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석기시대 옥기로 본 무문자인들의 위치
선사시대(先史時代)는 역사시대 이전을 지칭하는 용어로 무문자시대(無文字時代)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도 아주 긴 무문자시대가 있었다. 문자의 발명이 상(商)나라 말기 3,200년경에 이루어졌으니 그 이전은 무문자시대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중국의 무문자시대는 찬란한 문명의 흔적을 남겼다. 당시에는 비록 문자의 기록은 없지만, 이들이 남긴 유물은 문자시대 못지않은 정신적인 깊이와 격조높은 미의식을 지니고 있다. 암각화, 채도, 옥기는 중국의 무문자시대의 문물을 대표한다. 그중에서도 옥기는 무문자인들을 이해하는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옥기는 문자시대 이후 사라진 암각화, 채도와는 달리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기 때문에 비교학적인 견지에서 무문자시대의 의미부여를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서 제시되는 옥기는 무문자시대, 상, 서주, 춘추전국시대 때 제작된 것이며, 궁정시대의 마지막 왕조인 명청시대의 옥기를 포함한다. 우리는 무문자시대로부터 명청대에 이르는 수천 년간의 긴 옥기의 역사를 통해 그가 지닌 아름다움과 각 시대별 특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전체적으로 작품감상을 한 후에 무문자시대의 옥기가 지닌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무문자인들이 제작한 중국 신석시시대 옥기
옥용<玉龍> 홍산문화(紅山文化)
중화민족은 '옥의 민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옥을 좋아한다.
이러한 풍습은 7,8천년전의 무문자시대인 홍산문화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초기에 제작된 옥기는 단순하다. 표현은 적되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있다.
간략하게 표현된 옥용은 묵직한 전서획을 연상케 한다.
청옥수형결<靑玉獸形玦> 홍산문화(紅山文化)
유백색의 옥을 깎아 만들었다. '결'의 사전적인 의미는 허리에 차거나
활을 쏠때 엄지손에 끼는 기구라고 나와 있지만, 이 당시에는 종교의식의 용도로 쓰였다.
동물의 형상을 축약한 형태다. 수식은 적지만 깊고 그윽한 느낌을 준다.
황옥응형패<黃玉鷹形佩> 홍산문화(紅山文化)
'패'는 띠에 차는 장식용 옥이다. '패'는 천자(天子)로부터
공후(公侯)와 대부(大夫)에 이르기까지 조복(朝服)에 찼는데 벼슬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매의 형상을 한 이 옥기는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며 기품이 느껴진다.
이것 역시 종교의식과 관련했을 가능성이 높다.
청옥쌍수수삼공기<靑玉雙獸首三孔器> 홍산문화(紅山文化)
옥종<玉琮>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대문구문화는 6,7천년전에 존재했다. '옥종'은 신과 조상에게 제사 지낼 때 쓰던 제기다.
제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므로 이것은 분명 도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깊은 의미가 느껴진다. 탑의 원시적인 표현이 아닐까.
인간계에서 천상계를 잇는 바벨탑처럼 보인다.
옥결<玉玦> 마가빈문화(馬家浜文化>
'옥결'은 중국옥기발전상 가장 오래된 것이고 가장 널리 분포되어 있다.
'옥결'은 6천년전에 마가병문화에서 발견된 것 중에서 제일 많다.
옥기에서 부드럽고 격조높은 신석기인들의 체취가 느껴진다.
옥종<玉琮> 양저문화(良渚文化)
기원전 3300년 경 벼농사를 기반으로한 양저문화는 하(夏) 왕조에 앞서 이미 도시문명을 이루었다.
유백색의 옥종은 부드럽고 고아한 느낌을 준다.
옥관식<玉串飾> 양저문화(良渚文化)
옥관장식<玉관狀飾> 양저문화(良渚文化)
옥관장식<玉관狀飾> 양저문화(良渚文化)
옥삼차형기<玉三叉形器> 양저문화(良渚文化)
상나라인들이 제작한 옥기
서주인들이 제작한 옥기
춘추전국시대인들이 제작한 옥기
명나라인들이 제작한 옥기
청나라인들이 제작한 옥기
7,8천년전 홍산문화로부터 청말기까지의 중국의 옥기문화는
인간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돕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옥기는 단순함으로부터 복잡함으로 변화되어 갔다. 이것은 비단 옥기뿐만아니라 동서미술의 공통점이다.
옥기작품에서 보듯이, 시대가 지날수록 묘사의 정교함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조형을 표현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서양화의 개척자 오지호(1905~1982)를 통해 인간의 감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결국 시대가 변한다고 하여 인간생활이 전부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변하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는것이 있다.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가. 변하는 것은 생활환경이요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감성이다. 즉 시대에 따라 생산수단,
경제구조, 사회제도, 정치체제, 도덕기준, 철학사조, 사고방식이 변하는 것이요, 이해득실에 대해 쾌 혹은 불쾌를 느끼고
남성이 여성에 대하여 애련의 정을 느끼고 우주와 생명의 신비에 대하여 경이를 느끼는 그 '감성'은 아주 옛날이나 20세기의 오늘과의
사이에 아무런 변화도 없다. 결론적으로 감성이란 생명의 상태를 감각하는 능력이므로 결코 쉽사리 바뀔 수 없다는 말이 되겠다."
-오지호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중에서-
오지호가 지적한 '감성의 불변성'에 대한 이야기는 무문자인들로부터 명청까지의 변화과정을 통해서 확연하게 증명이 가능하다.
인간의 감성에 대한 이해, 이것은 간단한 문제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오늘의 미술문화를 혼란에 빠뜨린 요인이 바로 이 '감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출발한다. 마치 역사의 흐름속에서 감성 또한 좀 더 개발되고 발전한다는 착각은 오늘날에 있어 '전위미술'을 낳기에 이르렀고, 진실로 순수한 감성에서 우러나와야 할 예술의 창작이 과학기술의 발명을 초조하게 뒤쫒아가는 건강하지 못한 형상으로 발전되었다. 중국의 무문자시대 옥기와 그로 이어지는 수천년의 옥기의 변천과정은 우리들에게 '미(美)'라고 하는 것이 세월이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한다 하여 발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三道軒정태수 작성시간 14.09.29 문자가 없던 고대 중국에서 귀한 옥기에 다양한 의미를 담아낸 그들의 의식세계에 놀라게 됩니다.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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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가정아동복지학과 오예진 작성시간 14.10.12 5조 가정아동복지학과 오예진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 여러가지 다양한 옥기에 많은 의미를 담아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무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옥기의 무늬가 정말 정교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유미진 작성시간 14.10.14 3조 뷰티디자인학부 유미진
옥의 느낌은 차가운 느낌이 많이 드는데 조각을 하여서 부드러우면서 차분한 느낌을 주는거같다 지금보다 도구가 부족하고 부실했을텐데 저런 아름다운 무늬가있는 옥기를 보니 대단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떠한 메세지를 주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차가운 옥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작품을 만든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芝香 작성시간 14.10.18 귀한자료감사합니다 교수님~~~주말 평온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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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碧園 작성시간 14.10.18 서예문화예술학과 한은희입니다.
강렬함이 돋보이기도 하고 매끄러운 면과 선을 보면 무엇으로 옥을 다듬었는지 그저 신비롭습니다.
광채가 나거나 색깔있는 돌에 관심이 이동되었고 그것은 장신구의 발달로 이어졌으리라 짐작됩니다.
그것으로부터 계급형성이 추측되어지는데 이는 우월함의 표현으로 연결지어지고 인간이 가진 본능 중 하나인가봅니다.
좀더 뚜렷한 좋은 화질의 도판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