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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세상

[[소개]]長恨歌 해설(1)

작성자墨湖|작성시간05.07.31|조회수239 목록 댓글 6

長恨歌 해설(1)

漢皇重色思傾國(한황중색사경국) Han huang zhong se si qing guo
御宇多年求不得(어우다년구부득) yi yu duo nian qiu bu de
楊家有女初長成(양가유녀초장성) yang jia you nu chu zhang cheng
養在深閨人未識(양재심규인미식) yang zai shen gui ren wei shi

--- 한나라 임금님은 미인을 좋아해서 천하절색을 찾고자 했으나
--- 천하를 다스린 지 여러 해 되도록 구하지 못했었네.
--- 양씨 집안에 아가씨 있어서 이제 성인이 되었으나
--- 깊은 규방 속에 있어서 남들이 알 수 없었네.

--- The beauty loving monarch longed year after year,
--- To find a beautiful lady without a peer.
--- A maiden of the Yangs to womanhood just grown,
--- In inner chambers bred, to the world was unknown.

-- 漢の皇帝は 美女を大じに愛して, 傾國の色を 得たぃと 思ぃながらも,
-- ご治世の 長ぃ間, そぅいぅ 美人を 得られなかった
-- 楊 といぅ家 に娘があり,やっと成人になっていたが,
-- 奧く深 ぃ 部屋の中で 育てられていたので, 人人には知られなかった.

** 漢皇 : 唐 황제인 玄宗 李隆基를 지칭하는 것임. 작가 백거이가 이 글을 쓸 때가 아직 唐나라였으므로 당 황제를 직접 지칭할 수도 없었고, 또한 옛날 漢武帝와 李夫人의 故事를 인용하는 비유수법에 의해서 시적 감흥을 한층 높이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봄.
** 傾國 : 傾國之色의 준말. 漢 武帝와 李夫人의 故事에서 유래된 말.
** 御宇 : 천하를 통치한다는 架御宇宙의 준말.
玄宗이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가 되었음을 뜻함.
** 楊家有女 : 양귀비(楊貴妃:719-756)를 지칭함. 楊貴妃의 본명은 玉環, 고향은 四川, 아버지 楊玄埮은 蜀州의 하급관리인 司戶였다 하나, 早失父母하여 叔父 집에서 자라났음.
** monarch : soverein, 君主, 主權者, 帝王
** peer : 同僚, 對等한 사람.


[ 長恨歌 이야기 ]

長恨歌는 필자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공직시절 韓國外大 부설 어학연수원에 파견되어 中國語 공부를 할 때였는데, 당시 元老敎授이던 분이 강의 도중 기회 있을 때마다 長恨歌 몇구절 씩 암송 또는 흑판에 써 보이며 千古名詩라고 극구 칭송하곤 했었다.

이후 나는 서점에 들를 때마다 장한가 해설책자를 찾으려했었는데, 당시의 시중엔 그 전문이 수록된 우리말 해설책자가 없었다. 간신히 日本版의 것을 구했는데, 그것도 원문과 간단한 해석만 되어 있는 것이어서 기대했던 만큼의 感興을 느낄 수는 없었다. 譬喩수법이 많은 古典詩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그 시대적 배경과 그에 얽힌 故事를 알아야 가능할텐데...
그리하여 外大의 어학연수과정을 마친 후, 韓國放送大學 中語中文學科에 편입해서 중문학 공부를 계속하였고, 이후 長恨歌와 그 작가 백거이(白居易)에 관한 책은 닥치는 대로 입수해서 탐독했다.

그런데 그 中語中文學科의 卒業과, 내가 반평생을 바쳤던 공직에서의 停年退職, 나이 還甲이라는 것과 거의 동시에 맞게 되었다. 요즘 還甲이라는 것은 보통 생일과 마찬가지로 되었지만, 내 인생의 세가지 전환점이 된 이 타이밍을 그냥 보내기도 싫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공부하며 수집한 韓中日 삼국의 長恨歌 관련 자료를 취합정리해서, 長恨歌 全文을 우리말과 현대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 4개 국어로 鑑賞할 수 있는 책자를 만들되, 출판비도 절약하고 그동안 갈고 닦은 내 글씨 솜씨도 발휘(?)할 겸해서 필사본(筆寫本) 형식으로 만들어서 그동안 신세진 분들에게 기념품으로 제공했었다.
이 이상한 책자를 우연한 기회에 斯界의 元老인 서울대 중문학과 李炳漢 名譽敎授가 보고 <장한가>에 관한 한 최고의 책자라고 칭찬해 주었었다.

장한가(長恨歌)는 唐나라의 천재시인 백거이(白居易:AD 772~846))가 양귀비(楊貴妃)와 현종황제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쓴 七言古詩로서,120句 840字에 달하는 대서사시(大敍事詩)이다.

白居易의 字는 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인데, 보통 白樂天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그는 40세이전에는 < 詩로서 부패한 사회를 정화시켜야 한다>는 취지를 내세우며 원진(元稹) 등과 더불어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주도했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장안에서 4천여리 떨어진 시골인 江州司馬로 폄적(貶謫)당한 이후에는 정쟁에 휩싸이는 것을 피하여, 지방관 등 한직(閒職)을 자원하면서 좋아하는 詩作에만 전념하는 등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당시의 유명시인으로서는 드물게 고위관직까지 지내며 75세까지 장수하였고, 3800餘首의 많은 詩를 남겼다

백거이(白居易)는 원래 보잘 것 없는 하급 지방관리의 집안에 태어났으나, 文才가 뛰어난데다가 <안사의 亂> 으로 중앙의 기득권층이 대폭 몰락했던 시운(時運)도 따랐기 때문에 중앙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그 사실 만으로도 그는 전국의 젊은 문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장한가는 그가 35세때 주지현위(周厔縣尉)로 있을 때 쓴 것이다. 그곳은 수도 長安에서 가까운 別邑 같은 곳으로, 조정의 校書郞, 翰林學士 등 직책도 겸하고 있었다.
<현위>라는 직책상 그는 관내를 순시하며, 서민들의 생활 등 세상 물정을 살피곤 하였는데. 관내에는 종남산(終南山) ,仙遊寺 등 名勝古跡이 많아서, 천재시인의 詩心을 키우는데 안성마춤의 고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지방의 은자(隱者)이던 王質夫, 陳鴻 등과仙遊寺에 가 묵으며 飮酒談笑하다가, 화제가 근처인 마외파(馬嵬坡)언덕에서 50년전에 원통하게 죽어간 楊貴妃에 미치게 되었다.

王質夫가 그때까지 지방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던 楊貴妃의 일화를 자세히 소개하고 나서, 기막힌 사연의 역사적인 사건이 흐르는 세월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 것을 애석해하였다. 그리고 백낙천에게 시를 지어 세상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해졸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백낙천도 이에 감동하여 조용한 곳으로 옮겨 심신을 가다듬은 후, 밤을 새워가며 840자에 달하는 장문의 시를 써냈는데, 그것이 이후 동양의 러브스토리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인용되고 있는 千古名詩 <장한가:長恨歌>가 된 것이다.

長恨歌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서, 전국 어디를 가나 신분이나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長恨歌 몇 구절씩은 암송하고 다닐 정도로 널리 유행하였다 한다.
특히 妓女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장한가를 모르는 기녀는 요즘 말로 <왕따>가 될 정도였기 때문에 한층 더 유행의 바람을 탈수 있었다 한다.
長恨歌에 대한 열풍은 당나라 국내뿐 아니라. 新羅나 日本 등 외국에까지 이어져서 당시의 사신이나 무역상들이 이를 구해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長恨歌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천하절색 楊貴妃와 玄宗황제 간의 애정실화인데다가, 묘사가 그림같이 세밀하고 절묘하여, 한편의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처럼 쓰여졌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당시 문인들이 쓰던 어려운 문어적(文語的) 표현을 피하고, 서민층 부녀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어체(口語體) 표현을 골라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長恨歌 등 白樂天의 詩를 평함에 있어서, 옛날에는 저속한 언어로 皇室을 모독했다느니, 내용이 경박하고 품위가 없다는 등으로 폄하(貶下)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서민들이 쓰던 평이한 口語體 언어로 시를 쓴 점을 오히려 높이 평가하여 語文一致 백화문학(白話文學)의 비조(鼻祖)로 꼽으며,
下層 庶民들의 哀歡과 貪官汚吏들의 非理를 고발하는 시를 쓰면서, 詩를 통한 사회개혁운동 즉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주도한 위대한 社會詩人, 人民詩人 등으로 높이 추앙(推仰)하고 있다.

이전에 만든 筆寫本 내용중 수정할 부분도 적지 않은데다가 인터넷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長恨歌 全文을 PC로 재정리하면서, 현재의 PC에서 지원이 곤란한 簡体字와 四聲표시 부호는 생략하고 4개 구절씩 30회로 나누어 해설하였다.

내용 가운데 中國語發音(漢語拼音)은 필자의 放送大學 中語中文學科 재학시절, 中國에서 交換敎授로 와있던 蘇州大學 何立榮(He Li-rong)교수가 교정해준 것이며, 英文解釋은 中國對外出版公司에서 발행한 [英譯 唐詩300首]중 長恨歌번역을 담당한 北京大學 許淵沖교수의 번역문을 그대로 옮긴 것임을 밝혀 둔다.
( 墨湖 李能宰, 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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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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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墨湖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7.31 수국님, 잘봐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여기 올려놓은 후 글씨폰트 조절하는 방법을 몰라서...
  • 작성자玄珍 | 작성시간 05.08.01 묵호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墨湖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8.01 玄珍님,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청난당 | 작성시간 05.08.04 감사합니다 긴 글을 올려 주셔서...^^*
  • 답댓글 작성자墨湖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8.05 청난당님, 제 글을 항상 관심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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