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섭 (1907- )
1907년에 숭실고보를 거쳐 (이때 선전에 입선하였다.) 1927년에 동경미술학교에 진학 하였다. 1930년에 백만회(김용준, 김응진, 이마동, 구본웅 등과)를 결성하여 미술활동을 하였다. 1933년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선전을 거부하고, 동인활동만 하였다. 주로 牧日會에서 활동하였다. 목일회가
민족주의적 성향이 있다 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으면서 그의 활동도 뜸해 진다.
목일회는 선전을 거부하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화가들이 1934년에 결성하였다. 목일회가 한계에 부딪히자 그의 활동도 힘을 잃었다. 특히 40년대에 접어들면 그의 활동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의 작품 세계는 그의 이념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그 시대의 화가들이 그린 서양화의 양식을 답습하고 있어 그의 미술 세계로 보기 어렵다.
1946년에 조선조형미술동맹 부위원장을 맡았다. 월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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