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도
부용금계됴
엽매산금도
엽매 산금도
설강 귀탁도
조길(趙吉 1082-1135)
신종의 열 한 번째 아들로서 일찍이 단왕에 봉해졌다. 1100년에 철종이 죽자 후사가 없었으므로 18세에 8대 휘종 황제로 등극하였다. 조길이 휘종 황제로 등극한 시기는 중국에서 북송 화조화가 번성하던 시기이고, 역사적으로도 화조화가 가장 빛을 내던 시기였다.
조길은 어릴적부터 그림을 배우고 재능을 나타났다. 조길이 어릴 때는 황제가 되리라고는 꿈도 꿀 수 없었다. 16-7세 때는 이미 그림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조길은 황전화파의 화조화가 최백의 제자 오원유에게 그림을 배웠다. 조길의 회화에는 그 영향이 아주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조길은 태생적으로 시, 서, 화에 능한 분위기에서 자랐고, 공돌품을 애호하곻 감식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공필화조화의 구륵필법과 결합시켜서 힘이 넘치는 수금서(瘦金書)라는 서법을 창안하였다.
조길은 정부 기관으로 화원(畵院-한림도화원)을 조직하여 화가를 가르치고, 양성하였다. 황제의 몸이지만 화원화가를 직접 지도하였다.
조길의 화조화은 화려한 황전화파의 경향으로 부귀를 표현하면서도 수묵의 경향도 띠고 있었다. 중국회화사에서 조길은 남송의 원체화를 형성하는데 절대적인 공적을 남겼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무능하여 정강2년(1127)에 수도 개봉이 금나라에 함락당하지 태자인 흠종 조화놔 함께 포로가 되었다. 1135년에 포로의 몸으로 오국성(지금의 길림성)에서 병사하였다.
약 20여 편의 그림이 전해온다. 화풍은 색채를 화려하게 사용한 그림과 수묵담채의 두 유형이다. 서학도(瑞鶴圖)는 조길의 대표작이다. 상스러운 학을 표현한 그림이다. 계화법(界畵法)을 운용하여 가옥의 구조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묘사하였다. 그림이 기법이 황전화법을 그대로 추종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황전화파의 기법으로 볼 수 있다. 부용금계도(芙蓉錦鷄圖)도 부귀를 제재로 그린 그림이다.
화원화가들은 황제인 조길의 그림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궁중회화를 섬세공교하게 이끌었다. 전아기려한 화풍을 조성하였다. 요약하자민 첫째, 사실적인 표현, 둘째 시의적 함축성, 셋째, 엄격한 법칙을 지켰다. 이러한 궁중회화의 화풍은 궁중회화의 인물, 산수화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경향은 화조화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서 선화체(宣和體)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