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를 배우는 순서
저는 서예 입문 초창기에 서예학습의 본질적인 면을 이해하고자 서예학습에 병행하여 중국 청나라 후기 포세신 저술의<예주쌍즙>과 강유위의 <광예주쌍즙>을 날마다 익혀 읽어 50회 정도는 족히 읽은 것 같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으나 서예실습과 병행하면서 점차로 그 묘처를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광예주쌍집>의 내용은 나의 학서과정의 바른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서예 초학자분들을 위하여 그 내용의 일부를 이해하기 쉽게 요약하여 올립니다. 조금의 도움이라도 있다면 크게 만족하겠습니다. -수헌 오장순-
강유위康有爲 저술 <광예주쌍즙廣藝舟雙楫> 22. 학서學敍(서예를 배우는 순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서예를 배우고 있으나 훌륭한 글씨를 쓰지 못하는 것은, 단지 이 사람들이 일심전력하여 연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니다. 가르쳐주는 순서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사람이나 모두가 어렸을 때부터 선생을 따라 공부를 하고 있으나 하나하나의 문자의 뜻을 배우지도 않고 곧바로 <대학大學>을 읽고 있고, 물건의 이름이나 언어의 해석을 배우지 않고 곧바로 '천天에 의하여 주어진 인간의 본성<성性>'이나, '물物의 배후에 있어 물을 물로서 존재시키고 있는 근거<리理>'에 관해서 이것저것 의견을 말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학문을 하고 있다고 하여도 옛부터 내려온 제도 등 보통으로 누구나 알아야 할 것은 전혀 모른다.
또 문학이나 역사의 기초적인 사항도 전혀 공부하고 있지 않는데, 그것들을 응용해서 쓰는 팔고문(중국 명,청 시대에 관리 등용 논문 시험으로 채택된 문체)을 연습하고 있고, 아직 비문碑文의 임서도 충분히 하고 있지 않은데 그것을 응용하여 쓰는, 과거의 시험답안을 쓰기 위한 소해小楷(작은 글씨)를 연습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가 학습의 순서를 뒤바꾸고 있는 것이니, 먼저 비문碑文을 임서하여서 배우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공부 순서가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일심전력으로 연습하여도 자기자신이 체득하는 것이 대단히 적어서 의욕을 잃게되고, 마침내는 연습을 그만두게 된다.
서예를 배우는 데는 순서가 있으니 그 첫째가 집필법이다.(집핍법은 별도의 자료 참고 바람)
집필법이 바르게 된 연후 익힐 것이 필획의 구성(결구結構)이다. 가로획은 수평으로 쓰고, 세로획은 수직으로 써서, 글자 모양이 잘 정돈되도록 한다. 다음으로 각각의 필획이 서로 마주 보거나 등을 맞대거나, 나아가거나 물러가거나, 길게 긋거나 짧게 멈추거나하는 형세를 배운다. 더 나아가서 한자한자가 똑바로 쓰여지게 되면 전체적인 획의 구성(분간포백分間布白)이 잘 조화되도록 연구한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법첩의 문자를 연습해 보면, 각각의 법첩을 쓴 서예가의 필획의 구성법, 즉 그 법첩에서는 어떻게 필획을 분산하고 집중시키고 있는가(소밀원근疎密遠近)하는 서예의 요묘한 맛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과거의 위대한 서예가가 쓴 작품으로부터 역대 서예가의 비법을 배워, 어떻게 필봉을 누르는 돈필頓筆을 사용하여 방필方筆을 쓰고, 어떻게 필봉을 들어 올리는 제필提筆을 사용하여서 원필圓筆을 쓰느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와 연습을 여러 해를 계속하여 필법이 점차로 원숙하게 되면, 골骨, 혈血, 기氣, 육肉, 정신이 모두 구비되어 자연스럽게 그 사람 나름대로의 서체가 형성된다. 그 서체가 완성되고나서 그 사람의 서풍을 논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기禮記>에 '형체가 완전하지 못하면 군자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 바, 서체에 골骨, 혈血, 기氣, 육肉이 모두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을 <서書>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문자로부터 연습하기 시작하면 좋은가? 그것은 큰 문자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왕희지의 <필진도>에도 '공부를 시작한 사람은 큰 문자로부터 연습하여야 하고, 작은 문자로부터 시작하여서는 안된다'고 말하였다.
행서와 초서를 배울 경우에는 어떤 문자로부터 연습하기 시작하면 좋은 것일까? 그것은 네모진 필획의 문자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가로획은 수평으로 쓰고, 세로획은 수직으로 써서, 정연히 정돈되도록하지 않으면 기필, 수필, 전절轉折이 날씬한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가 많은 형태의 문자나 법첩을 서둘러 연습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서書를 배울 경우에 <구궁九宮:글자 하나가 차지하는 자리를 9칸의 격자 모양으로 분할>의 방법에 의하여 임서하는 것이 좋다. 즉 이 방법에 의하여 필획과 문자를 확대하여 써서, 그 필세를 충분히 배워 체득해야 한다.
탁본으로 된 문자는 필획이 가늘게 되어 있어서 반드시 확대하여 연습하지 않으면 본래의 형태를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비문을 임서하면 좋은가? 장맹룡비는 획이 굵으며, 구성이 정연히 정돈되어 있고, 필세가 생생하므로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비문碑文을 배울 경우에는 반드시 문자에 종이를 대고 베껴서 형태가 닮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몇백번이나 문자를 대고 베껴서 연습하면, 가로 세로로 긋거나 누르거나하는 붓을 움직이는 방법이나, 구불구불 굽히거나 쇠때와 같이 굽히거나 하는, 붓을 움직이는 방법인 용핍법이 모두 원래의 문자와 같게 된다. 그리고나서 탁본을 보면서 임서하는 것이 좋다.
장맹룡비를 깊이 연구하여 이 비문의 구성이 세밀한 곳까지 용의주도하게 미쳐있고, 또 변화가 풍부하여 뛰어난 형상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체득해야 한다. 이 시기에는 오로지 익숙하게 연습하는 것을 목표로하여 대단히 많은 연습을 거듭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이 하여두면 기초가 굳어지므로, 긴 세월을 경과하여도 몸에 익힌 것이 없어지는 일은 없게 된다.
그 다음으로 필세를 얻고 자유스런 운필을 얻기 위하여 <석문명>, <정문공비>, <예학명> 각종<조상기>등을 익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육질肉質이 가미되고, 소박한 맛과 형태의 다양성이 갖춰진다. 그렇다고 서를 체득하였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아직 충분치 아니하므로 다음 과정의 학습이 필요하다.
해서를 익힌 다음에는 전서와 예서를 연습하여 서의 원류를 이해하고, 필세를 힘차게하고 또 충실히 하면서 행서와 초서를 배워서 변화를 몸에 지니도록한다.
만일 과거시험 답안을 쓰기 위한 서체를 빨리 몸에 지니고자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반드시 내가 이상에서 말한 방법에 의하여 연습을 시작하여 널리 여러 종류의 법첩을 연습하여서 기초를 굳혀서 힘을 충실케 하고, 필세를 생생하게 하여 깊은 풍취를 지니도록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번 옆길로 빠져들게 되면 <아비규환의 지옥>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결코 서법을 완성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해서를 아직 충분히 익히지 못하였으면 날으는 것과 같은 움직임으로 운필하는 것을 연습하여서는 안된다. 만일 그러한 잘못된 방법을 몸에 지녀버리면 일평생 서예의 본질적인 것에는 가까이 가보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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