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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정필담

중국의 화가(26) - 마원

작성자촌정|작성시간15.12.18|조회수2,154 목록 댓글 3

 

 

산경춘행도

 

 

 

조선 세종 때  이상좌의 그림이라고 하여, 중국의 마하파 화풍의 도입을 보여준다고 한다.(일부에서는 중국 그림이 아닌가고도 함)

 

  마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남송(南宋)의 화원(畵院)을 먼저 말해야 한다.

  북송의 마지막 황제 휘종은 그림 애호가일 뿐아니라 자신이 유명한 화가였다. 휘종인 조길(1082-1135)은 신종의 열 한 번째 아들이었다. 황제가 될 가망은 전혀 없었다. 자신도 황제가 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미술, 도가 사상에 푹 빠져서 마음껏 즐기며 살았다.

 

  황제의 자리가 조길에게 돌아왔다. 뜻밖에 황제가 된 조길은 권력을 이용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나라를 통치하면서 골치가 아플 때마다 그림에 숨어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라는 거덜이 나고 결국은 북방의 나라에게 땅을 뻬앗기는 수모를 당하였다.

 

  나라의 운명과 달리 회화는 송나라에서 꽃을 피웠다. 송의 회화는 수와 당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송의 회화는 남당과 사천의 촉의 제도를 이어 받았다. 그들은 탄탄하게 조직화되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화원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송의 초기에는 궁정에서 필요로 하는 화가를 느슨한 화원제도로 국가 기관에 소속시켰다. 송의 태조는 송이 정복한 나라의 화가들이 수도인 변량에 불러 모았다. 전국에서 모여든 화가들이 송의 국가 기관에 소속되어서 상당히 많은 자유를 누리면서 그림을 그렸다. 송의 재건을 위한 조정의 통제는 어쩔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신종 때 활동한 화가는 곽희, 최백, 유채같은 대가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다. 이들은 한림원에 소속되거나 또 다른 직책을 받고 그림그리는 일에 몰두하였다.

 

  휘종은 신종의 아들이다. 휘종은 아직 정비되지 못한 화원제도를 바로 잡았다. 화원제도의 기준을 엄격하게 마련하였다. 휘종 때의 뛰어난 화가로는 사대부 화가인 왕선, 이위가 있었다. 황실로서 휘종의 사촌인 조영양과 조사휘도 있었다. 송나라에서는 왕실인 조씨 가문에서 뛰어난 화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황실과 사대부 화가가 활동한 화원의 격은 당연히 높았다. 이공린, 미불같은 문인 사대부 화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대부 화가인 만큼 그림을 시와 연계시켰다. 화원 화가를 뽑는 시험의 제목으로 시의 제목을 내걸기도 하였다. 소식같은 유명한 문인도 그림에 관심을 갖고 직접 그림을 그렸다.

 

  휘종이 회화를 육성시키려는 의지는 회화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회화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태조 이래로 신종에 이르기까지 황제들은 회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화가들은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휘종은 자신이 요구하는 그림만을 그리도록 요구하였다. 화가들에게는 오히려 창의력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휘종은 회화에 대해서 세 가지를 요구하였다. 첫째는 자연을 직접 관찰하여 사실적으로 그리기를 원하였다. 황제 자신이 화조나 바위를 아주 세밀하게 그렸다. 두 번째로 휘종은 전통 회화를 강조하였다. 궁중에 소장되어 있는 수많은 명화를 본받기를 바랐다.

선화화보는 선종 때의 회화 선접이다. 그림에 품평을 하여 등위를 매겼다. 이성을 산수화에서 최고의 대가로 인정하였다. 이공린은 인물화의 거장이었다. 서희와 황전은 화조화의 시조로 거론하였다. 이들은 모두 사실주의 화가들이다.

 

  휘종에 세 번째로 요구한 것은 그림에 시의(詩意)를 담으라는 거다. 그림을 보면 시적 정취가 느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회화를 크게 발전시키고 궁정 회화를 확립하였던 휘종의 치세는 1127년에 북방의 금나라가 침입함으로 막을 내렸다. 휘종은 금의 포로가 되었다. 송의 조정은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 항주에 수도를 정하고 남송이 되었다. 남송의 첫 황제는 휘종의 아들인 고종이다. 고종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화원의 그림도 북송시대의 회화가 그대로 전수되었다. 이때 활동한 대표적 화원화가가 이당이다.

  회화는 본래 일종의 공예였다. 장인 집안에서 오랜 세월 동안 대를 이어 그림을 그린다. 기법이 전수되면서 그림의 전통이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송대에 가장 이름을 떨친 화가 가문은 산서 하중(河中)지방의 마씨 가문이었다. 마씨 일가는 북송 말기의 마분(馬賁-12세기 사람)을 시작으로 다섯 대가 화원화가로 일 하였다. 그 중에 마원(1189-1225), 마공현(馬公顯-12세기), 마린(馬麟-13세기 초)이 유명하다. 이들이 남긴 그림도 많다.

 

  말하지면 마씨 가문은 마분이 화원화가가 된 1100년 대 초부터 마린이 활약한 1200년 대 말까지 화원의 중심 화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마씨 일가는 약 150년 간을 화원에 봉직하였다. 적어도 한 대에 한 명은 화원화가였다. 경제적인 부도 일궜다. 관직을이어 옴으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온 집안이 합심하여 미술을 집업으로 삼았다. 집안에 문중의 화실을 두었다. 작업실도 두었다. 작업장에는 고용한 직인들이 일을 하였다. 한편으로 안료를 만드는 일, 먹을 만드는 일도 자신들이 장악하였다. 붓도 만들고, 종이도 만들면서 많은 사람을 고용하였다. 거래하는 단골 가게도 있었다.

  이들이 하나의 사업체를 형성하여 화원이나 조정에 정기적으로 물품을 납품하였는지 모른다. 이것은 마씨 집안이 경영하는 사업체였을 것이다. 마씨 익가들은 왕실과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그림의 기법을 연구하고 연마하였을 것이다. 결과로서 새로운 기법이 탄생하였으리라고 본다.

 

  마원은 곽희의 웅장한 북방 산수와 미불이 묘사한 부드럽고 평화로은 분위기의 산수를 모두 배웠다. 화원화가로서 명성이 높았던 이당의 그림도 배웠다. 마원은 이들의 그림을 조화롭게 통합하여 동창적인 화풍을 만들었다. 마원의 화푸와 하규의 화풍을 합하여 마하파라고 한다. 마원을 마하파의 창시자라고 말한다.

 

  마원이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오기정(吳基貞)이 쓴 (馬遠天香月坂圖絹畵一幅 上有高宗題詠)이라는 기록으로 보아서 고종 때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리라고 본다.

  마분은 불교화와 동물화에 뛰어났다. 수묵산수화도 잘 그렸다. 화원의 대조가 되었다.

  마흥조(馬興祖)는 북송이 망하고 남송이 강남의 항주에 도읍을 정한 후에 소흥화원(紹興畵院)에서 일하였다. 궁중회화를 감식하는 일도 맡으면서 고종의 총애를 받았다.

 

  마공현(馬公顯)은 화조화와 산수화를 잘 그렸다. 마원의 큰 아버지이다. 마원은 아버지인 마세영(馬世榮)보다 큰 아버지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였다. 마원 화풍의 싹을 마공현의 그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아버지인 마세영도 형인 마육()도 모두 화가였으나 마원만큼 이름을 날리지는 못 하였다.

마씨 집안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는 마원이었다. ()는 요부()이고 호는 흠산(欽山)이다. 그림은 집에서 배웠고(家學) 화원에서도 배웠다. 당시의 화원에서는 이당의 화풍이 유행하였다. 이당의 화풍도 공부하였으나 자기 나름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새롭게 표현하였다. 마침내는 스스로 터득하여 자신이 화풍을 확립하였다. 모든 분야의 그림에 모두 뛰어났다. 당시의 황제인 영종과 양황후의 총애를 많이 받았다.

 

  마린(馬麟)은 마원의 아들로서 마씨 집안의 마지막 화가이다. 아버지가 워낙 유명한 탓인지 크게 받지 못 하였다. 마린은 아버지의 화풍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산수화를 특히 잘 그렸다.

  항주로 쫓겨 간 남송은 북방의 세력과 무력으로 대항하기 보다는 친화 정책을 펼쳤다. 양즈강 유역은 물산이 풍부하여 경제적으로 번창하였다. 상공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도자기 상업이 발달하였고, 많은 물길은 해운업이 활기를 띄면서 무역업도 활성화 하였다. 항주는 이제 정치 뿐아니라 경제, 문화, 예술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북송의 화가들도 남쪽으로 피난와서 항주에 모여 들었다. 항주는 무척 아름다운 도시였다. 화가들은 항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렸다. 이들은 화원화가로 일하면서 남송 회화의 꽃을 피웠다. 이 중에도 마원은 뛰어났다. 관념산수와 실경산수를 잘 조화하여 절충식 산수화 양식을 만들었다. 이것이 남송원체산수화 양식이다. 원체 산수화 양식을 마원 혼자서 만든 것은 아니다. 이당(李唐), 유송년(柳松年), 마원, 하규 등이 여러 양식을 절충하고 발전시키므로 만들었다.

 

  남송 화원화가들은 인물과 산수를 대체로 객관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들은 화제(畵題)도 아주 과감하게 선택하였다. 작화(作畵) 의도도 충분히 살려냈다. 무엇보다도 풍부한 감정을 투입하여 표현하였다. 이로서 낡은 기법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양식을 창시하였다. 대상물을 더욱 아름답게 표현하고 시적으로 그리므로 서정성이 짙은 작품을 만들었다. 이들이 그린 양식은 전통 양식과는 차이가 났다. 새로운 양식이었다. 이것을 마하파(馬夏派) 그림이라고 말한다. 시의(詩意)가 넘치므로 마하파 그림을 서정파 또는 낭만파 그림이라고 부른다.

  효종과 광종 때가 되면 화원제도를 더욱 재정비 하였다. 화원화가들이 그리는 그림은 하나의 유형을 만들었다. 마하파 산수화와 이적(李迪)과 이안충(李安忠)으로 대표되는 화조화이다. 이것을 남송화원의 원체화(南宋畵院院體畵)라고 한다. 특징이라면 어던 형식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또 비교적 사실성있게 표현하면서 시적 정취가 물씬 풍기게 하였다.

 

  사대부 문인들은 달랐다. 북송 시대부터 화원화가와는 다른 양식의 그림을 그렸다.그들은 직업화가가 아닌 만큼 그림을 사실적으로 잘 그릴 수는 없었다. 치졸하더라도 자신의 깊은 내면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 하였다. 이들은 반화원(反畵院) 화파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어떤 특정한 유파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냥 문인화라고 하였다. 문인화풍은 거칠고 활달한 표현 방식을 선호하였다. 원나라 때가 되면 문인화풍은 크게 발전하였다.

  마하파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화원의 선배 화가인 이당의 화풍이 뿌리라고 한다. 이당은 극채색인 금벽(金碧-또는 靑色 ; 석채를 사용하여 색상이 아주 진함으로 장식성이 강하다.)을 사용하여 장식성이 강한 산수화를 그렸다. 마원과 하규는  이당을 스승으로 하여 산수화를 배웠지만 자기들의 양식으로 발전시켰다.

 

  짙은 수묵으로 그린 북방 산수화에 금벽 산수화를 잘 조화시켜서 새로운 화풍을 만들었다. 수묵의 부벽준법으로 산, 바위, 언덕을 그리면서서 장식성을 가미시켰다. 사실성과 장식성을 동시에 추구하였지만 시정(詩情)이 넘쳐 흘렀다. 북송 산수화풍도 많이 남아서 대산 산수화를 그렸다. 마하파의 산수화는 직업화가들에게 퍼져나가면서 중국 산수화에 중요한 유파를 만들었다.

  마원은 화원화가답게 모든 분야의 그림을 잘 그렸다. 그 중에도 먹색이 짙은 수묵 산수화를 으뜸으로 친다. 마원 회화의 뿌리는 마씨 가문의 전통 그림이다. 산수화가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원에서 배운 이당 화풍을 더욱 발전시켜 간략하면서도 세련되게 그리는 것을 특기로 꼽는다. 이당에게 배웠지만 이당보다 더욱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평을 듣는다.

 

  나무는 마르고 단단하다. 키가 큰 소나무를 구부러진 최처럼 그렸다.(瘦硬如屈鐵的松樹) 바위와 산은 대부벽준법을 사용하여 모가 나고 단단하게 그렸다. 구도는 자연스럽고 경치는 수려하였다.l 복잡한 자연을 가장 아름답고 보이는 지점에서 파악하여 나름대로 순박하고 완벽하게 그렸다. 그의 그림은 감상자로 하여금 시정이 어리고, 즐거운 마음이 되도록 하였다.

 

  마원은 오대-북송 이래로 전수되어 오는 세필로 아주 세련되고 기교가 넘치게 그린 그림을 수묵의 빠른 붓놀림으로 필선을 거칠게 그렸다. 이러한 산수화를 회화사에서는 수묵창경파(水墨蒼勁派)라고 하였다.

  그때까지는 산수화를 위에서 내려보 보는 부감시의 기법으로 그렸다. 마원은 수평으로 바라보는 평시(平視) 또는 올려다 보는 앙

앙시(仰視)의 기법으로 그렸다. 그의 그림은 극도의 생략이 주는 간결미가 특징이다. 일종의 선미(禪美)였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그림이 화폭의 한 쪽에 치우쳐져 있었다.(馬之一角 또는 邊角之景) 멀리 산의 부분이 흐릿하게 보이고 물이 화면에 넘친다. 이것을 잔산잉수(殘山剩水)라 한다. 특히 물의 묘사는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하늘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물을 그리고 배를 그렸다. 이것이 마원 회화의 특징을 요약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로서 마원 회화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마원 회화의 배경은 남송의 회화답게 거의가 강남의 뻬어난 산수이다. 굽이 쳐 흐르는 계곡 물, 밝고 맑은 산 봉우리, 파릇파릇하게 잎이 돋는 버드나무 등은 모두 강소성과 절강성 일대의 풍광들이다.

마원이 그린 그림은 지금까지 약 70여 점이 남아 있다.

 

  답가도(踏歌圖)는 마원의 화풍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푸작이다.(p215) 그림에는 영종이 붙인 시제가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豊年人樂業 徿上踏歌行) 강남의 수려한 경치를 배경으로 술취한 농민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렸다. 산수인물화이다. 네 사람이 등장한다. 사람들의 사상과 감정이 하나가 되어 있는 듯한 표현이 너무나 순박하고 평화롭다. 인간의 이상향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의 구도는 원근이 분명하다. 필묵도 마원의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화면은 근경, 중경, 원경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표현하였다. 가까운 경치는 아주 세밀하게 그렸다. 붓선은 아주 힘이 있고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화등사연도(華燈侍宴圖)은 궁정에서 베푸는 연회의 장면을 그렸다. 궁정의 계화도 양식으로 그렸으나 번잡하지 않다. 궁정의 정원에는 꽃과 나무들이 가득하다. 먼 산의 봉우리는 원체화의 양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전체적으로 전아함과 섞여 있다. 이것은 궁중의 심미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탐매도(探梅圖), 답설도(踏雪圖), 어은도(漁隱圖) 등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의 그림은 주제가 고인답설심매(高人踏雪尋梅)를 다룬 것이 많다. 그러나 그가 그린 고사(高士)는 진정으로 숨어 사는 문인의 모습이 아니고 고관 사대부의 용모이다. 강가에 그려져 있는 매화도 들에 핀 매화라기 보다는 궁정의 뜰에 피어 있는 매화이다.

마원의 산수화는 이당의 영향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이당과는 다른 풍모를 보인다는 것이 마원 회화의 특징이다.

근대의 서화평론가가 마원의 회화를 평설하였다.

마원의 산수화는 수양이 높은 면에서 있어서 단연 송대의 독보적 존재이다. 그림의 최대의 특점은 필묵이 간결할수록 옅어져 표현 효과는 더욱 높아졌다. 감상자는 정신적 공명을 일으킨다. 마원 작품을 통해서 남송 화단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에는 선가(禪家)다운 간고(簡古)한 수양이 엿보인다.

 

  사실 간고하면서 조용하다. 을씨년스러운 모습은 선가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가 대상을 보고 느낀 필의와 평소에 쌓은 선심(禪心)의 결합 없이는 이렇게 쓸쓼하면서도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산수화는 오대와 남복송 시대가 되어서야 구세주의(救世主義)에서 피페(避世) 내지 초세주의(超世主義)에 눈을 돌린다. 작가도 자기의 생각을 그림에 담아 냈다. 이와 같은 산수화가 나타나는 배경에는 산림문학이 발달하고 선종사상의 유행이 있다. 문인과 선승은 묵희를 즐겼다.

 

  마원의 회화 특징을 잘 보여주는 변각소경도(邊角小景圖)가 산경춘행도(山徑春行圖)이다. 새싹이 파롯파롯 피어나는 버드나무 가지는 아래로 늘어져서 바람에 흔들린다. 홍매도 피어 있다. 한 마리 새는 하늘을 날고, 가지 위에도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나무 아래로 고사(高士)가 의관을 한 체 산 길을 거닌다. 오른 쪽 위에는 행서로 쓴 시가 있다. ‘옷깃을 스치는 들풀은 제 기분에 젖어 춤을 추고 사람을 피해 나는 새는 우짖지 않는구나.’(觸手野花多自舞 避人幽鳥不成) 시의를 잘 담고 있다. 여백도 있다. 앞으로 문인화 그림으로 흘러가는 것을 예시하는 그림이다.

  마원의 그림은 이당의 그림을 계승하였다. 이후에 원체 회화의 준칙이 되었다고 말한다. 마원의 회화를 이어 받은 화가는 그의 아들 마린이다. 마린은 그림그리는 솜씨도 아주 좋았다. 마린은 영종과 이종 때 화원 화가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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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芝香 | 작성시간 15.12.19 감사합니다 존정선생님...
  • 작성자彰華 | 작성시간 15.12.19 제가 공부하고있는 내용이라 정말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三道軒정태수 | 작성시간 15.12.20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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