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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정필담

한국미술 100년 (21) - 소정 변관식

작성자촌정|작성시간15.08.13|조회수1,055 목록 댓글 2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 1899-1976)

  황해도 태생으로 아버지는 한의사였다. 11세 때 외조부인 소림을 따라 서울에 왔다. 서울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에서 도자기 공부를 하면서 서화 미술원에 나가 그림 공부를 하였다. 19세 때 서화협회의 회원이 되고, 22세 때 협전 1회전에 참여 하였다. 선전에도 참여하였다.


  1923년에 이상범, 노수현, 이용우와 동연사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서화 활동을 하였다. 26세에 이당과 일본으로 가서 미술 공부, 동경미술 학교의 청강생으로 3년 간 수업하였다.


  37세인 1936년부터 방랑을 시작하여 금강산, 진주로(이때 진주 강씨와 결혼), 다시 전주로 떠돌아 다녔다.

  소정은 외가가 화원 집안이었으나 외할버지인 조석진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하였다 한다. 그가 미술을 접한 것은 서화 미술원이다. 소정은 산수화가이지만 새로운 유형과 진로를 열므로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이다.


  그의 삶은 조용하고 무미건조했다. 예술가들이 흔히 갖는 스캔들 하나 없이 살았다. 이당 김은호와 우정도 끝까지 지켰다. 소정이 일본에 머물면서 그림 공부를 하였다고 하나 일본의 영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본서 귀국 후에는 미술활동이 줄어들었다. 선전에도 출품하지 않았다. 일정 말기에는 작품 활동이 거의 없었다. 방랑만 하였다. 이러한 방랑이 단순히 중국의 화보만 베끼던 전통 회화에서 자신의 세계를 펴보이는 기틀이 되었다고 말한다. 초기의 그의 작품이 관념 산수화였다면 관념 산수화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였다.


  소정 회화의 기법상 특징으로 적묵(시커멓게 먹칠한다)과 파선(破線)을 꼽는다. 산수 그림에 짧은 필묵을 무수히 중첩시킨다.

1950년대가 되면 자신의 회화 세계가 완성된다고 한다. 이때 그는 추문으로 얼룩진 국전을 폭로하였다. 국전의 낙선작가전을 주도하여 재야화가로서 길을 걸었다.

  소정은 관념 산수에서 실경 산수로 바꾸었다. 그러나 너무나 자기의 양식에 매몰되어 있어서 반복만 일삼는 단점을 가졌다. 매너리즘이랄까. 좋지 않는 평을 듣는 이유이다.


  소정 작품은 대개가 스산한 가을 풍경이 많다. 메마른 산야의 앙상한 나무 가지와 무겁게 처리한 바위 덩이가 그의 특질이다. (청전 이상범도 같은 소리를 듣는다. 이 둘은 서로 경쟁이 심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가장 유명한 동양화가로 이 2인을 꼽았다.)

소정이 실경산수를 그렸다고 하나 현실의식이 배제된 실경산수는 가상적인 별천지에 불과하다. 소정의 실경산수가 그렇다.

해방이 되자 국전 심사위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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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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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彰華 | 작성시간 15.08.14 감사합니다 ^^ 잘 감상했습니다
  • 작성자三道軒정태수 | 작성시간 15.09.04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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