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體의 완성
위진 남북조 시대가 되면 고대 서체인 전서, 예서, 장초가 근대 서체인 해서, 행서, 초서로 바뀐다. 結體(서법에 각 글자의 점과 획을 안배하여 글자의 모양이 나타나도록 배치하는 것)는 이미 갖추어 졌고, 용필법도 풍부해졌다.
한-위 시대에는 예서가 중요 서법이었다. 해서와 초서는 일상 생활에서 간체와 속체로 사용하였다. 위-진 시기의 4-50년 사이에 예서에서 해서로 교체가 일어나서 해서가 正書가 되었다. 篆書와 隸書는 기념비성을 띄는 비갈 등에 사용하였다.
조조가 장례의 간소화 정책으로 비석 세우는 것을 금지하였다. 소수의 남아 있는 비석은 황제의 허가를 받은 것들이다. 따라서 남아 있는 비석의 글씨는 전문 서가가 쓴 글이 많다. 이런 비석 중에 조비가 황제가 된 후에 세운 上尊號碑(종요 서), 受禪表碑(위기 서), 孔羨(선)婢를 세웠다. 그 외에 天發神讖碑가 있다.
이 비들은 글자가 가지런하고, 반듯하여 납작한 漢隸와 차이가 난다.
예서가 장초로 변할 때 연필을 잡듯이 세 손가락으로 잡고, 예서의 方折을 圓轉으로 바꾼다 章草가 나타나면서 규범화를 강조하는 예서의 자체가 허물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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