미를 하게된다. 또한 석봉체는 그대로 관부의 양식을 이루어 사자관의 모범 글씨가 되었으며, 후대의 모든 사람들이 석봉체를 배우게 되는등 그 영향을 매우 컸다. 중기에 있어서의 또하나의 특징은 동국진체의 출현이다. 당시의 시대사조가 실학의 발달 등으로 인해 우리것을 찾자는 사상이 팽배해져 있었으므로 서예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 동국진체는 옥동 이서로부터 시작하여 윤순, 이광사로 이어지어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내게 된다. 특히 옥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론인 필결(筆訣)을 지어 동국진체의 이론적 배경을 뒷받침 하였으며, 허목은 그만의 독특한 필체를 구사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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