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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정필담

서예기초용어(2) - 삼도헌 정태수

작성자촌정|작성시간15.11.07|조회수990 목록 댓글 1

 

11.잠두연미(蠶頭燕尾)

  잠두연미(蠶頭燕尾)란 필획의 특징을 형용한 용어로 일반적으로 예서(隸書)의 가로획과 삐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예서의 가로획에서 첫 부분은 누에머리(蠶頭), 끝부분은 제비꼬리(燕尾) 모양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법상에 있어서 가로획의 첫 부분을 지긋이 눌러 누에머리 모양을 만들고 파임에서 붓을 거둘 때 회봉(回鋒)을 한 다음 다시 가닥을 나눠 끝까지 함으로써 제비꼬리와 같은 모양을 만드는 것도 잠두연미라고 한다.

  잠두연미의 특징은 날아 움직이는 기세를 취하는 것으로 예서의 획을 표현하기에 적당하다. 예를 들어 가로획에서 먼저 오른쪽으로 붓을 일으킨 다음 왼쪽으로 향하여 나아가다 왼쪽 실마리 부분에서 다시 왼쪽으로 조금 경사를 기울여 내려가다 오른쪽 실마리 부분에서 한 번 누른 다음 필봉(筆鋒)을 펴서 다시 위를 향하여 몰아쳐 나아간다.이와 같이 하여 형성된 가로획은 기복이 있으며 파도가 치는 듯한데 이것을 이른바 잠두연미라고 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필획은 예서에서 뿐만 아니라 '한간(漢簡)'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어떤 이는 안진경(顔眞卿)의 해서(楷書)에도 이와 유사한 필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초학자들은 예서를 쓰지 않고 이러한 법을 흉내내서는 안된다.

 

12.현침수로(懸針垂露)

  현침수로(懸針垂露)란 서로 다른 세로획을 말하는 것으로, 세로획의 끝 부분이 침이 매달린 듯한 느낌이 들도록 뾰족하게 뺀 것을 현침(懸針)이라 한다. 여기에 비하여 수로(垂露)는 붓 끝을 뾰쪽하게 하지 않고 둥글게 하여 마치 이슬이 매달려 있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필법을말한다.

  이외에 전서(篆書)에서는 '현침전(懸針篆)'또는 '수로전(垂露篆)'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이양빙(李陽氷)<한림비론(翰林秘論)>에서 현침수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현침(懸針)이란 필봉(筆鋒)을 먼저 펴고 붓대를 형세에 따라 진행시키다 갑자기 긴급하게 움직이면 붓털은 껄끄럽게 진행하여 마치 송곳으로 돌에 글씨를 쓰는 듯하게 된다. 또한 <금경(禁經)>에서는 마치 긴 송곳을 땅에 댄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세로획에서는 빼는 획과 머무르는 획을 잘 결정하여야 한다.

  왕희지도 현침수로는 체제상 어려운 획이라고 하였으며 위부인(衛夫人)은 오래된 마른 등나무와 같다고 하였다. <임지결(臨池訣)>에서는 현침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을 <난정서(蘭亭敍)>에서는 년()자라고 하였다.

  장경립(張敬立)은 갑()자의 가운데 획은 마땅히 버리듯이 곧바로 빼어야 하며 사()자의 가운데 획은 곧바로 내려오다 갈고리를 해야 함으로 멈춰서는 안된다." 또한 같은 책에서 수로(垂露)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필봉과 붓대를 가지런히 내려오다가 붓대에 힘을 가하여 필봉을 응축시킨다. 그런후에 붓을 세워 힘을 최대한 주어 필봉이 머무르게 되면 거둘 준비를 한다. 이것을 둔필()이라고도 하며 붓 꺾는 것을 제일 중요시 여긴다.

  왕희지는 봄에 죽순이 돋아나는 형상과 같다고 하였다. 위부인은 이것을 옥로(玉露)라고도 하는데 전서(篆書)에서 출발하였으며 옥()은 옛날에 귀한 비녀를 만들 때 쓰였던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현침과 수로에 대하여서는 위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으므로 더 이상의 부언 설명은 하지 않기로 하겠다. 후학자들은 반드시 분명하고도 자세하게 이것을 알아 세로획을 그을때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올바르게 선택하여야 한다.예를 들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침은 '··'등에서 가운데 획을 말하는 것이고, 수로의 획은 '使··'등에서 왼쪽 변의 세로획을 말하는 것이다.

 

13.일파삼절(一波三折)

  일파삼절(一波三折)이란 붓을 사용하는 한 방법이다. ()는 서법에서 파임을 말하며 절()은 필봉(筆鋒)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필법의 생동감과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서법 중에서도 이 일파삼절은 중요한 과제로 강조되어 왔다.

  송익(宋翼)이 글씨를 배울 때 점과 획이 판에 박은 듯하여 생기가 없자 그의 삼촌인 종요(鐘繇)가 이것을 엄격하게 비판하였다. 후에 송익은 마음을 가라앉혀 이러한 잘못을 고쳐 매번 파임을 할 때마다 일파삼절로 획을 표현하였고,하나의 점을 찍을 때마다 필봉을 감추어 나아가 마침내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초학자들은 점과 획을 할 때에는 변화와 생동감이 나도록 일파삼절의 법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만약 가로획을 그을 때 그대로 나아가기만 하여 돌아오지 않고, 세로획을 물을 내뿜듯이 죽 내려긋기만 하고, 파임을 멈춤이 없이 그대로획을 뺀다면 글씨는 판에 박은듯하여 생동감이 없게 된다. 점과 획을 나타낼 때에는 곧은 것도 있고 굽은 것도 있어 정신과 풍채가 날고 움직이는 듯해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붓을 움직임에 빠르고 천천히 하고, 굽거나 곧게 하고, 필봉을 감추거나 나타나게 하고, 누르고 멈추고 꺾고 둥글게 하여야 하고, 가볍게 혹은 무겁게 하여 다양한 변화를 주어야만 생동감이 나타나게 된다.

 

14.방필(方筆)과 원필(圓筆)

  방필(方筆)과 원필(圓筆)이란 붓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원필은 전서(篆書)에서 나온 것이고 방필은 예서(隸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 중에는 이 말을 부정하는 측도 있다.

 

 

 호소석(胡小石)과 같은 사람은 "무릇 붓을 씀에 있어서 첫 부분을 방()과 원()으로 구별하는데 이것이 서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원필이 전()에서 나오고 방필이 예()에서 나왔다는 것은 단편적인 설명에 불과한 것이다. 자세하게 전·(·)의 구별되는 점을 살펴 보면 용필(用筆)의 방원(方圓)보다도 글자 형체의 방원에서 기인되는 점이 더 많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도백(吳陶白)"·(·)의 구별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전서는 원전(圓轉)을 하며 예서는 방절(方折)을 함에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구별법이 아니다. 최초의 갑골문자(甲骨文字)시대에는 전절(轉折)이 모두 방()이었다. 이것은 칼로 새기면서 글씨를 썼기 때문에 모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초기의 금문(金文)도 갑골문을 이어받아 전절을 하는 부분이 모두 모가 났었다.따라서 근본적인 구별법은 바로 글자 형태의 짜임새와 변화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사람들의 이러한 관점도 어떻게 보면 단편적인 면이 농후하다.

  그 러나 인정할 것은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진전(秦篆) 등이 모두 원필을 위주로 하여 쓴 글씨이기 때문에 고리와 같이 둥근 맛이 나며, 예서는 방필을 위주로 하여 씌여진 글씨이기 때문에 힘이 있고 고졸하며 돌을 쪼개는 듯한 기분이 난다. 물론 어떠한 것이든지 절대적인 것은 없다. 원필로 쓰든지 방필로 쓰든지간에 꼭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중봉(中鋒)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봉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전서는 원필로, 예서는 방필로 각각 글씨체의 특징을 나타 내었지만 주객은 분명하다.

방필과 원필의 구별은 바로 글씨의 형태가 다른데에 있는 것이지 어떤것은 옳고 그름을 따져서는 안되며, 그 둘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여야 한다.

  곽말약(郭末若)이 여기에 대하여 말한 것이 비교적 타당하다. 그는 말하길 "예서의 필의(筆意)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바로 붓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다. 예서는 역입평출(逆入平出)이 기본적인 필법으로 처음에 필봉(筆鋒)을 감추고 붓을 대고는 붓을 일으킬 때에는 필봉을 거두지 않음으로써 잠두(蠶頭)와 연미(燕尾)의 모양을 만든다.

남북조(南北朝)의 비문이나 경서(經書)를 쓴 글씨를 보면 비록 이미 필봉을 거두었으나 여전히 방필을 사용하여 하나의 점과 획까지도 삼각형 모양의 전절을 하고 있으니 이는 이른바 예서의 필의를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방필과 원필은 붓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각각 예서와 전서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나 이러한 개념으로 글자의 형태에까지 영향이 미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점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15.질삽(疾澁)

  질삽(疾澁)이란 용필(用筆)의 일종으로 옛사람들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를 지탱한다는 의미로 '삽세(澁勢)'라고 하였으니 붓을 거꾸로 하여 밀고 나아가는 '역세(逆勢)'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의 목적은 붓이 매끄럽게 나아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역세를 취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질()에는 붓을 빨리 움직인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즉 형세를 얻어 신속하게 움직여 용이 나는 것처럼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뜻이다. 물론 단순히 빠른 것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용필의 예술적 미의 효과를 고려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또한 붓을 빨리 움직이는 것은 옳으나 천천히 쓰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도 될 수 있다.

 

  옛사람들은 삽()도 지나치게 천천히 쓰면 안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너무 지나치게 천천히 붓을 움직이면 획과 점이 판에 박은 듯하게 되어 생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삽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이니 주의하여 의미를 생각하고 써야 한다.

  채옹(蔡邕)<구세(九勢)>에서 "서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질이요 다른 하나는 삽이다. 질과 삽의 법을 깨우치면 글씨는 자연히 묘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질삽의 기교와 법도를 숙달하려면 팔에 힘을 바짝 주어 마음과 손이 서로 호응하게되면 빠른 획과 더딘획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16.견사(牽絲)

  견사(牽絲)란 서예의 용어로서 획과 획 또는 글자와 글자 사이를 띠로 연결하는 것처럼 가늘고 미세한 획의 흔적을 말하는 것으로 '인견(引牽)' 혹은 '인대(引帶)'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견사는 붓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윗글자와 아랫글자 또는 먼저의 점·획과 나중의 점·획을 서로 연결하고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는 서예의 중요한 표현 수단이다. 견사의 힘은 단단하고 날카롭고 가늘면서도 탄력이 풍부한 획으로 행서나 초서에 가장 많이 쓰여지는 획이다. 따라서 이것은 위를 이어받아 아래에 전달함으로써 맥락이 통하도록 하는 교량 역할을 한다.

  <서벌(書筏)>에서도 "근육을 연결하는 것은 힘줄에 달려 있고, 맥락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견사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견사를 임의대로 만든다면 세력을 잃기가 쉬워 골()이 형성되지 않고,서로의 연결을 조작한다면 판에 박은듯하여 생동감이 없게 된다.

  붓을 움직이고 보내는 과정에서 견사로써 서로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하여 작품을 만든다면 유창하고도 힘이 있어 운치가 넘치는 작품을 제작할 수가 있다.

  서예의 관점으로 볼 때 견사는 일종의 보조수단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나 이것을 무시하게 되며 작품의 정신과 풍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이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견사가 서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견사를 표현할 때에는 일정한 규율과 법칙이 있으니 이것의 거칠고 가는것을 세심하게 주의 하여야 하며 점과 획보다 굵어서는 안된다. 차라리 가늘지언정 굵어지는 점·획과 혼동을 일으켜 작품의 예술적 효과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17.옥루흔(屋漏痕)

  옥루흔(屋漏痕)이란 서예의 용어로서 용필(用筆)의 방법을 형용한 말이다. 주리정(朱履貞)<서학첩요(書學捷要)>에서 "옥루흔이란 지붕에 구멍이 뚫려 있어 햇빛이 통과하는 곳으로 이곳을 쳐다보면 구멍이 모나게 혹은 둥글게 혹은 기울게 혹은 바르게 보이기도 하면서 형상은 밝게 보이는 것으로, 점과 획이 분명하고 맑아서 연결과 당김이 없이 또렷하게 보이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서법삼매(書法三昧)>에서는 "옥루흔이란 붓의 처음 시작과 끝의 흔적을 찾을수 없는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심윤묵(沈尹默)선생은 "안진경(顔眞卿)은 옥루흔을 중봉(中鋒)에 비유하였다. 빗물이 벽 사이에 스며들면 서로 엉기다가 모여 물방울이 되어 처음에는 서서히 흐르게 된다. 그때의 움직임은 곧바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죄우로 움직이다 비로소 곧바로 내려오게 마련이다. 이때 벽에는 물방울의 흔적이 생기는데 처음에는 둥글다가 획이 이루어지면서 방종의 의미가 많아지고 수렴의 의미는 적어진다."라고 하였다.

  심윤묵 선생의 해석은 매우 명확한 것으로 옥루흔을 중봉에 비유하였으니 이는 세로획에 대하여 설명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붓을 움직일 때 한번에 내려긋지 않고 손과 팔의 힘을 때로는 왼쪽으로 때로는 오른쪽으로 주면서 붓을 눌러서 나아간다. 이는 마치 벽에 있는 물방울이 뱀이 꿈틀거리며 내려가는 현상과 같아서 획은 원활하고 생동감있게 표현된다. 만약 세로획을 위아래가 똑같게하여 곧바로 내려 그으면 하나의 나무줄기를 세워놓은 것 같아 속기가 나면서 생동감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글씨체를 쓰든지 점과 획은 반드시 가고 옴이 있어야 하며 머무르고 꺾는 의미가 담겨 있어야 비로소 기상있는 정신을 발휘할 수가 있게 된다.

 

18.절차고(折 服)

  절차고(折 服)는 서예의 용어로서 둥글게 꺾는 획을 설명한 말이다.

  강기(姜夔)<속서보(續書譜)>에서 "절차고란 굽는 획을 말하는데 둥글면서도 힘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주리정(朱履貞)<서학첩요(書學捷要)>에서 "절차고란 비녀의 다리를 분지른 것과 같이 둥글며서도 힘이 균등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꺾는 획을 할 때에도 붓털은 항상 평평하게 펴져 있고 필봉(筆鋒)은 바르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둥글면 일그러지지 않아서 마치 비녀의 다리와 같이 비록 분질러졌어도 형체는 둥근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 붓을 사용함에 있어서 모두들 힘을 가하기는 쉬워도 둥근 것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들 한다. 획을 둥글게 하려면 장봉(藏鋒)을 위주로 하여야 하는데 전서(篆書)에서 그법을 얻을 수 있다.

  전절의 용법에서 절()은 획을 끌고 전()은 획을 꼬는 듯하게 한다. <서벌(書筏)>에서 말하길 "전을 여러번에 걸쳐 하게 되며 절에 합하게 된다. 전은 둥근 모양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한 번 획을 꼬는 것과 동일하다. 만약 이것을 잘못 하용하면 병이 되지만 분별하여 사용하며 법과 합치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논법은 이와 같으니 전절을 할 때 이를 참고하여 시행하기 바란다.

 

19.획사인니( 沙印泥)

  획사인니( 沙印泥)란 서예의 용어로서 용필(用筆)의 방법을 설명한 말이다. 황정견(黃庭堅)은 이에 대하여 "송곳으로 모래에 글씨를 쓰는 것[錐 沙]처럼 하며 인주로 도장을 찍는 것[印印泥]처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필봉(筆鋒)을 감추고 뜻이 붓보다 먼저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추획사(錐 沙)란 말은 비교적 이해하기가 쉽다 이 말은 송곳으로 모래에다 글씨를 쓰면 획의 양쪽이 솟아 나오고 획의 중간은 오목하게 들어가 하나의 선이 나오게 되어 서법에서 말하는 중봉(中鋒)이나 장봉(藏鋒)의 형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인인니(印印泥)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인주란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인주가 아니라 점착성이 강한 붉은 진흑으로서 밀랍 위에는 기록을 하고 붉은 진흙 위에는 도장을 찍는 것으로 오늘날 남아 있는 봉니(封泥)라고 전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이 인인니를 용필에 비유하여 자연스럽게 추획사와 같이 장봉과 붓에 힘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또한 인인니는 하나의 획도 헛되지 않다는 의미가 있으니 글씨를 씀에 온화하고 법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이와 같은 것을 볼때 획사인니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저절로 알 수 있다.

 

20.내엽()과 외탁(外拓)

  내엽()과 외탁(外拓)에는 두 가지의 다른 설법이 있다.


  첫째, 당나라 서예가인 노휴(盧携)는 지법(指法)이라고 하였다. 그는 <임지결(臨池訣)>에서 말하길 "붓에는 잡는 방법에 있어서 탁()은 첫째 손가락, ( )은 셋째 손가락,()은 둘째 손가락, ()는 넷째 손가락의 작용을 말하며 손바닥은 텅 비게 하여 계란을 움켜쥐는 듯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둘째, 심윤묵(沈尹默)선쟁은 "후대 사람이 내엽과 외탁으로 이왕(二王)의 글씨를 구별하는데 매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즉 왕희지는 내엽이요, 왕헌지(王獻之)는 외탁이다. 시험삼아 왕희지의 글씨를 보면 강건하면서도 법도에 맞고 올바르고 흐르는 맛과 고요함이 있다.

  이에 반하여 왕헌지의 글씨는 강하게 썼으면서도 부드러움이 나타나고 화려함은 착실함으로 인하여 더욱 드러난다."라고 하였다. 이상 두 가지의 관점으로 볼때 어떠한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다.

심윤묵이 후인들이 내엽과 외탁으로 이왕(二王)의 글씨를 구별한다고 말한 것은 후인들이 전 사람의 인식을 기초로하여 지법 중에 엽과 탁으로 서예의 풍격을 설명한 진일보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왕희지가 내엽의 용필을 사용하여 획을 거두어 들였기 때문에 삼엄하면서도 법도가 있는 글씨가 되었다고 한다. 왕헌지는 외탁의 용필을 사용하여 활발하게 썼기 때문에 흩어지면서도 명랑하여 자태를 많이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을 본다면 내엽과 외탁의 진수에 대하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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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중석 | 작성시간 15.11.13 많이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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