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천재는 상투적인 것에서도 새로움을 찾아내는데 있다. 그런 실력이 십분 발휘된 장르가 자신의 특기라 할 화조화이다. 김홍도는 화사한 새와 꽃 그림을 그리면서 거기에 장수, 축하의 뜻을 은근(慇懃)히 담았다.
대표적인 그림이 <황묘농접(黃猫弄蝶)>이다. 어느 나른한 한 여름날. 마당 한 쪽의 돌무더기 사이에 패랭이꽃이 소담하게 피어있다. 아마도 돌 위에 꼬물거리는 작은 곤충이라도 있었는지 심심했던 고양이 한 마리가 살금살금 다가가고 있다.
김홍도 <황묘농접> 지본채색 30.1x46.1cm 간송미술관
여름날의 무료함의 고양이뿐 만이 아니었는지 검정나비 한 마리도 소리 없이 고양이 등 뒤f로 다가오는데 그만 고양이가 여기에 놀랐다. ‘홱’하고 고양이가 고개를 돌리자 그 순간 여름날 조용하던 마당가의 정적이 깨지고 만 것이다. 절묘한 시적 서정이 돋보이는 탁월한 걸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실은 여기에는 축하용으로 흔히 쓰이는 장수(長壽)상징 코드가 다수 감추어져 있다. 우선 돌이다. 돌은 예부터 변하지 않는다며 장수와 연관지어 생각돼왔다. 고양이와 나비도 장수 상징과 무관하지 않다. 고양이 묘(猫)자와 나비의 접(蝶)는 중국어로 마오(mao)와 띠에(die)라고 읽히며 이는 장수 노인을 가리키는 고급어휘인 모질(耄耋)의 발음과 같다.
패랭이꽃도 장수를 상징하는 꽃이다. 이 꽃을 한자로 표기하면 석죽화(石竹花)이다. 돌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죽(竹)자도 축하한다는 축(祝)과 발음이 같다. 패랭이꽃 하나만 그려놓고도 장수를 축하한다는 뜻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김홍도 <죽서화금> 81.7x42.2cm 간송미술관
단원의 천재는 더 뻗어나가 시의도에도 에둘러 축하와 길상의 뜻을 담은 것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죽서화금(竹棲花禽)>이다. 그림은 어느 깊은 산속 계곡의 풍경이다. 키 낮은 조릿대가 툭 불거진 바위틈에 밀생한 가운데 커다랗게 자주 빛 나팔꽃 몇 송이가 그려져 있다. 그 사이에는 작은 새 5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뒤쪽으로는 주제가 되는 소재를 한 가운데로 몰아 놓고 시선을 그 쪽으로 집중시키는 것은 단원 특유의 구도법이다.
그림 위쪽에 예서로 시 구절 하나가 적혀있는데‘忽然驚散寂無聲(홀연경산적무성)’이다. ‘갑자기 놀라 흩어져 적막한 채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 시구는 남송시대 육유와 함께 애국 시인으로 높이 칭송받았던 양만리(楊萬里 1127-1206)의 시 「한작(寒雀)」의 한 구절이다.
百千寒雀下空庭 백천한작하공정
小集梅梢話晩晴 소집매초화만청
特地作団喧殺我 특지작단훤살아
忽然驚散寂無声 홀연경산적무성
떼 지은 겨울 참새 빈 뜰에 내려와
매화가지 끝에 모여 저녁 날씨 좋다 재잘거리네
일부러 무리 지어 시끄럽게 떠들어 대지만
갑자기 놀라 흩어지며 적막만 남기네
겨울 참새가 텅 빈 뜰의 매화가지 끝에 모여 앉아 늦저녁의 맑은 날씨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주인은 안중에도 없이 점점 시끄럽게 짹짹 이다 일순 파르르 하고 날아가 버려 다시 뜰은 적막에 감싸인다는 내용이다. 특지는 ‘일부러’ 라는 뜻이다.
조용한 겨울 마당에 내려와 제멋대로 떠들다 갑자기 화들짝 놀라 날아가 버리는, 간이 콩 알 만한 참새들의 습성을 묘사한 이 시는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인상이 강한 송나라 시 치고는 상큼한 인상이 특별한 시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림 속에 참새와 곁들여진 대나무가 키워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참새는 작(雀)이고 대나무는 죽(竹)이다. 작은 벼슬을 뜻하는 작(爵)과 발음이 비슷하다. 그리고 죽 역시 축하의 축(祝, zhu)자와 발음이 닮았다.
그러고 보면 깊은 산속에 대나무와 참새를 그려놓은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벼슬과 축하의 뜻이 그 속에 담겨있는 것이다. 새를 그리고 대나무를 그리면서 티내지 않고 세속적 행운을 축하하는 뜻이야말로 단원의 사람됨에서 나오는 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