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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필

삿갓 모랭이길, 초승달(자서전적단편소설)

작성자신웅순|작성시간26.06.19|조회수41 목록 댓글 0

삿갓 모랭이길, 초승달

 

 

 

 

석야 신웅순*

 

삿갓 모랭이, 돌아가는 길,

 

그곳은 언제나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돌아서야 하는 길목이었다.

충남 서천의 작은 마을 기산면 내산정리, 산줄기가 내려오다 삿갓 모양으로 둥글게 휘어지며 멈춘 그 모퉁이를 마을 사람들은삿갓모랭이라 불렀다. 십 리 밖 초등학교길 아이들에게는 꼭 거쳐가야 할 첫 입구였고, 하교길 아이들에게는 마을이 비로소 시야에 들어오는 안도의 모퉁이였다.

소년의 하루는 그 모퉁이에서 시작해 그 모퉁이에서 저물어갔다. 아침이면 언제나 어머니는 삿갓모랭이가 보이는 마을 어귀까지 나왔다. 소년이 책가방을 둘러매고 깡충깡충 뛰어가다 모퉁이를 돌아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장승처럼 움직이지 않고 서 계셨다. 바둑이 녀석도 딱 거기까지만 소년을 따라와 꼬리를 흔들며 어머니와 함께 발길을 돌리곤 했다.

삿갓모랭이는 이별의 길이기도 했다. 큰누님이 연지곤지 찍고 가마에 올라 눈물 흘리며 떠나가던 길이었고, 어느 해 눈 오는 날 어머니가 하얀 꽃상여를 타고 이승의 마지막 걸음을 옮기던 길이기도 했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산바람도, 세찬 눈보라도 거짓말처럼 잦아들어 사람들은 그곳을어머니의 가슴 같은 곳이라 불렀다. 훗날 소년은 그곳을 어머니의 등불이라 명명했다.

반세기가 훌쩍 넘었어도, 소년은 고향의 삿갓모랭이를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눈을 감으면 산길 물푸레나무 옆으로 졸졸졸 흘러가던 도랑의 맑은 물소리가 귓전을 맴돌았고, 도랑 아래 미루나무 둑길 너머로는 푸른 논밭이 환영처럼 펼쳐지곤 했다. 삿갓모랭이는 그런 곳이었다. 그 곳은 소년에게는 평생을 두고 앓아온 아련한 통증의 진원지였다.

 

얼룩진 도시락

 

오월이었을까. 감꽃이 하나씩 둘씩 노랗게 떨어지던 날이었나, 찔레꽃 진한 향기가 바람에 멀리 실려가던 날이었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그날 아침, 소년의 어머니가 건네준 양은 도시락은 평소와 달리 묵직했고, 온기가 남달랐다.

아들, 오늘은 조심히 들고 가거라.”

보리밥에 반찬은 시큼한 무장아찌 몇 조각이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그날 도시락 속의 노릇하게 쪄진 박대고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먹이겠다고 십리 길을 걸어 장터에 가서 귀하게 사 온 생선, 서천의 명물 박대고기였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솥 위에 박대를 올려놓고 정성껏 쪘다. 뜨거운 김을 참아가며 노오란 살점을 손으로 일일이 찢어 도시락 밥 위에 올려놓았던 그 박대고기였다.

엄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소년은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며 삿갓모랭이 길을 달렸다.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친구들이 보낼 부러운 시선, 그리고 입 안 가득 퍼질 박대고기의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을 상상하니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벼웠다. 소년은 깡충깡충 뛰어갔다.

기쁨이 과했던 탓이었을까. 삿갓모랭이 도랑을 막 건너려던 찰나, 소년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도시락을 놓쳤다. 도랑 아래 논바닥으로 또르르 굴러 떨어진 것이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도시락 뚜껑이 열렸다. 소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반사적으로 튀어나가 허겁지겁 흙탕물 속 도시락을 주워 올렸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자식을 먹이려 먼 길을 걸어 장을 보아 온 아버지의 얼굴과 아침 일찍 밥솥에서 아들을 위해 생선살을 찢던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거무튀튀한 논물이 스며든 도시락 안은 검고 누런 오색 무늬로 처참하게 얼룩져 있었다.

맛있게 먹을 소년의 모습을 생각하며 싸주셨는데…….”

소년은 눈물이 핑 돌았다.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흙탕물이 밴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정성껏 싸준 음식을 빠뜨렸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교실 안은 왁자지껄, 재잘재잘 아이들의 말소리로 가득 찼다. 친구들은 보리밥에 장아찌라도 맛있게 먹었다. 소년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시락을 들고 학교 뒤편 외진 퇴비장으로 갔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보는 사람은 없었다. 소년은 몰래 얼룩진 도시락 밥을 퇴비 더미 속에다 아무도 보이지 않게 묻었다. 그리고 개울물로 도시락을 뽀드득 뽀드득 깨끗하게 씻었다.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눈부시게 깨끗해진 도시락을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우리 아들이 아주 맛있게, 싹싹 비웠구나.”

……, 엄마. 참 맛있었어요.”

죄책감이었을까. 소년은 어머니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마당까지 내려앉은 저녁노을이 어린 소년의 가슴에 확 밀려와 흥건히 고여왔다. 그날 채우지 못한 허기는 배고픔이 아닌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을 버린 서러움이었다. 소년은 이 부끄럽고도 아픈 비밀을 일생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삼대를 흐르는 물줄기

 

반세기가 흘러 소년은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가 되었고, 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다. 고향 서천에는 이제 그가 발붙일 땅 한 평 남아있지 않았으나, 마음이 허허로울 때면 그는 서천 수산물 특화시장을 찾았다.

목적은 언제나 하나였다. 어린 시절 박대고기의 가슴 아픈 사연 때문이었다.

가판대에 나란히 누워 서해의 갯바람에 잘 마른 박대를 바라볼 때면, 노시인의 눈시울은 어김없이 붉어졌다. 시장통 시끌벅적 속에서도 아득한 삿갓모랭이의 물소리가 들려왔고, 밥솥을 열 때 풍겨오는 구수한 생선 냄새가 코끝에서 맴돌다 스쳐갔다.

어머니, 박대고기 잡수세요. 참 맛있어요.”

그는 고향에 다녀올 때마다 박대 한 두름을 사서 식탁에 올렸다. 평생 어머니에게 고백하지 못한 비밀을 속죄라도 하듯, 그는 정성스레 박대를 쪄서 어머니의 밥상 위에 올려드렸다. 그리고 아이들의 밥상에도 얹어주었다. 그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박대 고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노시인은 어머니가 가신 후에도 서천에 가면 언제나 박대고기를 사왔다.

당신은 고향에만 가면 이 생선을 꼭 사 오시네요.”

아내는 어머니가 그랬듯 박대는 밥솥에 쪄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와 어머니와의 옛 사연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부드럽게 웃으며 박대 살을 발라 이제는 손녀의 숟가락 위에 얹어주었다. 할아버지가 왜 이 생선만 보면 유독 목소리가 나직해지는지, 왜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멀리 바라보는지 자식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삼대를 이어 전해진 박대고기는 이제 온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대를 이은 전설의 음식이 되었다.

가난과 아픔, 슬픔의 기억들은 오랜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는 봄비가 되는 것인가.

노시인은 나직하게 읊조렸다.

사랑은 영원한 비밀…….’

 

삿갓 모랭이길 개울물 소리

 

노시인은 반세기 그리고도 사반세기를 건너 어느날 사너멀 옛 산모롱이 길을 찾았다.

기억 속의 도랑은 시멘트로 정비되어 옛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논바닥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물푸레나무도 미루나무도 없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인생의 삿갓모랭이는 어머니의 시간도, 소년의 시간도 강물 따라 먼 바다로 흘러가 버렸다.

그는 산길가에 서서 생각했다. 이곳에 노시인의 삶의 흔적을 담은 작은 시비(詩碑) 하나라도 세우면 어떨까 하고. 평생을 문학과 서예와 시조를 품고 살아온 그의 인생을 찾는 이는 없어도 고향 모퉁이에 작은 돌 하나 새겨두고 싶었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세우지 마라.”

노시인은 혼잣말로 읊조렸다. 한 평생을 꼿꼿하게 서서 힘들게 살아온 삶이었다. 시비마저 무겁게 세워두고 싶지 않았다. 땅이 오히려 무겁다. 차라리 길가의 풀숲에 버려진 누운 돌비로 그냥 놓아두고 싶었다.

지나가는 이가 아무도 없어도 상관없다. 흘러가는 도랑물소리가 와서졸졸졸읽어보고, 산모롱이를 감아 도는 바람이 쉬이쉬읊어주고, 산노을이 지쳐 후유후잠시 쉬었다 가도 그만이다. 내리는 봄비에 촉촉이 젖고, 눈 내리는 겨울 이불이 되어 포근히 덮어 줄 수만 있다면 그만으로도 족하다.

그날 밤, 서천의 하늘 위로 얇은 초승달이 낮게도 떴다. 초저녁 달빛이 삿갓모랭이 산줄기를 타고 노시인의 굽은 등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이튿날에는 부슬비가 내려 그 옛날 초등학교 등굣길을 촉촉히도 적셨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기도는 어머니가 서계셨던 삿갓모랭이 마을 어귀의 등불이 되어 깜빡깜빡 걸려있을 것이다. 시인은 들릴 듯 말 듯 나직하게 불렀다.

어머니…….”

그 옛날 퇴비장에 버려진 도시락의 비밀은 영원히 묻혀졌지만, 산모롱이 길을 에돌아 흐르는 개울물 소리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숨결이 되어 여전히 노시인의 가슴 속을 맑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소년은 시조 한 수를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나머지를 적시다 홀연 떠난 그 봄비

지금 먼 철길 어느 역을 지나고 있을까

 

내 사랑 산모롱길도

에돌아가는 초승달

 

-2021.8.17.산모롱이길2023.3.20.아름다운 비밀의 기록을 자서전적 소설로 재구성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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